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eno+Geno

전성호 개인展   1999_1103 ▶︎ 1999_1109

전성호_중독_60×45.7×20cm

갤러리 보다(폐관)

미술에 대하여 ● 명확하게 한 시점을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199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삼사십대 미술가들에게서 서양미술사에서 멀리 다다나 초현실주의 오브제까지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특징들을 지닌 경향의 작품들이 현저히 많이 제작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 구미歐美에서 유학한 작가'들에게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국내에서 직접 강단에서 교육하고 있고, 그들의 작품들이 동년배의 큐레이터들이 기획하는 전시회들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소개되므로써 근래에 올수록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서 수학했거나 하고 있는 20대의 학생이나 작가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 구미에서 레디 메이드를 포함한 오브제류의 작품들이 증가한 것은 1950년대 후반 이후의 미술에서 일반화된 현상이다. 네오 다다라 불리운 당시의 미술 경향은 그로부터 30여년 이전의 다다에서 그 조형적 조상을 찾았었다. 다다이스트들이 반-미술을 표방하며 미술 개념 자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 반면, 그들의 후배들은 일상적 경험과 물건들을 가지고 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이 두 세대들의 실험들은 그 다음 세대들에게는 회화와 조각, 더 나아가서는 건축까지를 포함한 전통적인 미술 장르 외의 영역을 개척하고, 각 장르의 영역을 확장시켜 다른 장르와도 섞이도록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회화와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장르는 '죽은' 것이 아니라, 특히 1980년대의 회화에서 볼 수 있듯이, 화가와 조각가는 각 장르 고유의 가능성들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 그러나 비전통적인 미술 경향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편중현상으로 나타났으며, 이미 언급한 사항 외에도 미술내,외의 여러 맥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우선 작가 자신에게 위의 미술작업 방식이 마음에 들 수도 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후 유럽과 미국에서 유학을 한 작가들이 위의 경향의 작업을 하게 된 이유를 개인적 성향 외에도 미술교육의 맥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미술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미술의 장르가 다양하지 않고 미술사의 교육이 덜 체계적이었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 그들에게 유학지에서 직접, 간접적으로 볼 수 있던 눈에 덜 익은 장르의 작품들이 매우 신선하게 충격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나아가서 이 작품들의 대다수가 지적인 점 역시 미술과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그들에게는 - 문인화를 민화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할 때와 비슷한 이유로 -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에따라 많은 작가들이 작품 안에 외국 단어나 문장을 써 넣기를 즐기게 되고, 구미에서 이미 팔,구십년 전에 제기된 질문을 새로운 것처럼 시도하기도 하고(그들에게는 이전의 미술교육과 충분히 상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또 미술사에 새로운 담론 내용을 제시하므로써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들의 작품 내용과 작업방식을 차용하기도 했다. 자신의 작업을 '미술의 기능과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전성호 역시 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전성호의 이번 개인전은 금년 6월 뉴욕에서 소개하였던 작품들과 귀국 후에 의욕적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제작된 이 작품들에는 회화와 사진, 레디메이드 오브제와 오브제류의 작품, 소리와 빛 등 여러 장르와 매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이 작품들은 뒤샹식의 다다적인 방법과 개념미술적인 측면 등 서양미술사의 여러 경향들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 라는 제목이나 그의 뉴욕전 도록에 인쇄된 '작가의 변辯'을 염두에 둘 때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서 기존의 서양의 미학에 따라 제작된 미술작품과 그것에 따라 쓰여진 미술사 전반에 의문을 제기하는 거대한 몸짓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위험스럽게' 보고 있듯이 이 몸짓은 작가에게 너무 크고 벅차 보인다. 그는 뉴욕전의 도록에 실은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아마도 예술의 가치는 아직까지 내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다른 차원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어느 순간 떨어질 위험이 있는 평균대를 걷는 운명을 지녔나 보다."(필자의 번역) 직선 방향과는 무관하게 보도를 걷고 있는 인물의 다리의 뒷모습을 찍은 비디오 테입을 벽에 비치고 그 앞에 실제 평균대를 설치한 작품, 「평균대 위를 걷기」에서 영상 이미지와 실제 사물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고, 실제로 뒤에 놓인 평균대로부터 멀어져 가는 걷는 사람의 영상 그림처럼 작가의 몸짓은 그의 의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Logic. Split Tongue of a Snake』("논리. 뱀의 갈라진 혀", 필자의 번역)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던 전성호의 뉴욕전의 작품들과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의 근작들은 특별히 한 양식에 속하고 있지 않다. 이 작품들은 지난 80여년간 서양과 국내에서 보여진 여러 탈회화적인 경향들을 두루 취하고 있으며, 오브제류의 작품들의 경우 그 소재나 작업 방식이 우리의 눈에 익다. 그의 (1998)는, 전시도록의 작가의 글에 따르면, '일반 관객이 미술에서 기대하지만 미술가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 사회 속에서 쓸모있는 공헌(useful contribution)'에 반대하는 그의 미술 개념의 구체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무줄자는 작업 의도는 다르지만 '그가 좋아하여 몇 년간 깊히 연구한 작가'인 뒤샹의 고무줄자를 연상시킨다. 