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기억

정창래 사진展   1999_1015 ▶︎ 1999_1030

정창래_gelatin silver print & brown toning_20×30cm

서남미술전시관 포토스페이스(폐관) Tel. 02.3770.2672

나의 사진 속에 찍혀진 대상은 오래전 죽음과 경계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들이다. 아주 늙으셔서 자리에 병들어 누운지 오래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정신적인 절망, 충격, 심리적 혼란의 시기였다. 순간 순간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 존재의 뿌리인 어머니의 모습을 사진기를 통해서 바라보았다. 그때 어머니에 대한 존재의 의미는 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유일한 정신적인 언덕이었다. 그후 얼마간의 힘들었던 열병의 터널을 지나 건강을 되찾으셨고 난 그 바라보기를 멈추었다. ● 기억이란, 시간과 함께 엷어지게 되어있다. 기억을 저버린 채 세상은 변하지 않고 돌아간다. 3년이란 시간을 지나 상자 속에 묻어주었던 사진을 꺼내 보는 일은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삶에 상처받고 작업적 소재 빈곤의 벼랑에 선 나 자신의 생존 방향을 생각해 봄이다. 그때 내가 마지막가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지금 어머니는 어린아이의 밝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 정창래

정창래_gelatin silver print & brown toning_20×30cm

'어머니, 그 시간과 기억'展에 대한 또 다른 기억 - "새로 그리는 母子 이야기" ●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를 가졌다. 그러나 그 모두의 어머니는 국어사전에 나타나 있거나, 그 나라 문화가 갖고 있는 의미만의 '어머니'와는 다르게, 각 사람마다 그들 자신만의 '어머니의 표상'을 갖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의미. 기억, 소망, 믿음.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자세'까지도 그 모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경험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로의 '어머니'는 '모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장되어 현실의 실재하는 어머니들의 입장이나 형편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 '모성개념'이 역사 속의 어머니들에게는 어떤 억압구조로서 역할을 행 왔었다는 말이다. 역사에서, 또는 소설 속에서 그리고 어떤 위인전의 이야기들에서 그 '어머니'들은 언제나 희생하고, 봉사하며, 인내해야 된다는 의미로 그려져 왔다. 따뜻하고, 너그럽고, 맛있는 음식의 상징이며, 포근한 잠자리며, 그리고 내집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의 표상'으로 그려져 왔다. 이러한 표상들은 이들의 입장과 자식의 형편에서 생각하는 '어머니의 의미'로의 표상이었고, 어머니로의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인정되었다. 그러하지 못한 여인에게는 어머니로의 이미지를 박탈당했었다. 그래서 그 반대적 개념의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나쁜 어미'의 표상으로 정형화되었다. '나쁜 어미'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한 좋은 모델로 '효자 아들'이야기가 등장하게 마련이었다. 이 '효자 아들'에게는 그의 '나쁜 어미'를 감당해 내야하는 스토리들을 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그 아들에게 모두를 극복해 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 그 '어미'를 은근히 징계하고 있었다. ● '어머니'라는 입장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역할이 힘들다. 가문 사이에 끼어, 가족 사이에 끼어, 남편과 자식 사이에 끼여서 자신만의 입장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그런 형편이 바로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은 여인'의 이미지였다. 한 여인의 기쁨은 자신의 영화가 아니었다. 어렸을 적에는 친정가문의 형편에 따라서, 아버지와 오빠의 영광이 그녀의 형광이 되었고, 시집와서는 그 가문의 대변자인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아들에 의해 자신의 영화가 결정되어졌었다. 또 '효자의 표상체계'에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하는 아들의 모습은 그려져 있어도 어머니를 위한 '효자의 표상'은 없었다. 모든 '효의 표상'을 오히려 딸들에게만 그 책임을 지우고 있었다. 이 모두는 그러므로 남성 지배문화의 '표상체계'의 형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20세기말에, 아니 21세기 앞에 '어머니의 표상 체계'는 그래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1999년 10월 15일부터 30일까지, 여의도 서남미술전시관 포토스페이스에서는 정창래의 사진전시가 열리는데 '어머니'가 그의 작업에 주제가 되고 있다. 과거에는 '어머니를 주제'로 하는 예술작업에 '어머니의 희생을 찬양'하거나, '모성성의 위대함을 증거'하는 표현은 많았지만, 남성작가의 가족사, 더구나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로서 그 둘의 관계적 일상을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작업은 그리 많지 않았던 작업형식이다. 작가 정창래의 작업은 "어머니, 그 시간과 기억"이라는 제목을 설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어머니가 매우 늙으셨고 저는 막내라서 (어머니 50에 얻은 아들) 자신이 어머니와 관계가 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와 세대차가 할머니와 같아서 어머니는 큰형과의 관계이고, 항상 자신은 그들의 보호대상이었다고 했다. 