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인용 2

책임기획_윤진섭   1992_0901 ▶︎ 1992_0930

고영훈_시공(時空)_아크릴채색_85×120cm_1992

참여작가 고영훈_권여현_김영진_김정명_김훈_박기원_박도철_박불똥_변종곤 예유근_유창현_이상윤_이호철_임봉규_최한동_한만영_홍수자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무역센터점)_폐관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7번지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8층 Tel. 02_552_2233

침묵의 언설(言說) 속에"오늘날의 통속예술은 이중의 의미에서 대중예술이다. 그것은 모든 계층을 포함하는 거대한 군중에게 동일한 예술적 오락을 제공하며, 한편으로는 지극히 획일화된 작품을 방대한 규모로 내놓는다. 대중이란 사회의 민주화에 의해 나타난 산물이며, 대량생산은 기술적 진보에 따른 새로운 제조방법의 기계화에 의한 결과이다." 『예술사의 철학』이란 저서 속에서 갈파한 아놀드 하우저의 이 말은 오늘날의 예술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극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다. 소위 말하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구분이 철폐되다든가, 나날이 확산돼 가고 있는 예술의 세속화 현상 따위는 금세기에 접어들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복제술과 새로운 대중전달 매체 및 신소재의 등장에 힘입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미디어 사회', '탈후기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 '관리된 사회' 등으로 묘사되는 현대의 '포스트모던'한 조건은 문화, 예술의 양태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침으로써 급기야는 예술작품의 창작이나 감상의 모드 자체를 변질시키게 된다.

유창현_자유정신의 존재방식_ 캔버스에 유채_72.7×120cm_1990
유창현_자유정신의 존재방식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1992

낭만주의 이래 모더니즘 정신의 금과옥조로 간주돼 온 독창성, 천재, 실험정신(아방가르다), 유일무이성 따위와 같은 개념들이 위협받고 있으며, 그 대신 예술의 대중성이라든지 이종교배, 의도적인 천박성, 절충주의와 같은 개념 및 현상들이 만연되고 있다. 창조력의 고갈과 직결되는 이와 같은 현상들은 예술에 있어서 더 이상 새로움은 존재하지 낳는다는 일종이 허무주의적 사고의 반영태이다. 그것은 곧 더 이상 해체해야 할 전통이 존재치 않는 현대미술의 상황에 대한 절망에 기인하는 바, 성기(盛期) 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복고적 경향이나 패러디, 혼성모방, 알레고리와 같은 형식과 기법 생성의 근저를 이룬다. 따라서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아무 것도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 졌다"는 아도르노의 탄식은 바로 이처럼 예술이 자율성의 맥락으로부터 일탈하여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간극마저 무너져버린 상태, 나아가서는 막대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문화산업 자체가 물화(物化)되는 상태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현대예술에 있어서 아방가르드 정신이 퇴조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 때는 사회에 대한 혹독한 비판자요, 지진계의 역할을 담당했던 아방가르디스트들(이를테면 다다(dada)시대의 예술가들)은 이제 더 이상의 실험을 그치고 기껏해야 선배 예술가들이 비축해 놓은 문화적 자산을 재탕하거나 (트랜스 아방가르드와 신표현주의처럼), 과거의 실험적 열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실험 그 자체를 패러디화시킴으로써 붕한 자본가들과 달콤한 밀월을 즐기고 있다.

이상윤_Future in a Book_책, 쇼케이스, 사진_166×80×24cm_1992
이상윤_Book Travel Ernest Rettelbusch`s Stilhandbuch_책, 흑백 사진_24×34.5cm_1991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창안해 낸 수많은 기법들 가운데 하나인 혼성모방(pastiche)이 현대미술의 진단을 위한 하나의 시금석으로, 또는 20세기라고 하는 전환기적 징후를 노정하고 있는 세기말의 시대정신을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떠한 국면에서일까? 본 기획은 이와 같은 질문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와 같이 질문은 다시 동시대를 다같이 살아가는 서구의 예술적, 역사적 상황과, 본질적인 그것과는 다른 변별점을 지닐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을 비교검토해 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우리 미술의 좌표와 문화적 전망을 밝혀 보자는 취지로 귀결된다. ● 한만영, 홍수자, 임봉규, 김정명, 김훈, 고영훈, 유창현, 이호철, 김영진, 변종곤, 박도철, 최한동, 예유근, 박불똥, 박기원, 권여현, 이상윤 등 굳이 분류를 하자면 동서양화 분양에서 평선, 설치 등 다양한 기법과 방법론으로 활동해 온 이들 열 일곱 명의 작가들은 제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이미 중견 작가로 발돋움했거나, 아니면 이제 막 화단의 지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신예들이다. 그 중에는 70년대와 80년대라는, 한국 미술사상 유례없는 전한기에 이미 혼성모방적인 경향을 추구해 온 선구적인 작가들도 있고(한만영, 김정명의 경우), 90년대 접어들어 비로소 포스트모던한 감수성을 표출하기 시작한 신예들도 있다. 이 외에도 비록 산발적이긴 하지만 동일경향의 방법론을 엿보이는 작가들이 더러 눈에 띄기도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소수로 인원을 제한할 수 밖에 없음을 밝혀둔다.