즉 후자는 일찍이 이것을 가치 기준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懷疑의 표출로 만들었었다. 이와 비슷하게 전자의 작품들은 특히 이 다다이스트의 것과 유사한 소재와 작업 방식이 다른 맥락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를테면 전성호는 다 빈치의 「모나리자」 도판을 디노사우리아의 그것 옆에 그 자신이 '디노사우리아처럼 사멸한 것'이라고 보는 '미술관에 걸린 작품'을 제유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금박 액자를 끼워 전시하였다. 뒤샹에게서 이 그림의 엽서는 말장난을 덧붙여 소위 걸작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관객의 태도 및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패로디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다. 전자의 처럼 동(유사)음 이의어同(類似)音 異意語를 사용한 작품의 제목과 표현 방식은, 후자가 「모나리자」는 물론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유머있게 성적 암시를 하는 방식과는 달리, 직설적이다. 나아가서 각각 다른 미술이론 책의 글을 다른 목소리로 읽은 것을 들려주는 다섯 개의 스피커로 이루어진 전성호의 작품, 는 일견에는 같은 내용의 시를 다른 언어로 동시에 읽은 다다이스트의 동시시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자의 작품은 다다이스트들처럼 전통적 사회와 예술의 부조리함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미술을 사랑하고, 미술가인 아들을 낳고 30년 이상 함께 산 그의 어머니를 혼란스럽게 하는 미술'을 뜻한다. 그의 레몬 작품, (캐스팅, 사진, 그림으로 나온 레몬)은, 작가에 따르면 앞서의 처럼, 미술이 일상사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일반 관객'에게 주지시키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것이다(그의 「일주일간의 희망」에서는 이와는 거꾸로 쓸모가 없어진 복권이 미술작품이 되고 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레몬향이 첨가된 물을 담은 비이커를 금박 액자 앞에 각각 하나씩 매달아 놓았다. 그는 이 '레몬즙'을 '일반 관객'이 레몬에서 기대하는 것으로 본 듯하다. 이처럼 하나의 사물을 여러 매체로 보여 주는 방식은 실제 우산이나 의자를 그것의 사진과 사전의 정의를, 즉 실제 사물, 그것의 복제된 이미지와 언어로의 번역을 동시에 보여주므로써 한 대상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 코수스의 작품 방식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그의 여러 작품들은 그것들의 외양과 작업 방식상 기존의 다른 몇몇 작가들의 그것들과 유사하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제작된 것이다. ● 필자가 이렇게 전성호의 작품들을 필요 이상으로 더러는 작가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정도로 다른 작가들과의 작품들과 비교하는 이유는 우선 그가 쓴 글에서 발견되는 그의 작업 의도와 그의 작품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에게 다른 의구심들이 촉발케 하는데, 위의 비교는 필자에게는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와 대화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생겨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 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미술 이론가와 그것의 실행자의 직업이 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1960년대 후반 개념미술가들이 미술작품을 물질로 부터 해방시켰다고 하더라도("dematerialization of the art objects", Lucy Lippard) 일부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미술가의 이론과 그것의 실천인 작품 사이의 불일치가 어느 정도까지 수용 가능한가, 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미술가의 문자로의 설명과 '변명'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구별할 필요가 없을까? ● 전성호는 뒤샹의 변기가 "정신적인 미술(로)의 첫 발자국the first step in a spiritual art"이라고 믿으며, "논리가 임무를 맡았을 때 미술은 미술이기를 잃었다Art lost being an art when logic took over"고 쓰고 있다.(뉴욕전 도록에서, 쪽수 표기 안됨, 필자의 번역) 그의 가 그에게는 미술 이론이 그 뜻을 알 수 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낱개의 이빨화석 모양의 형태들을 책의 글씨처럼 배열한 「미술의 역사 I」과 화석모양의 이틀들을 진열한 「- II」는 그에게 미술과 미술사가 읽을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그는 논리적인 미술은 물론 기존의 서양 미술과 미술사 전체를 거부한다. 특히 그의 글에서는 유학 전의 연작의 제목인 「메시아」의 의무를 그가 손수 떠맡은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그가 글에서 폐기해야 할 항목으로 제시한 논리가 시각화된 작품의 전형적인 타입에 속한다. 회화를 '망막 미술'이라 거부하여 오브제를 제시한 뒤샹의 작업 방식은 우연의 법칙을 최상의 것으로 따른 다다 시기의 한스 아르프를 비롯한 다른 다다이스트들의 것과 달리 논리적이다. 또한 전성호는 기존의 미술과 미술사 전체를 폐기처분하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컨셉은 다르다 하더라도 기존의 반회화적인 미술의 여러 레파톼르들을 선택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도 감지되듯이 전성호는 국내의 학생 시절부터 특정 장르나 매체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의 컨셉을 중시하는 그의 개념미술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의 '실존주의적인 정체성'에 관한 그의 진지하고 꾸준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또 그의 "메시아적"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과 '이론' 사이에 간과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고 그의 작품들에 많은 지적인 양식들과 작품들의 흔적들이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이유는 서두에서 밝혔고 다른 젊은 작가들에게서도 지적될 수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그의 이번 귀국전은 도미渡美 이전의 그 자신의 미술에 대한 과격한 안티 테제로, 따라서 그 스스로 해결해 나아가야 할 새로운 테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 김정희

Vol.19991108a | 전성호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