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 미술의 오늘, 꿈과 현실의 대결 3

책임기획_윤진섭   1992_0719 ▶︎ 1992_0806

최승호_침묵의 마을_48×60×37cm_1991

참여작가 서양화 ● 감경규_강환섭_고영훈_김경복_김선희_김영자_김영환_김영환_김와곤 김종하_김진두_김춘자_김홍주_김희자_노재순_문범강_민경숙_박불똥_박승범_박종해 박진모_박현규_변종곤_신제남_신호철_안창홍_오경환_우창훈_유서욱_이강하_이두식 이석주_이재호_이종두_이호철_이황은_임옥상_임철순_전준엽_정광화_정규석 정인건_조성모_조성휘_한만영_홍순철_홍윤표_황용진_황학만_황효창 조각 ● 김광우_김현근,류인_박상숙_박헌열_백윤기 성동훈_윤성진_이일호_임영선_임형준_조영자_최승호

1992_0719 ▶︎ 1992_0803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1992_0721 ▶︎ 1992_0806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압구정 본점)_폐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456번지 Tel. 02_547_2233

서구 초현실주의의 개념과 성격(Surrealism : It's Concept and Character) ● 우리의 현대미술이 서구의 초현실주의(Surrealism)와 어떻게 연계되어 있으며, 진정 관련이 있다면 그 영향의 정도와 시기, 또한 그것을 수용하는 우리의 태도 등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우리의 미술계에 절실한 이 시점에서 이번의 기획전은 그 나름대로의 충분한 의의와 가치가 있으리라. 필자는 이번 기획전의 내용과 의도, 또는 전시작품의 선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아 한국현대미술의 초현실주의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1992년대서부터 2차 세계대전 때까지의 서구미술 흐름의 중추적인 사조이었던 초현실주의가 상대적으로 일제의 지배 하에 있었던 그 당시나 아니면 그 이후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이번의 기획적인 이러한 미술사적 현상에 대한 연구의 자극제와 같은 역할이 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우리의 현대미술에서 나타난 초현실주의적인 성격의 연구는 서구 초현주의 미술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나, 초현실주의의 일반론적인 성격과 개념을 알기 쉽게 다루고자 한 필자의 논문 이외에도 이 분야의 여러 각도에서의 독자적인 연구가 있어야 하며, 그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우리의 현대미술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김광우_자연+인간_60×100×25cm_1991
김현근_현대인-매스미디어_100×100×100cm_1991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의 개념과 성격, 그리고 그것의 전개과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다다이즘(Dadaism)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해야 한다. 비록 무분별한 혼돈의 상태이긴 했어도 초현실주의의 기본을 형성하는 많은 요소들은 이미 1924년 이전의 다다시기에 존재해 왔었다. 가령, 초현실주의의 핵심요소인 자동기술법(automatism), 우연성, 생물학적 형태(biomorphic form), 기존 오브제(found object)의 사용, 또는 사회에 대한 변혁과 갈망 등과 같은 요소들을 우리는 이미 다다이즘의 작품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주목할만한 다다이즘과의 연관성으로는 둘 다 기존의 전통적인 미학개념을 떠나 고도의 지적이고 문학적이고, 그래서 인식론적인 접근방법을 필요로 하는 조형예술을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측면에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다같이 모더니즘의 전통이 추구하는 미술에 있어서의 문학성을 배제하는 것에 역행해 오히려 더욱 철저히 문학성을 수용하고자 하는 태도와 조형 장르일 것이다. ● 그러나 다다이즘은 그들이 추구하는 조형현상을 체계화시켜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미흡했다면 초현실주의는 브르통(Andre Breton)을 주축으로한 당시의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과 꿈의 해석 등을 토대로 자신의 이즘을 언어로서 체계적으로 이론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주로 정신의학에 사용된 프로이드의 심리학적 이론을 철학적인 경지로 변환시켜 그것을 문학의 기술 혹은 표현방법에 적용한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개념과 조형예술에 적용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똑같게 취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형예술에 관한 초현실주의의 이론 여기 브르통에 의하여 체계화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새삼 초현실주의의 미술이 지적이고 문학적인 성격을 얼마나 많이 동반하는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류인_동방(東方)의공기_350×248×185cm_1992
박상숙_무제_165×94×50cm_1990