이호철_내일 또 내일-꿈_하드보드에 아크릴채색_118×173cm_1992
이호철_내일 또 내일-꿈_하드보에 아크릴채색_44×55cm_1992
임봉규_미녀도_캔버스에 유채, 에그템페라_190×140cm_1989
임봉규_조선의 여인_캔버스 유채, 에그템페라_180×140cm_1989

그렇다면 과연 혼성모방은 서구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인 프리데릭 제임슨의 지적처럼 부르주아적 자아나 개체의 종말로 인한 정서의 퇴조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나아가서는 '개성적 스타일의 종말이자 어떤 특별한 가면의 모방'이며 사문화된 언어에 불과한 것일까? 본격 모더니즘의 실험적 양식들이 패러디를 외피로 삼았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혼성모방은 그와 같은 모더니즘적 언술방식을 모델로 삼아 기껏해야 '스타일과 언술상의 이질성만이 존재할 뿐 기준은 없는 장'으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그래서 역사주의가 해체된 포스트모던한 상황 속에서 문화생산자들은 과거로 복귀하여 '죽은 스타일'을 모방하고 박물관 속에 수장돼 있는 온갖 가면과 가짜 이미지들(simulation)이 진리를 호도하고 왜곡된 세계상을 강요하는 이 하이 테크놀로지 시대에 예술은 정녕 어떻게 본연의 기능과 소임을 회복할 것인가? 그것은 리오타르와 아도르노가 믿고 있는 것처럼 오직 숭고미의 회복을 통해서 만이 가능할 것인가?

최한동_봄바람 92-Ⅳ-혜원(惠園) 과나_혼합재료_85×85cm_1992
최한동_봄바람 92-Ⅰ-혜원(惠園) 과나_혼합재료_122.2×145.5cm_1992
한만영_공간의 기원 D8-21_캔버스에 유채_72.7×60.6cm_1978
한만영_Reproduction of Time 86-3_박스+혼합재료_52×91×9cm_1986

TV에 의해 일상이 극화(劇化)된 시대, 초(超) 시공간적 전이를 새로운 매체에 의해 간접체험하고 있는 오늘날 이와 같은 질문을 우리는 새삼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오늘날처럼 개인의 체험과 정서, 그리고 담론 자체가 극심한 분영과 파편화 과정을 겪는 상황하에서는 총체적인 삶의 전망이나 선명한 역사의식의 회복이 매우 불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 열 일곱 명의 작가들이 내보이고 있는 제각기 다른 세계들은 다같이 차용과 인용의 방법론을 구상하고 있으면서도 직조된 결과물들은 판이한 양상을 노정하고 있다. 그것들은 기계복제시대에 걸맞게 우리의 눈에 익숙한 서양 명화의 부분적 차용에서부터 우리 조상의 얼과 숨결이 녹아있는 도상의 인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내용상으로는 지극히 사적인 체험의 진술에 이질적인 도상의 편린을 결합, 재구성한 것에서부터 대(對) 사회적 비판의 주석을 가한 것까지, 또는 공공적 이미지의 결합을 시도한 것에서부터 역사적 재구성을 기한 것까지 다종다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들이 보여지고 있는 작품의 세계를 간략히 범주화하면 다음과 같다. 1) 자아의 반영을 통한 이미지의 혼성적 구축 : 자신의 내면세계 및 내밀한 체험적 세계를 축으로 이미지를 모델링해 나가는 경향의 작가들 - 권여현, 김영진, 김훈, 이상윤, 이호철, 홍수자 2) 공공적(公共的) 및 일상적 이미지의 결합을 통해 일상성의 확보 - 고영훈, 박기원, 박불똥, 변종곤, 한만영 3) 텍스트의 재해석을 통한 변용적 세계의 구축 : 명화 속의 이미지를 발췌하거나 부분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새로운 문맥을 구성해 나가는 작가들 - 김정명, 박도철, 변종곤, 예유근, 유창현, 임봉규, 최한동, 한만영, 홍수자 4) 이미지의 인용과 결합을 통한 사회적 주석(註釋)으로서의 혼성모방 - 박불똥, 임봉규 5) 일상적 사물의 집적과 이미지의 차용을 통한 역사성의 발현 - 김영진

홍수자_그녀만의 방_혼합매체_70×50×40cm_1992
홍수자_투우사가 된 마리아_혼합매체_150×50×50cm_1992

금번 『창작과 인용』전에 등장하는 도합 열 일곱 명의 작가들에 의한 작품세계의 미술사적 의미나 성과,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비평적 평가는 유보될 수 밖에 없다. 단지 우리는 금번의 이 기회를 통하여 오늘의 문화적 조건과 환경 속에서 이들 특유의 담론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의작업이 진행돼 나가는 모습을 관망할 뿐이며,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할 것이다. 비평적 판단을 비롯한 모든 것이 금번 「현대미술의 쟁점 시리즈」를 기획하는 동안 보류도리 터인데, 왜냐하면 이와 같은 조명의 울타리 속에는 우리 자신 또한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 윤진섭

『창작과 인용』展은 당시 책임기획자인 윤진섭님의 허락을 받아 복원된 것입니다. 참여작가님 중에 이미지의 보완 또는 삭제를 원할 경우 neo@neolook.com으로 연락 주십시오. 즉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Vol.19920901b | 창작과 인용展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