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方8房展

판화의 방향과 속도   1999_1101 ▶︎ 1999_1110

강소영_가짜털_광택지에 컴퓨터 프린트_25.7×254.8cm_1999

참여작가 강소영_김이진_노현임_서유정_서희선_이가경_이시은_조교연

서남미술전시관(폐관)

속도速度로만 보자면 현재 남한의 판화版畵라는 장르는 거의 정지靜止 상태이다. 물론 기존에 순수미술이라 불리던 장르들 중에 속도를 내고 있는 장르가 과연 몇이나 되는가를 따져보자면 그 대답은 매우 절망적이다. 물론 그 양적인 측면이 아니라 시각 이미지 생산이라는 창작創作의 관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 그나마 시각 이미지 생산 중에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영상映像 또는 설치設置미술이다. 이 장르의 시각 이미지 점유율占有率이 워낙 높아지면서 기존 장르는 심한 열등감劣等感 또는 소외疏外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설치 및 영상미술도 영화나 광고와 같은 현실 시각 이미지의 속도와 겨누어 보면 아직도 '깜찍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시각 이미지 생산 내부에 있던 아니면 외부에 의해 조장되었던 지금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김이진_Flowing the movement(II)_천위에 석판화_50×120cm_1999
노현임_백일몽_혼합 매체_1999
서유정_A New Shaman_콜라그래피 부조_80×120cm_1999

복제復制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80년대 이후부터 97년말 외환위기까지 판화는 미술대중화美術大衆化의 강력한 매체로 주목받았던 것처럼 보인다. 역동적인 시대의 구호들과 함께 했던 80년대 민중民衆 목판화木版畵에 있어서는 그 형식이 갖는 민족적 친화력과 더불어 제작과 배포에 있어서의 여러 특장들이 성급한 젊은작가들의 손에 의해 사상思想의 무기武器로 다듬어졌었다. 그리고 강남에 빽빽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남한의 주거문화住居文化를 바꾸어 놓던 시기에는 깔끔한 실내벽면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식물裝飾物로 판화가 각광받았던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 즈음에 무한한 수요를 예측하며 곳곳에 판화공방版畵工房이 차려졌던 것 같다. ● 그러나 아직 남한 미술계에서 매체媒體는 그저 매체媒體일 뿐인 것 같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가 될 수 있겠다던 생각은 남한 미술계에서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현실 시각이미지에서는 이 말이 가능할 지는 몰라도 남한의 미술계라 불리는 곳으로만 한정짓자면 미디어는 그냥 미디어일 뿐이다. 90년대 초반 탈평면脫平面 또는 탈脫장르의 붐이 일어나면서 마치 장르의 특성 또는 재료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야 더 세련된 것처럼 보이겠다는 얄팍한 계산들이 많아지면서 매체 또는 장르에 대한 좀더 심도深度 있는 고민苦悶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던 까닭이다.

서희진_Self-Mercy_혼합 재료_150×300cm_1999
이가경_엘리베이터_드라이 포인트_90×60cm_1999
이시은_One person_동판화_120×90cm_1998
조교연_날으는 참외-헛된 꿈_석판화_40×30cm_1998

이제야 작가들은 이야기한다. '판매용 그림'과 '개인전용 그림'과 '단체전용 그림'과 '비엔날레용 그림'은 각기 달라야 한다고. 물론 생계生計 또는 남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문어발처럼 다변화多變化된 그림을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변화의 결과가 문어발인지 오징어발인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라면 곤란할 것이다. 즉 현대사회에 적응適應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창작이 너무 빨리 소모消耗되고 작가의 이름만 남아버리는 어리석은 결과들을 만들어낸다면 더 이상 남한의 시각 이미지 축적蓄積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아우라의 상실喪失'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각 이미지 창작자라면 우선 그 '아우라의 상실을 만들어낼 아우라'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 판화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장이라 말해지는 '복제성'이 남한의 미술계에서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중이다. 과연 판화를 한다는 사람들 중에 이 '복제復制의 혜택惠澤'을 누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아직도 남한에서 판화의 복제성은 '회화를 몇푼 더 싸게 팔기 위한 상술' 또는 '캔버스를 대체할 수 있는 기법'정도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회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제 판화는 따블로 또는 그 이상으로 위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최금수

Vol.19991105a | 8方8房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