1917년 아폴리네르(Apollinaire)가 "sur-realism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할 당시에 그 용어는 프로이드식의 심리학적인 의미를 전혀 함유하지 않은 상태로서 조형예술에 나타난 당시의 기법적인 진보 상태를 일컫는 애매모호한 아방가르드의 개념을 지칭하는 정도였다. 하나의 예로서 1917년 프랑스의 작곡가인 사티(Erik Satie)와 피카소가 무대음악과 장식을 맡은 '퍼레이드(Parade)'라는 제목의 발레 공연에 관한 논평 중에서 아폴리네르는 총체적 예술을 위한 각 분야의 균형있는 조화를 "sur-réalisme"의 일종이라 일컬으며, 이것을 "새로운 정신선언의 출발점으로서의 엘리트 의식과 우주적인 기쁨이 수반도니 예술적인 변형과 방법이 적어도 과학과 산업의 발전과 함께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 '초-현실주의'에 대한 아폴리네르의 정의가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1924년 브로통에 의한 초현실주의의 선언이 탄생하기 전까지의 그것에 관한 개념과 정의는 이렇듯 불분면한 것이었다. 1922년, 이러한 불투명한 상태에서 논리적 규명을 시도하고 그에 따른 이론으로서의 개념 정립에 몰두한 브르통 자신도 초현실주의를 "심리학적 자동기술법"이라는 확실한 방편으로 정의하면서도 "그것은 꿈을 꾸는 상태와 더욱 가까우며, 그 상태를 무엇이라 한정지어서 이야기하기에는 오늘날 지극히 어렵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1924년 가을, 초현주의 첫 번째 선언에서 브르통은 전과는 달리 그 개념의 선명성을 더욱 높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전식의 정의를 내린다.

박헌열_외로움_45×30×25cm_1990
백윤기_접(接)_85×25×20cm_1987

초현실주의. 명사. 인간이 자신의 실질적인 사고 기능을 말과 표기된 언어, 혹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한 순수한 상태 로서의 심리학적 자동기술법. 어떠한 미학과 도덕적 규범에 구애받지 않고 이성에 의하여 훈련된 어떠한 조정도 받지 않는 상태 내에서의 사고에 의한 지배를 받음. 백과사전. 철학. 초현실주의는 꿈의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계산되지 않은 사고 내에서, 지금까지는 소홀하게 다루어 왔던 어떤 현저한 형태의 수퍼 리얼리티에 그 본질을 둔다... ● 위의 정의에서 브르통은 두말할 필요없이 프로이드 심리학을 기초로 인간의 내면 깊숙이 묻어 있는, 감히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될 수 없었고, 또한 신비의 영역 내에서만 존재하리라고 짐작하던 무의식의 세계를 "말과 표기된 언어" 혹은 "다른 방법"(아마도 조형언어를 지칭하는 것이리라)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때문에 브르통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내재하고 있는 깊고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어떠한 절대 현실(absolute reality), 바꾸어 말하자면 surrealite"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비록 겉으로는 꿈과 현실이라는 상방된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두 상태의 근본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성동훈_욕구→본능_200×160×70cm_1992
윤성진_비너스가 있는 풍경_310×225×28cm_1991

당시의 이러한 선언과 함께 브르통이 언급한 초현실주의자들로서는 엘뤼아르(Paul Eluard), 아라공(Louise Aragon), 페레(Benjamin Péret), 그리고 제라르(Francis Gérard) 등의 문필가들로서 아직은 그가 조형예술에서의 초현실주의적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던 때인 것 같다. 그러한 예로서 브르통은 전혀 맥이 와 닿지 않는 일련의 화가들을 그룹별로 선언문의 보충설명을 위한 주(註)에 짦게 소개했다. 물론 그가 클레, 만 레이, 에른스트, 그리고 자신의 이즘에 가장 가까운 화가로 미송을 꼽기는 했으나 르네상스 시기의 우첼로(Paolo Uccello), 신인상주의의 쉐라, 상징주의의 모로까지 들먹임으로 인해 초현실주의를 너무 확대 해석시켜 그것의 본질에 관한 일관성을 잃어 버렸다. 즉 이것은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이 있을 즈음 브르통은 조형예술에 관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 초기의 초현실주의가 조형예술에 대한 대접을 소홀히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1929년 브르통의 두 번째 선언문이 있기까지 적어도 회화에 있어서의 초현실주의는 괄목할만한 변화와 발전이 파리화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가령, 브르통이 제창한 문학에서의 자동기술법에서 영감을 얻은 미송의 오토메틱 드로잉(automatic drawing)[도. 1]이 1924년경부터 초현실주의 잡지(예를 들면, La Révolution Surréaliste)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미로의 환상적인 추상작품이나, 에른스트의 해괴하게 꿈꾸는 형상들의 이미지 작업들 등은 조형예술에 있어서의 초현실주의의 가능성을 더욱 실제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예가 되었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문학적 성격이 강할 수 밖에 없는 초현실주의 회화의 한계라는 입장에서 어차피 조형예술도 문학과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숨겨진 내면의 방법상으로 초현실주의는 문학과 조형예술을 한꺼번에 포괄할 수 있는 바람직한 양상일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입장과 함께 1924년 이후 급격하게 대두되는 일련의 초현실주의적 회화에 힙입은 브르통은 1929년 "초현실주의 회화(Le surréalisme et la peinture)"라는 평문에서 조형예술에 국한된 초현실주의의 개념을 다음의 두 요소로 축약시킨다 ; 자동기술법, 꿈이미지(dream image)

