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大河 그림의 道程에서

황주리展 / HWANGJULIE / 黃珠里 / painting   2000_0308 ▶ 2000_0321

황주리_삶은 어딘가 다른곳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0×227cm_1998-9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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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大河 그림의 道程에서 ● 대담 ● 이재언 & 황주리   이재언 : 황선생님 오래간만입니다. 황선생님이 첫 개인전을 가진 것이 8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언 화력이 20년을 헤아리게 된 것 아닙니까?황주리 : 화력이라 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대여섯 살 때부터 하루에 몇 시간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감성을 몸에 익힌다는 것-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아주 유익한 수업입니다. 그때부터의 그림그리기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고 생각하며느 제 화력은 꽤 긴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재언 : 황선생님의 작품세계는 줄곧 화려한 색상의 것과 black and white의 것으로 구별되고 있는데 그 두 가지가 병행되는 데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황주리 : 우선 나는 색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길을 걷다가, 혹은 가끔 꿈을 꾸는 원색의 꿈속에 출몰하는 빨강, 노랑, 초록 등의 색채를 통해 나는 행복한 자유를 느낍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려온 나는 주로 날 것의 원색을 다루는 데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black and white는 내가 어른이 된 이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색깔입니다. 색채의 세계가 유채색의 꿈이라면 흑백의 세계는 무채색 꿈입니다. 그리고 그 두 세계는 물론 한 동전의 앞뒷면, 혹은 화장한 얼굴과 화장을 지운 얼굴,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기 같은 관계라고나 할 수 있을지. . . . . 이재언 : 예, 현상으로는 상이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혹은 근원적으로는 양자가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인간에겐 양면성이 있음을 보다 솔직하게 비쳐 주신 것으로도 이해가 됩니다. 세계의 양극이 조화와 갈등을 반복하면서도 그것은 언제나 '자연'의 궁극을 이루어 왔던 것에 비추어 본다면 황선생님의 그러한 병행은 대립물들의 조화에 대한 무의식적 제스츄어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조형적으로도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이면의 것을 억압하거나 혹은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주리 :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 색채란 취향의 문제이고, 또한 그 시점의 기분에따라 변하기도 하는 날씨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화가에게 있어 색채란 축복입니다. 이재언 :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맥락과도 상통하는 문제입니다만, 황선생님의 작품 형식에 있어서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여러 개의 시츄에이션이나 플롯을 가진 장면들이 하나의 질서 안에 통합 내지는 조합되는 작품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회화의 한 패러다임으로도 정착된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로 보편화되기 전 이미 황선생님은 이러한 작업을 80년대부터 즐겨하였습니다. 이러한 화면질서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또 어떤 인식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지요?황주리 : 요즘 나는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유행이 되다시피 한 '작은 그림들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칸막이 그림 형식을 누가 먼저 시작했는가? 솔직히 나는 그런 질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화에서의 옴니버스 스타일이나 음악에서의 그것처럼,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해서 그들의 작품 세계가 닮아 가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더구나 80년대 초 내가 이런 형식의 그림을 시작할 때는 어떤 거창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재언 : 저도 물론 그래요. 워홀의 반복 이미지는 오늘의 소비사회 및 대중문화 미디어 환경이 가져온 반복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최근의 그런 다중 질서 화면들이 미디어나 뉴미디어 환경의 복합성 혹은 퓨전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그것의 선점(先占)이라는 것이 이제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황선생님의 작품양식에는 개인적으로 보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는 의미로도 들리는데요...황주리 : 예, 난 출판사를 경영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엔 늘 원고지가 많았습니다. 어릴 때 비행기도 접고 낙서도 하면서 함께 한 그 원고지들이 70년대 말 하나의 오브제로 내게 다가 왔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 한 장씩 원고지에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을 한 캔버스에 이어 붙여 '추억제'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순서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끝이 없는 이야기로서의 그림을 통한 대서사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은 것 말이죠. 나의 눈과 감각을 매개로 한 일기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물론 그 내용은 너와 나, 우리들이 살았던 80년대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와서 어떤 이론적 바탕을 굳이 제시하자면 이런 이론에 공감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이 메모를 낭독해 볼게요.