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

최민화展 / CHOIMINHWA / 崔民花 / painting   1999_0903 ▶︎ 1999_0928

최민화_분홍-기타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1990

세미나 / 1999_0910_금요일_04:00pm

서남미술전시관(폐관) Tel. 02.3770.3870

● 다음글은 1999년 9월 10일 금요일 오후 4시 서남미술전시관 대강당에서 열릴 서남미술아카데미 강연회를 위한 참고글로 이미 지난 2월 23일 포럼A 세미나 때 발표한 바 있습니다.

최민화의 그림들에 관한 '주관적' 색채학 - 붉은색에서 흰색 사이, 또는 분홍 이전

우리는 흰색과 붉은색만을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분홍의 그 방대한 범주를 제시하고자 한다. - 최민화 -

그 6월, 거리에서 아스팔트 위를 뛰고 숨고 외치고 헐떡이며 얼마나 눕고 싶었던가. 우리는 항쟁의 최고수위, 그 개개인의 한계점에서 눕는 것을 생각해 낸다. 아무런 이유나 조건 없이 눕는 것이다. 이 최고수준의 평화를 절박한 시가전 속에서 실현한다. 우리는 투쟁과 에로티시즘이 잘 연관되어 있음에 대하여 때때로 느낀다 - 최민화 -

반대로, 최민화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어떤 인물들을 주먹으로 불끈 쥐고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땅 위에 발을 박고 서 있다. 때때로 이들은 한껏 가속도가 붙은 과도한,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상상적인, 바람에 대한 저항 때문에 몸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려 있다. (혹시 쉽게, 언제라도 눕기 위한 전략?) 대체로 80년대 중후반 무렵에 그려진 「가뭄-3」, 「눈물」, 「서른 셋 땅끝」, 「걸으며 헤매며 이 치뜬 두눈으로」 등은 붉은 황토색의 거칠고 빠른 붓질을 통해 작가자신을 연상하게 하는 골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건조한 열풍으로 상징되는 황폐한 인간세계에서 '적극적인 희원'과 구원의 신화를 현실화하려는 이들 신인동성동형(anthropomorphic) 인물의 변종들은 영웅적인 예술가상에 다름 아니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을 그린 「이 치뜬 두눈」은 이를 확인시켜 주는 그림으로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이 예술가 도상의 포스츄어는 87년 이석규 열사도나 이한열 영결식의 「그대 뜬눈으로」의 인물들, 그가 앙망하는 구국열사의 그것으로 부활한다.

최민화_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_서남미술전시관_1999
최민화_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_서남미술전시관_1999

