뜨거운 눈빛-한국의 목판화 ①

오윤_김진하_이인철_이상호展   1989_1106 ▶ 1989_1208

오윤_모자(母子)_종이에 목판화_44×36cm_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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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기획 / 장익화_이섭

한강미술관_폐관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46번지

뜨거운 눈빛 - 한국의 목판화이섭(이하 이)_안녕하십니까. 참여작가로는 어느 정도의 부담감 같은 것도 김진하씨에게는 있겠으나 이렇게 대담에 응해주시니 감사의 말씀을 우선 드려야 하겠군요. 한강기획에서 80년대 목판화 작업을 활발히 보여주고 있던 몇 작가분들을 초대하여 준비한 이번 전시회는 그 기획의도가 미술사적 또는 한 시점에서 바라보는 '정리한다'의 기회이기 보다는 작품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완성의 의미로부터 우리가 밖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들이 얼마나 가시(可視化)되어 있는가를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미술이 80년대에 들어와서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하여 적극적인 작품화를 시도하였고, 수용태도가 능동적이 있음은 우리화단의 기본 예술관의 중요한 변화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변화추세는 미술전반에 활기찬 논의를 진행시켰고 많은 장르가 개발되거나 새로운 조명을 받아 70년대에 비해 다양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목판화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목판화가 많은 작가들로부터 선택되어진 이유랄까? 왜, 젊은 작가군이 지향코자 하는 이념과 매체로서 목판화는 그리도 쉽게 조우되 있을까? 과연 목판화는 가장 적절한 매체로서 80년대 미술안에서 활용되어졌는가? 하는 많은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윤_춤_종이에 목판화_28×22.5cm_1985
오윤_아라리요_종이에 목판화_55×42cm_1982

김진하(이하 김)_80년대 미술에서 목판화가 활성화된 이유라면 역시 80년대 미술전체와 마찬가지로 그 시기적 의미가 작용했겠죠. 팟쇼적인 정치구조와 파행적인 경제구조 그리고 획일화된 문화구조 안에서 궁극적인 미수의 기능과 효용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식하에 복제와 대량생산 기능이 있는 목판화는 전달하기 쉬운 내용을 담아 일차적인 소통의 확산을 꾀하고 더불어 사회, 문화운동의 활성에 매우 적합한 매체임을 확인받게 되었죠. 이를테면 잡지나 시집의 삽화, 달력, 벽보 등으로 대중들에게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갔고 그러한 경험이 있는 대중이나 작가들은 목판화의 강한 전달력에 매력을 갖고 있으리라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런 기능과 역할은 많은 평론가들이 글에서 운동매체의 확장이라는 의미로 회자되기도 했지요. 분명히 이와 같은 점들은 목판화의 장점과 긍정적인 면인데도 불구하고 운동의 한 방법이지 목판화 그 자체의 특성은 아니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겠지요. 또 하나 목판화가 활성화된 이유는 다소 관념적 접근방법이 있는데 '전통과의 연계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한창 '우리 것' 찾기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을 때 목판화는 그 재료 및 표현방법 등에서 여타 판화매체와 비교되어지면서 '동양'내지는 '전통'과 함께 연루되는 관념적 띠를 형성하여 확대된 의미부여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상의 것들이 일단의 두드러진 외적현상으로 보입니다.

오윤_징_종이에 목판화_32×22.5cm_1985
오윤_설제(雪祭)_종이에 목판화_31×26cm_1985

_저도 그렇고 김진하씨도 그렇고 자신의 작업 안에서 목판화를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입장이고, 작업시간도 상당히 있었으미 체험적 이야기를 통하여 목판화의 등장과 양적확산의 이유 등을 살펴볼까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80년 초반의 미술분위기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전개되었다기보다는 모더니즘으로부터 갈증을 느껴 이탈하기 시작한 막연한 성향들의 집산이 있었고 그런 중에 목판화도 하나의 기본범주, 즉 그 당시 목판화란 거의가 동판을 중심으로 생각되어졌고 -그런 점에 대해 학교에서의 판화교육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판화활동의 내용을 보면 심미적 성향만을 갖고 있었으니 목판이라는 것만 갖고도 참신함을 느끼게 할 수 있었고 더욱이 내용이 반모더니즘적 해석을 내리는 방향으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젊은 작가들에게 관심을 일으키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 등장(?) 과정 중 목판화는 개인개인으로 작업되어지기보다는 그룹활동이나 집단적 수용을 통하여 미술전반에서 일시에 나타났기 때문에 여러 갈래의 식견들이 빠른 시간 안에 이론화되어 가며 의식적인 작업형태와 맞물리게 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오윤_국밥과 희망_종이에 목판화_17×15cm_1984
오윤_애비_종이에 목판화_35×34.5cm_1983