아들로의 입장설정이 희박했었던 그는 어머니에게서 느끼고 싶었던 어떤 감정을 누나에게서 찾았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의식 밖에 계시던 그 어머니가 , 매우 건강해서 염려 없었던 아버지의 감작스런 사망에 충격을 받으셔서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된 모습을 보고서야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그 모든 상황들 앞의 자신의 모습, 또는 자아, 더 나아가서 나 자신의 삶이 이 때까지와는 다르게 그 어떤 의미로 다가와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자신이 어머니에게 의지가 되는 아들로서의 위치를 찾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자신의 할 일'을 발견했다. 그리고 '막연했던 관계'의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게으를 수 없었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제 아쉽지만 남은 시간이라도 소중히 기억하기 위한 기록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결심했다. 그는 "어머니, 그 시간과 기억"이라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아버지의 준비되지 않은 죽음'과 '어머니의 준비된 죽음'을 기억으로 간직하려는 그의 의미 있는 작업은 "새로 그리는 母子이야기"였다. ● 그의 작업은 섬세하고 다정하고 애틋하며, 따뜻하다. 일반적으로 드러나 보여지는 남성의 시각이 아니어서 '이성적'이지 않으며, '감성적'이고 그래서 오히려 '여성적'이기까지 하다. 미술과 같은 예술활동에서 늘 주체성과 정체성을 다루어왔던, 역사 이후 우리시대의 남성들 작업에는 항상 '대서사적' 컨셉이 주류를 이루어 왔었다. 그것에 대체개념인 '소서사적' 컨셉은 여성들의 전유물로 간주해 왔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남자가 째째하게 집안이야기를 사회로 끌어낸다는 것은 '남성사회의 웃음꺼리'로 여겨왔었다는 말이다. 정창래의 작업은 이러한 개념들에 도전하고 있다. 나는 그의 작업을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그 작업이 갖는 '그 힘'의 목적과 방향을 보았다. 그는 이 작업을 나에게 보이면서도 약간은 계면쩍어 했었다. 확신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범상치 않은 자기확신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의 작업의 '새로운 의미상'이 내눈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그의 글에 고백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에 대한 존재의 의미는 내 삶을 지탱해 나가는 유일한 정신적 언덕이었다."라고 하는 그의 말에서 '정신적 언덕'은 사실은 전통적 고정관념의 한 예가 된다. 그러나 "내 존재의 뿌리인 어머니의 모습"은 그 '정신적 언덕'과는 다른 의미만을 갖는다. 이 두글 속의 그의 '마음'은 그를 혼돈시키고 있는 생각들이었다. 내 뿌리는 족보이고, 내 뿌리는 할아버지이고, 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들로 내려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적 틀이 깨지고 있었다. 그는 '정신적 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었던 것이다. ● 자기의 일상(남자로서의 일상은 밖의 일)을 뒤로 미루고 어머니의 병수발을 했었던 그. 그가 '집안일'의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그런 마음이 싹트지 못했을 그의 생각. 막내로서 집안걱정 않던 그가 '엄마'가 죽는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자신의 이성이 아닌 감성의 반영으로서, 그는 '어머니에게 대한 자기반성'을 이지적인 방법으로, 생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집안의 일상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그 자신의 이 경험을 다른 차원으로서 끌어올리고 있다. 그의 이 새로운 체험은 자신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게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삶의 철학'을 자신의 작업으로 바꾸는 진실한 행동을 했던 것이다. ● 재현의 역사는 언제나 절대성과 또는 이데올로기와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정창래는 21세기의 어떤 절대성을 창조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날, 늘 숨을 쉬고 있나 확인해야 했었던 어머니. 온몸을 거들어야 했던 어머니. 먹을 것을 입에 떠 넣어 드려야 했던 어머니. 그 옆에 그가 곤히 자고 일어나 보니 어머니의 잠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놀란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그는 벌떡 일어나 방밖으로 찾아 나섰다. 목욕탕에서 나는 물소리에 그 곳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계셨다. 그가 했었던 병간호는 그의 '기도'였었다. 20세기적 재현의 방식(사진은 20세기적 표현매체이니까.)이, 아니 그의 기도가 신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확실하게 이루어 냈던 것 같다. 그의 작업은 남성들의 재현언어가 아니고, '여성적인 언어'로서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기도 시간'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이미지' , '어머니의 표상' 그의 작업은 이제까지의 다른 남자들이 '해오지 않았던 일' 그 일을 그는 하고 있는 것이다. ■ 박영숙

Vol.19991013a | 정창래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