열사로서의 예술가, 혹은 예술가적인 의혈과 기개가 두드러진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 우리시대의 특수하고도 일반적인 맥락 때문일 것이다. 누누이 지적돼온 바대로 80년대 내내 예술가와 운동가는 구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호명하면서 혁명의 에스터시에 이르게 되는 적극적인 동반의 쌍-기호들이었다. 특히 최민화의 경우는 척박한 한국역사의 대지와 한국미술의 캔버스를 등치시키면서 수분부족으로 갈라진 그 균열을 일거에 매꾸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불태운 캔버스 뒤에서, 그 「궁골」에서 생겨나는 신비한 설화의 공간은 이를 아주 간단 명료하게 확인해 준다. 또 6월 항쟁의 이한열 영결행진에서 그 포문을 열었던 대형그림 「그대 뜬눈으로」를 단 하루만에 혼자서 그려냈다는 '신화'는 작가의 커다란 역량을 입증해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부한 화가의 천재성이나 혁명가의 유명세에 그가 쉽게 자신을 내주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 「친구」, 「분단의 형제」는 연대에 대한 상호위무의 기운과 힘찬 음률을 감지할 수 있으며, 특히 「3가」, 「불꽃」 등은 연대의 세포분열현상이랄까, 일종의 민중영웅들의 탄생을 알린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81년 「분단의 피」에서 들려오던 끔찍한 악몽의 괴성과 그것과의 현실적인 분투가 어느정도 잦아들 수 있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80년대 광주에서 6월로 이어지는 정치적인 상황을 밑그림으로 한다면 실존적인 고민과 표현주의적 어법을 뭉뚱그려 치고 나가는 그의 작품은 충분히 이해될 만 하다. 그의 균열은 물감의 윤기나 그것의 두꺼운 마티에르가 아니라 속도와 스냅의 연결, 그것에 의해 전이되는 힘줄의 에너지들로 인해 순간적으로 마감될 수 있었다. 재료에 대한 그의 결백증은 따라서 상당히 논리적인 측면이 있다. (말 그대로 친환경적이기도 한) ●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그의 작업은 하나의 초월인데, 물론 날렵한 최민화는 이를 통상적인 예술의 승화나 신화의 정착으로 결론 맺지 않는다. 그는 본질적으로 시대의 변화 그 자체와는 무관한 도저한 예술지상주의자이며 예술 나르시스트이지만 동시에 그와 연관된 예술의 신화, 이데올로기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으며 그것의 편안한 정착을 예민하게 유보하고 있다. 돌려 말하면 그는 예술지상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예술의 여러 신화들과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집합적인 움직임의 추상화가 가져다주는 발견의 희열 또는 이것의 사물로의 전이를 통한 순수성의 획득 대신에 그는 짐짓 그런 미술사의 상식을 모르는 양 그것으로부터 슬쩍 빠져나와 아주 구체적인 단서들과 즉각적인 정서들을 건드린다. 그 구체성을 통과하면서 예술은 차라리 휘발하고 만다. 이를테면 이제 불끈 쥐었던 주먹에 화염병을 쥐게 하고 그 인물 외곽에 흰 영기를 불어넣고는 「꽃병을 들며」라고 제목을 붙여 우리의 서정을 자극한다. 또 「눈부심」에서 화면 가득 작렬하던 흰빛은 「교외선」의 한줄기 섬광으로 우리를 찌른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87년도의 이 작품에서 우리는 섬광 사이로 90년대 '분홍부랑'의 에스키스를 잠시 엿보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혁명보다는 혁명의 비감함에 심미적인 공감을 하는가 하면, 정치적 투쟁에 어쩔 수 없이 내포되어 있는 근원적인 서정성을 기억하게 만드는 그런 그림들, 우리는 붉게 타오르던 이 화폭 뒤에서 백색광의 파열을 일찌감치 감지한다.

최민화_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_서남미술전시관_1999
최민화_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_서남미술전시관_1999

박봉선의 흰손을 유심히 관찰한다. 특히 그의 포즈에 연관해서는 지극히 불안하고 공포에 직면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제공하는, 자신이 왜 새로운 사고를 가능케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력한 개인의 절대 고독을 나는 발견하는 것이다. - 최민화 -