_그러다 보니까 많은 작가들이 목판화를 하고 또 많은 기획전 및 목판화행사가 있었지만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생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즉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일차적인 시각적 조야함은 하나의 공해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런 상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마구 쏟아 부으면서도 목판화 자체의 표현가능성과 감수성, 그리고 새로운 형식영역을 넓히는 작가는 드물지요. 하지만 민중미술이 거론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이후 양적 팽창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될 거 같습니다.

오윤_피로_종이에 목판화_24×32cm_1982
오윤_원귀 34_종이에 목판화_22.5×35cm_1985

_판화에 대한 정의에 있어 잘못된 인식에 기인하여 생긴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즉 판화의 대량복제의 기능을 구인쇄술의 복원으로 착각한 것 말입니다. 이점에 대한 각론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하여간 오늘날 판화의 복제기능을 인쇄매체화 시켜 생각하기에는 기능적인 문제를 갖고 있거든요.

오윤_새벽_종이에 목판화_15×14.5cm_1984
오윤_소리꾼_종이에 목판화_27×24cm_1985

_상당수의 작가들이 목판화를 다루면서 작품내용은 형식에 비해 완숙하다고 할까요. 문제제기나 작가들이 갖는 세계관 등은 그 건강함이나 치밀함 등을 엿볼 수 있는데 비해 형식은 새로운 표현가능성이 있는 매체로서의 목판화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또 작품에서는 나태함마저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윤_인물_종이에 목판화_52×39cm_1974
오윤_대지(大地)_종이에 목판화_40×35cm_1983

_제가 갖고 있는 우리 목판화에 대한 강한 불만도 지금 김진하씨가 지적하신 부분, 형식의 완성도에 관하여 무방비 상태로 임하는 작가태도가 만연하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단적인 표현으로 작가가 없고 작품들도 유사품의 양산체제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각기 다른 작가가 파고 찍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작가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김진하_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_종이에 목판화_32.5×29cm_1988
김진하_응시_종이에 목판화_12.5×23.3cm_1988

_이섭씨가 말씀하신 대로 활발한 활동을 있음에도 좋은 작품은 드물다는 것, 그리고 유사한 형식과 가끔은 내용마저도 그러한데 제 생각으로는 80년대의 미술에서 '논리'가 작가의 사유영역에 끼친 획일성이나 작품에 관여되어진 부분이 지배형태를 띄었던 것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곧 집단가치를 조장함으로써 유사한 내용과 형식이 보호(?) 되었던 것 같아요. 어떠한 미술운동이나 문화운동이었던 그 이념이나 논리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강력한 추진력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문화운동 과정으로서의 논리만이 강조되고 그에 적합한 작품만이 부각되어 하나의 전형, 즉 패러다임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단순한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던 많은 목판작가들이 모범답안을 갑자기 받아 쥐게 되어버린 것이죠. 이를테면 노동자, 농민의 도식적 표현과 동학의 일반화된 가치인식의 소재화, 전통민화의 형식도용 등이 획일적으로 시도되는 …… 이러한 작업양태는 그 과정의 중요성과 깊이를 간과한 채 전통소재를 민중성으로 차용하거나 개인적 완성도를 갖춘 작가의 작품을 대표적인 예로 간주한 평론가들의 무절제한 글의 발표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고 궁극적으로 목판을 다루려 했던 작가들의 작가정신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김진하_상념_종이에 목판화_22.5×18cm_1988
김진하_가시밭_종이에 목판화_23×18cm_1988

