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있는 고향, 갈 수 없는 고향

오윤_귀향_목판_1984

수구초심 首邱初心이라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온 곳에 대한 집착은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50여년전 일제에 의해 정신대로 끌려간 훈 할머니가 고향을 애타게 찾는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역사나 정치관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태어나고 자라온 곳에 대한 집착은 고향을 떠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은 고희동이라는 화가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볼까'하는 생각에서 1910년 일본으로 미술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고희동은 아직까지 교과서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되어 있다. 애당초 한국 현대미술은 고향뿐만 아니라 나라까지 잃고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졌던 민족상잔으로 인해 한국 현대미술의 초기 작품들은 다소 암울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 최근 50여년간의 우리 역사는 수많은 실향민을 만들어내며 바쁘게 진행되어 왔다.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고향을 등져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져 왔던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60년대 이촌향도 移村向道의 붐을 일으켰던 세대들의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태어난 곳은 있으나 마땅히 고향이라 부를만한 곳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며 각박한 도시생활에 적응하다보니 그야말로 실향 實鄕을 잃어버린 것이다. ● 대부분 고향이라 하면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작은 촌구석을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 현대미술에서 보여지는 고향 이미지들도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 등에서 많이 보여진다. 이는 전통 한국화의 산수화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한국 현대미술 초기에 일본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일제시대에는 지방색이 짙은 풍물묘사와 더불어 과거를 향수 하게 만드는 그림이 많이 제작되었다. 예를 들면 밀짚모자를 쓰고 누런 소에 올라타 피리를 부는 소년이라던가 꽃밭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바구니를 든 소녀 등이 화폭에 자주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묘령의 여인이 강변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한다거나 밭에서 아이를 업거나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들이 그려졌다. 이런 목가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은 고향을 한가롭게 묘사하는 향토적 서정성에도 불구하고 식민통치 하에 좋았던 과거나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상황에 집착하게 만들어 현실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한탄조 성향이 섞여 있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특히 당시에는 일제 식민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화가들의 현실 비판능력을 억압하고 민족주의 고양을 억제 시키기 위해 이국취향의 목가적인 풍경과 감각적인 여인 누드가 조장되기도 하였다. ● 이후 민족상잔으로 낳은 실향민 화가들과 전원풍경을 즐겨 그리는 작가군들이 동심화가, 향토작가 등이라 불리며 서정적인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경제성장기에 제작된 서정적인 전원풍경 작품들은 자연스레 고향을 두고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담한 산과 작은 개울 그리고 붉은 토담과 아롱드리 나무 등이 그려진 향토화가들의 작품에는 논과 밭에서 소박한 복장으로 땅을 일구며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가축들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다. ● 80년대 들어서면서 민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당연히 노동자나 농민을 묘사한 작품들이 고향 이미지를 바꾸어 놓게 된다. '농민의 아들로서 노동자'를 의식하게 되면서 땅을 일구며 땀흘리는 사람들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그림에 등장하게 된다. 늙은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고향에 두고 도시로 떠나야하는 눈물겨운 이별장면 등이 자주 화폭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정겨운 고향마을이 도시건설로 파괴되는 안타까운 장면이나 결혼을 하지 못한 늙은 농촌 총각들의 이야기, 푸른 꿈을 안고 도시로 왔으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공의 모습 등이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 다소 산만하기는 하지만 미술을 보는 관심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다양해진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향 이미지는 굳이 도시와 농촌으로 대비되었던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커다란 시각을 갖게 된다. 한국 미술문화도 다른 것에 대한 이해 또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타 지역과의 차별로서 확보될 수 있는 특유의 삶들이 고향 이미지를 변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외국과의 문화교류가 잦아진 까닭에 공유할 수 있는 문화가 점점 많아지면서 미술작품에서 보여지는 고향도 작고 아담한 마을이 아니라 한반도나 동아시아권의 이미지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 최금수

Vol.19990922a | 갈 수 있는 고향, 갈 수 없는 고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