다시 거꾸로 보면, 화사하게 부양하고 있는 분홍공간 곳곳에 자리잡은 흰색 사물들은 마치 빛으로 된 기억의 터널처럼 급격하게 우리를 잡아채서 과거로 연결시켜 준다. 흰색 기타를 치고 있거나 담배를 꼬나 물고 있는 화가의 손에는 언젠가 기관총과 화살이 관통하고 있었고, 「진흙 속 연꽃」의 하얀 연꽃이 자리잡은 자리는 「다시 들풀에」의 들풀이 뿌리를 내렸던 곳이기도 하며 「하얀 유원지」의 단정한 셔츠는 「거리의 사람들2」의 난폭한 셔츠를, 좀 더 멀리 「부랑공간」의 도복은 「씨름」의 흰색 한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틀림없이 이것은 90년대의 일정한 성과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해진 노스탤지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그 노스텔지어와 급격하게 갈라서게 만드는 색채의 정치학 때문에 이것이 혹시 예술본질에 대한 작가의 또다른 언급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 비약이 허락된다면, 박봉선의 흰손과 모더니즘의 백색공간과 「부랑공간」 한 가운데 박힌 흰 막대 - 작가를 닮은 부랑의 '괴수'가 그것을 잡고 있다 - 가 서로 콜라주되면서 예상치 못한 가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탈옥수의 불안에 떠는 흰손과도 같이 어찌보면 절대절명의 순간을 고지하면서도 또 이것이 일상화된 미디어의 세력에 의해서 아주 쉽사리 희석되고 말 운명에 있음을 동시에 고발하고 있는, 그 찰나의 진실을 통해서 작가는 말할 수 없이 연약한 예술의 순수성을 우리 사진의 뇌리 속에서 순간인화하고 있는 것이다. 누추하고 빈약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생산력을 보장받지 못하는 '백수의 손'이 곧바로 우리 심장을 총구로 겨누게 되는 그 서늘한 반전을 , 아마도 최민화는 도모하는 것 같다. 가늘게 진동하고 있는 화면들은 그 육체의 흔들림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전 작업에서 종종 배경을 덮고 있던 정체 모를 흰색 붓자국은 분홍연작에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아이템 각각을 부각시키는 하이라이트로 남게 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어떤 정착이나 세련된 조화를 위한 장치들로 읽히지는 않는다. ● 오히려 그 흰색 '푼크툼'들은 한층 강화되면서 푸른빛이 감도는 흰색으로(「파란담배」), 소주병 속의 맑은 아침(「소주」)으로, 그리고 청색시대의 「부랑」으로 나를 이끌고 있다. 76년도의 이 「부랑」을 관통하는 푸른빛의 퀭한 눈은 정확하게 박봉선의 흰손에 관한 언급에 일치한다. - 지극히 불안하고 공포에 직면해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제공하는, 자신이 왜 새로운 사고를 가능케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무력한 개인의 절대고독을 발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사이, 이 작품의 '부정적' 뉘앙스를 강조하게 했던 사적 맥락을 이해하면서도 세기말의 지금 시점에서 다시금 이 작품의 강한 흡착력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측면에서는 격세적인 친밀감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분홍에 내재된 노스탤지어를 깨버리는 그 충격의 고전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둔탁한 총성처럼 갑자기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결국 최민화의 어떤 그림들은 너무 무섭다거나 혹은 정반대로 어떤 그림들은 지나치게 화사하다고 말하는 것은 별로 정확한 감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의 다채로움은 그림이 겨냥하는 것이 얼마나 큰 무서움인지 - 특히 작가에게 -를 순간적으로 망각하고자 하는 , 혹은 그로부터의 탈주하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으로 보인다.

분홍은 색채의 승리를 의미한다. - 최민화 -

물론 이 승리는 전적으로 분홍이라는 색이 하나의 과정에 있음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다. 분홍은 붉은 색과 흰색을 섞은 단일 색조가 아니라 그 사이의 스펙트럼을 고스란히 포괄하는 범주 전체를 지칭한다. 게다가 그 자체로 분홍은 들떠 있는 감성을 대변한다. 진달래고 사창가의 조명이며 연한 속살이다. 이러한 분홍의 부랑성이 부랑아라는 특정한 사회계층과 결합할 때 그것의 회화적인 성공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이들 분홍 양아치들은 바람을 막고 있거나 해변의 바캉스를 즐기거나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있다. 좋았던 한때 - 정말 좋았을까? 그래도 행복했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 가 구현되어 있는 화면, 그 곳은 보다 정직하게 말해 '분노와 허탈, 반항과 비애'가 뒤섞여 있는 회한의 공간이기도 하다. 어쨌든 머슥하게 웃고 있는 장면을 순간 포착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그 부랑의 공간을 과거로부터 불러와 (현재와, 그리고 조금 앞서 있는 미래와) 회해하게 만든다. 이것이 '과거에 껴안겨져 있는 미래를 향한 염원'인지 아니면 '너무 늦은 주변'인지는 아직 확연하지 않다. ● 한편으로 화가의 손에 들려 있던 기타는 「20세기 회화의 추억」속으로 무한 변주되고, 다른 한편 기타의 흰색은 브로마이드 위의 덧칠로 연장되고 있다. 그 자신의 그림을 추억속의 회화 안으로 흘려보내는가 하면 싸구려 세속의 코팅비닐 위로 미끄러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브로마이드의 인물 「분홍 21세-1」은 다른 분홍인물들과 달리 여전히 주먹을 쥐고 '터프하게' 서 있다. 이 분홍 21세는 서른 셋의 작가와 「복수」의 이소룡 사이에서 진동하며 우리를 여러 그물로 포획한다. 그러면서 그는 어쩌면 최민화의 포스트 분홍 시대를 조금씩 열고 있는 지도 모른다. ■ 백지숙