「복잡 다단한 현대문명 사회에서 모든 개인의 삶과 진실은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파편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말처럼 현실세계의 그 수많은 파편의 얼굴들은 다만 하나의 얼굴이 지어낸 수많은 표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들의 현실은 파편화된 삶의 단순한 양적 집합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한 땀 한 땀 직조해내는 삶의 모습일 따름이다.」(이성우, 스테레오적 시점과 삶의 진실, 문학평론) 이재언 : 저도 그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늘의 세계에 비추어 볼 때 단일, 혹은 통일의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근대사회의 규범이었을 텐데... 오늘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히 선입견 때문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듣고 보니 초기 원고지 작업의 동기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히 풀리는 것 같아요. 황선생님의 작품은 80년대엔 주로 내면 세계를 많이 다룬 표현적인 화면이 주류를 이루다가 90년대부터는 '사소한 것'이나 '가벼운 것', '일상에서의 것'을 소재로 하여 삶에 대한 리얼리티에 접근하고 있는데, 이러한 소재에 친근한 것도 나름대로의 예술관과 현실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요?황주리 : 우리들의 80년대는 자유를 향한 무거운 행진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날고자 하는 '새장 속의 새'가 늘 보편적 주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 자신 '성난 군중', '날개짓', '추억제', '그 중의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 적당하오' 등을 통해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현실발언을 늘 작품 속에 폭탄처럼 품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인터넷 혁명과 IMF로 규정되는 90년대 우리네 삶의 질이 뭐 그리 달라졌으랴마는, 그래도 90년대가 표방하는 가치관은 누구나 행복한 권리가 있는 개인의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나 자신 눈에 띄게 '나'로부터 '너'에 관한 관찰로의 변화를 갖습니다. 사소한 것, 가벼운 것, 일상적인 것, 이들은 개인의 삶의 질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의 모습만 연구하던 방안 속의 '거울'을 떠나, 거리에 나가 행인들의 스냅사진을 찍어대는 관찰자의 입장 같은 여유가 내게 생긴 것은 아닐는지요. 이재언 : '맨하탄 불루스' 연작은 87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래 일기 쓰듯 거의 날마다 하나씩 그리다시피 한 것으로 경이적인 성과물로 보입니다. 모노톤으로 오랫동안 집요할 정도로 비슷한 패턴으로 작업하다 보면 권태도 적지 않았을 것 같은데...황주리 : 흑백으로 그려진 46×60cm의 그림 '맨하탄 블루스'는 1087년 이후 지금까지 2500개 정도는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180×235cm의 캔버스 하나에 15개씩이 한 작품으로 구성되어 연도별로 쌓여 갑니다. 여기서 '맨하탄'이란 고유명사로서보다는 가장 발달하고 가장 고독한 도시문명으로서의 상징을 뜻합니다. 그 도시 속에서 관찰자로서의 한 개인의 내적인 동시에 외적인 극히 개인적인 명상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작가가 살아 있는 날까지 계속될 방대한 일기의 축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혹은 그 이후에 관한,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흔적, 유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일기를 쓸 때는 모노톤이 더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나는 일기쓰기를 권태로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를 것이며, 내일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마치 볼펜이나 만년필이 아닌 연필로 일기를 쓰듯, 흑과 백으로 그려내는 이 일기들의 내용은 물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의 풍경일 것입니다. 마치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생각게 하는,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한 방대한 서사시를 쓰고 싶습니다. 이재언 : 2500점의 작품들이 일기 쓰듯 그려졌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놀랍습니다. '맨하탄 블루스'가 그토록 장대한 서사시와 같은 야심적인 대작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평생을 두고 이루어지는 大河 작업이라면 이제 우리는 증류쯤에 다다라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은 그렇고 익명적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이 군상들은 대체로 어떤 대상에서 온 것들입니까?황주리 : 메마를 대로 메마르고 황폐해진 이 시대에 고독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재언 : 외눈 눈동자 이미지가 거의 장면마다 나타나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황주리 : 그림마다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으면 합니다. 사물과 사람, 그들이 빚어내는 풍경을 관찰하는 나 자신의 눈으로부터, 판단을 보류중인 관찰자의 눈, 감시자의 눈, 따스하게 지켜보는 눈, 두 눈을 꼭 감은 눈까지 '눈'의 이미지는 확대됩니다. 이재언 : 혹시 안경 오브제들과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황주리 : 안경 오브제 작품은 1991년 폴랜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의 안경을 잔뜩 쌓아놓은 안경 무덤을 보고 충격을 받은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잔인한 의미에서 20세기 최고의 설치작품이었으며, 삶과 죽음에 관한 가장 심도 깊은 명상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안경을 써온 나 자신의 이미 돗수가 맞지 않게 된 낡은 안경들, 나의 할머니와 아버지처럼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뎅그마니 유물로 남겨놓은 안경들, 그리고 친구 친지들의 오래된 안경들을 모아온 내 수집취미에 91년 아우슈비츠 방문의 추억이 만나 안경 오브제 작품을 낳게 되었습니다. 안경 위에 그림이라는 내 흔적을 더해 넣기- 동시에 그것은 20세기 안경들의 낡은 유행을 보여주는 추억으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안경알을 통해본 세상은 내게는 늘 사각형이나 원형이었고, 내 작품 속의 사각이나 원 속에 그려진 인간 풍경들의 축적, 또한 이 시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는지... 