_'전형'이라는 것은 어느 작가가 자신이 모델로 삼고자 하는 좋은 작가나 작품을 선택했 때 자연스럽게 연구의 대상으로 여겨 새로운 자기결과를 얻고자 사용되어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려되어지는 것은 '전형화'하는 의도적인 과정의 문제입니다만 그런 전형과 결과로 얻어지는 작품은 판단기준의 검증이 생략된 채, 그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특별한 목적에 맞추어 사용되어지며 집단안에서 유사한 작품을 양산시키는 촉매역할을 하게되거든요. 우리미술에서 전형보다는 전형화시키려는 의도가 늘 작업풍토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간 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김진하_북안-콜비츠_종이에 목판화_23×18cm_1988
김진하_벽_종이에 목판화_30×30cm_1988

_그렇다면 작가들이 갖게 되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후배작가들이 준거를 잡았던 선배작가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작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가 없군요.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내용적이든 형식적이든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부터 극복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표피적 내용접근이나 소재의 안일한 선택, 판법과 칼 쓰임 등에 이르기까지 전형의 모방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주로 작업논리를 강조하는 내용우위의 작가들에세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작품이 궁극적으로는 시각을 통해서 전달되고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의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통하여 거론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진하_혁명가의 딸_종이에 목판화_18.5×11.5cm_1988
김진하_갈 수 없는 나라_종이에 목판화_24.5×18.7cm_1988

하여간, 내용전달에 급급한, 즉 논리를 추진하는 '일꾼'으로서 작가이기를 원한다면 형식의 문제는 심도있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 개인작업에 있어 무책임한 결과로 형식의 문제를 다루어서는 더욱 안되리라 봅니다. 왜냐하면 단선적 형식의 공유는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고 강렬한 인상을 희석시키며 전달코자 하는 내용에 집중력을 산개시키는 역할만을 할테니까요. 유사한 양식의 양산은 곧 한계효용을 체감시킨다고나 할까요. 아무리 맛있는 빵이라도 한두개 먹을 때 배가 부르고 만족하게 되지 배부른 상태에서 그 빵을 계속 먹어야 한다면 오히려 고통이 되어버릴테니까요. 작품에 어떻게 관객이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민미술학교의 판화가 그러한데 건강하게 보이는 것은 제작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표현의욕에의 접근 때문이지 완성도의 극대화가 주는 미적쾌감이나 치밀한 내용의 전달 때문은 아닙니다. 만일 작가들이 그런 식의 작품에 호감은 가질 수 있다하여 만들어 내는 작품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직무유기(?)가 아닐까요. 작가의 입장에서는 작가의 현실에 대한 자기의식과 그것을 담아낼 형식의 완성을 동시에 갖추어 내놓아야 감동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김진하_비애(悲哀)의 시작_종이에 목판화_13.5×14.8cm_1988
김진하_구로동 419번지_종이에 목판화_21.5×13cm_1988

_아닙니다. 좋은 말씀이신데요, 전형화 과정에 대한 저의 견해를 이야기 하자면 우선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군요. 전형화에 대한 문제지적이 앞에서 지적하신 논리우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작품이 갖는 문제가 되기도 할테니까요. 첫 번째 문제는 작가가 스스로 익혀 능숙한 쟁이로서 사용할 수 있는 판법의 부재가 그릇된 전형화의 과정에서 야기되있다고 보여집니다. 둘째는 내용에 있어 집체화하는 의식의 공유로 인해 안일한 소재가 곧 내용으로 집단적 인식하에 허용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노동자'의 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그로부터 화면 안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서술적 연관성을 부여받고 결국은 가치를 얻어 내는 경우죠. 이럴 경우 작가는 내용과 소재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전체의 직진성에 맞추어 행보를 같이하면 되니까요. 이탈하지 않는한 집단 가치의 축수를 듣게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목판화의 기술적 특성을 들 수 있겠는데 창칼로 양각하는 기법을 전형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전면 부정은 할 수 없을지라도 가장 커다란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이섭_김진하

『뜨거운 눈빛 - 한국의 목판화』展은 당시 책임기획자인 장익화_이섭님의 허락을 받아 복원된 것입니다. 참여작가님 중에 이미지의 보완 또는 삭제를 원할 경우 neo@neolook.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ol.19891106a | 뜨거운 눈빛-한국의 목판화展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