최민화_분홍·붉은색에서 흰색사이_서남미술전시관_1999
최민화_전시 플랭카드_서남미술전시관_1999

최민화의 작품 중 특히 분홍연작과 관련된 몇몇 키워드_역동적 환각 · 차가운 형상구축에 대한 배격, 최민화 특유의 거친 표현은 '형상의 숨결'을 열어줌으로써 작가와 감상자 사이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감동이 아니라 상호간의 교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배려, 실사에서 얻어질 수 없는 형태미에 대하 탐구와 형상의 리듬을 느끼게 하려는 시도. 형상적 역동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 ● 환치기 · 위 개념과 연관된 것으로 유행이나 편의 때문에 확산된 '검은 테 그림'이나 재현적 묘사의 그림과 반하는 회화의 방식. 형상과 형상을 이루는 가락의 만남을 통한 시대정서의 전형적 표출을 일컫는 말 (이상 황세준, 「부랑-심층적 역동의 공간」, 가나아트 1990년 11·12월호) ● 부랑의 정치학 · 서로 무관해 보이던 사춘기의 반항과 갈망, 사회적 소외로부터 비롯되는 부정적 부랑의 냉소와 자학, 그리고 정치경제학적 억압과 모순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솟아오른 혁명적 부랑의 열기는 이제 삶의 근원적인 유동성을 표상하는 환쟁이라는 존재 속에서 통합된다. 편협하게 그어져 있는 사회적 삶의 경계선과 거세게 몸을 부딪쳤고 또 그 반작용에 의해 내팽겨지면서 마주치게 된 거대한 뿌리 속에서 몸서리치게 체험했던 개인적 좌절의 어깨 너머로 그가 새롭게 발견한 바로 그것 (심광현, 「분홍의 미학; 지옥에서 보낸 한 철」, 1991년 토아트스페이스 전시서문) ● 낭만주의의 부랑 · 낭만주의자들 이래 서구의 근대 미술가들에게 부랑은 가장 전형적인 생활방식의 하나였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둘러싼 부르주아적 일상의 권태와 기만 그리고 은폐된 폭력은 저주스러운 것이었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그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기를 거부했으며 또한 자신을 연루시키기를 거부했다. 동시에 그들은 이러한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기를 열망했다. 그리항여 떠남 혹은 떠돎은 그들의 좌우명이 되었다. (중량) 낭만적 열정의 이러한 불안한 자기고양 혹은 부랑은 실은 현실을 저주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과 더불어 이상에 이르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에 의해 생겨난다. 때문에 결코 통합할 수 없는 것을 통합하려는 낭만적 열정은 가장 건강하게 끊임없이 지속되는 막대한 긴장으로서 혹은 그러한 긴장이 버팅겨야 할 모순의 분출로서 드러난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조화보다는 차라리 균형의 상실이, 갈등이, 과장과 모순이 그리고 이 모순의 과정 자체가 진실이다. cf. 고전주의자의 이상과 현실의 통합, 혹은 균형노력과 대비. ● 분홍의 낭만성 · 그의 분홍은 ... 혼란과 알 수 없음의 상황에서도 그가 마지막가지 확인해 낼 수 있었던 현실과 자신의 예술에 대해서 취하는 정서와 태도를 대변하는 무엇. 분홍은 결코 단지 유미주의적이기만 한 색채가 아니다. 그의 분홍은 핑크와 다르다. 그의 분홍은 보다 정확히는 적색과 흰색의 섞임이자 결합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분홍은 아직 열정을 가진 그러나 현실의 냉혹한 진행을 몸으로 체화하여 이해하는 그와 동세대인들의 태도를 그의 방식으로 즉 보다 고양된 열정의 여진과 회상이 남겨져 있는 방식으로 대변하는 색이다. 하지만 그의 분홍은 아직은 잠정적인 색이기도 하다. 이 색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그는 이것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상 이영욱「최민화의 작업에 대하여」, 1992년 자하문미술관 전시서문)

연구되어야 할 주제들_모더니즘 회화의 경험들 / 퍼포먼스의 의미연장 / 만화작업의 발굴 ● 새로운 역사화의 가능성 / 최근 작업들 / 회화희 동시대성??

Vol.19990831a | 최민화展 / CHOIMINHWA / 崔民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