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연옥

김형석 회화展   1999_1110 ▶︎ 1999_1116

김형석_가벼운 묵시록_종이에 아크릴채색_각 지름 36cm, 220×588cm_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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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는 그 자체로서 닫혀있지 않다. 그리고 더욱 현란한 속도로 자기증식과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이미지의 개념은 추상적이고 텍스트적인 것까지를 아우른 확장된 범주에서 다소 거칠게 떠올려 본 것이다.- 이미 우리의 환경이 되어버린, 아니 우리 자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에 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담론과 문제의식 중에서도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의미론적인 영역이며,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자명하지만 일상에서 자주 증발해 버리는 사실, 즉 이미지란 늘상 조작되는 것이며 의사소통의 몽유병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의 시선은 쇼윈도를 응시하는 텅빈 시선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안에는 학습된 욕망 이외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매혹이지만 불안한 것이며, 이 불안을 결핍으로 느끼고 메우려드는 한 우리는 욕망의 폐쇄회로 속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니며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미지의 연옥이다.

딱지에 대한 단상 ● 어린시절 딱지는 매우 소중한 재산이었다. 날리기, 뒤집기, 별높, 글높, 따먹기 등을 통해 딱지는 거래되고 교환되었으며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실은 아무 쓸모도 없지만 아이들 사이에선 제법 권력적인 행세도 가능한 상징이며 교환가치였다. ● 어느덧 딱지가 한낱 조악한 이미지가 인쇄된 종이조각으로 여겨지고 잊혀진 물건이 되었을 때 문득 그 빈자리에 대체된 가치와 의미들이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것은 변형된 Token의 자리바꿈의 연속 같은 것이고, 나는 그 자리에 회화를 대입시켜 보았다. 그랬더니 어찌보면 딱지일 수도 있고 아니면 회화일 수도 있는 모호한 지점에 이르렀다. 거기서 딱지와 회화의 경계는 흔들리고,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전이되고, 표층을 훑는 듯한 얇은 시선만 남게 되었다. 결국 그것은 의미의 비틀기로 인한 미끄러짐이고 역설의 공간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 김형석

Vol.19991109a | 김형석 회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