이일호_들녘_120×250×80cm_1990
임영선_어부_420×320×310cm_1992

시기에 관계없이 초현실주의 회화의 양식적 특성은 크게 나누어 추상과 형상이라는 두 부류의 극단적인 양상을 유지하며 발전된다. 그동안 모더니즘의 틀 안에서 진행되어 왔던 '추상(abstrac)' 형식에 미로나 마송류의 초현실주의는 자동기술법이 가미도니 것이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입체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 구조와 아르프(Jean Arp)의 작품에서 이미 등장했었던 단순화된 곡선 위주의 생물학적 형태에 즉흥성과 우연성, 그리고 거기에다 주제의식을 더욱 강조한 작품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정반대로 마그리트(Rene Magitte), 탕기(Yves Tanguy), 달리(Salvador Dali) 등은 서구의 아카데믹한 일루져니즘의 전통에 새로운 주제의식으로서 프로이드의 고정된 꿈이미지를 삽입시킨 것이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회화는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이 구사하는 공간감각과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적 일루져니즘은 모두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지대한 영향을 흡수한 것이다. 때문에 모더니즘의 전통 내에서의 해석으로 미로와 마송은 그들의 새로운 추상성으로 인하여 더욱 회화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면, 마그리트, 탕기, 달리 등은 오히려 문학이나 영상예술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의 제작자라 하는 편이 적당하지 않을까? ● 한편, 에른스튼의 경우는 약간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위의 두 부류에 모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새로운 오토매틱 드로잉의 한 방법으로 그가 고안해 낸 "프로타주(frontage)"기법은-문지르는 효과에서부터 파생되는 즉흥성과 우연성으로 말미암아- 미로나 마송이 구사하는 오토매틱 드로잉보다 훨씬 추상적이며, 이것을 형상성의 작품에 도입하면 전통적인 일루져니즘을 답습하지 않고도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형상을 창출해 낼 수 있다. 또한 입체파 이후 "꼴라주(collage)"기법을 여느 작가들보다 성공적으로 확장시킨 작가로 우리는 에른스트를 꼽지 않을 수 있다. 특히 1928년경부터 등장하는 "로프롭(Lopop)"[도. 2] 시리즈의 새 이미지에 사용된 다양한 꼴라지와 오브제는 1960년대의 네오 다다이스트들 못지 않게 과감하고 독창적이며, 초현실적인 주제의 분위기에 부합된다.

임형준_소리-Bruit 92_75×45×20cm_1992
조영자_나의 아들에게 잠들기전 들려주던 이야기들_37×49×23cm_1991

일반적으로 모든 초현실주의 회화는 그것의 추상성과 형상성에 관계없이 상상적이고 시적이며, 때문에 어떠한 주제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성격이 강하다. 추상성이 강한 미로나 미송의 경우라 하더라도 그들의 작품은 절대로 비구상적(non-figurative)이지 않다. 비록 형상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조형언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작품은 어떠한 주제를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가끔 생략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들이 의도하는 주제를 넘지시 암시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비대상적인 완전 추상일 수는 없다. ● 가령 미로의 「사냥꾼(The Hunter)」[도. 3]에서 세부적인 도상학적 해석에 의하여 각각의 조형언어가 지니는 의미와 상징성을 우리는 파악할 수 있으며, 각 개체로서의 추상 형태는 곧 전체적인 주제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조형언어들이다. ● 입체파의 화가들이 실제의 현실세계에서 자신들의 모티브를 찾고 점차 그것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반면에, 미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현실에서의 지각에 의하여 사물에 접근하는 방법을 피하고, 즉흥적인 자동기술법을 동원하든 혹은 자신의 마음 속의 눈에 비친 어떠한 환상적인 순간을 일루져니즘에 의하여 기록하든 간에 그것은 항상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미지 쪽으로 자신의 작품을 진행시켜 나간다. ● 비전에 의한 이러한 도상학적 요소들은 대체로 이성의 힘으로는 전혀 도달할 수 없는 무의식 속의 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으로, 초현실주의에 속하는 문학작품에서 그들의 영감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이 영감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들의 대부분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상징체계를 거쳐 그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상징체계는 그것이 추상이던 구상이던 간에 대체로 꿈이 상상과 관련되는 자유로운 이미지들의 비이성적인 결합상태로 존재하게 되며, 이러한 비이성적인 결합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보는 제 삼자의 눈을 당황하게 만든다. 즉 작가가 의도하는 상징체계의 은밀함과 난해함 때문에 우리는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반면에, 역설적으로 개인적인 상징체계의 은밀함과 난해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떠한 지적 신비성을 작품에서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신비성에 의한 문학적 또는 지적 충만감이 초현실주의 회화가 지닐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이자 매력이라 할 수 있다. ■ 정영목

『구상 미술의 오늘, 꿈과 현실의 대결』展은 당시 책임기획자인 윤진섭님의 허락을 받아 복원된 것입니다. 참여작가님 중에 이미지의 보완 또는 삭제를 원할 경우 neo@neolook.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ol.19920721c | 구상 미술의 오늘, 꿈과 현실의 대결展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