이재언 : 단순히 안경이라는 사물 하나를 통해서도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과 사유가 내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96년 개인전에서 농기구나 시계 등의 오브제, 근작에서는 안경과 같은 오브제들이 이용되고 있으며, 그 오브제들은 하나같이 작가가 표현적인 이미지들을 펼침으로 해서 그 상징적 기능이 제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황선생님의 오브제관은 어떤 것입니까?황주리 : 전에도 말했듯이 내게 최초의 오브제는 원고지였습니다. 글을 쓰기 위한 원고지 위에 그림그리기, 그때 원고지의 기능은 다르게 변합니다. 그로부터 때묻은 농기구나 시계, 안경들은 실제로 내 작품 속에 많이 출연하는 단골손님들입니다. 그것들이 그림 속에서 현실 속으로 서서히 걸어나온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낡은 것 위에 새것 더하기(즉 제3의 흔적으로 재창조하기), 이것이 나의 오브제관이지만, 나의 경우 오브제란 설치를 위한 소도구라기보다는 애써서 수를 놓고 연장을 갈무리하는 장인의 그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을 놀래키고 흥미를 끌기 위한, 이 시대에 팽배한 지나친 센세이셔널리즘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이재언 : 수공성에 관해 말씀하시니 생각나는군요. 언제나 예술은 시대적 패러다임과 그 환경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변화에 대한 반작용의 본성도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지나친 센세이셔널리즘에 소극적으로 저항한다고 하는 점에 대해 상당수의 작가들이 공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디어와 사이버 등으로 회자되는 오늘의 패러다임에 대해 오늘의 예술이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근원적인 불안감도 감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노동이나 수공성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바로 이런 문제 앞에서 하나의 실마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같습니다. 80년대 이후 줄곧 '그리기'의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같구요. 어쨌든 그림을 그린다는 일이 시대에 뒤처진 형태의 미술로 생각될 정도로, 설치 미술이 현대미술의 주류로 보여지는 이 시대에 황선생님은 꾸준히 '그림그리기'에 몰두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만큼 선생님의 그림관은 어떤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황주리 : 물론 나 자신도 장르의 확대를 끊임없이 시도해 왔습니다. 세라믹으로 수백 개의 일그러진 인간형상들을 만들기도 하고, 오브제 작업들을 하기도 하구요. 그러나 나는 늘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남기를 희망합니다. 내게 있어 장르의 확대는 그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림으로 늘 다시 돌아오기 위한 낮선 곳으로의 여행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림'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 중의 하나라는 보수적인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재언 : 화제를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황선생님의 작품 경향들을 어느 특정 유파나 양식에 대입할 수 없다는 것이 평자의 곤혹스러움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경향이나 유파, 양식 등에 대입하는 것을 능사로 여겨왔던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말입니다. 그 어느 유파에도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유니크하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중심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일 수도 있지요. 예술이 '게임'과도 같은 것으로 정의되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고 보면 작가 입장에서 고민이 되는 문제가 아닐까요? 원래 경향과 같은 것과는 거리를 두는 입장이었습니까?황주리 : 나는 늘 그림이 좋아서 그냥 그림을 그려온 사람입니다. 만일 작가를 어느 경향이나 유파의 기수, 그리고 그 경향을 추종하는 사람들, 자신도 모르게 어느 유파에도 비교적 귀속되지 않기를 원하는 작가들, 그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면, 나는 비교적 세 번째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재언 : 대체로 세태에 대한 풍자나 해학 등이 주조를 이루는 데서 문명이나 사회에 대한 모종의 사실주의적 접근으로 보는 시각들도 있는데 그 관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 황주리 : 나 또한 문명 비판적 성향을 부드러운 폭탄처럼 작품 속에 품고 있습니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어가 아닌 걸러지고 희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내 감성의 체질인 듯합니다. 그리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늘 변치 않는 생각은, 누가 뭐래도 내게 있어 그림은 '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시,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사랑'이었으면 합니다. ● 이재언 : 좀 다른 이야기지만, 세계화 물결과 더불어 많은 작가들이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길에 전전긍긍하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그에 대한 황선생님의 계획과 가치관이라면 어떤 것일지요? ● 황주리 : 한 작가가 쌓아올리는 작품세계는 분명 올림픽 경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그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남의 안목을 맹목적으로 믿습니다. 자신의 눈이나 가치관 따위는 아예 없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이재언 : 지금까지 황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황선생님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내용들도 아주 조리 있게 잘 말씀해 주셔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번 대담을 통해 느낀 점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다음 같습니다. '인간을 진실하고 진지하게 표현하며 또한 보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로 변화시켜 주며, 게다가 인간을 보다 긍정적으로 들여다보도록 인내심 있게 역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환경이 미증유의 변동을 일으키고 있지만, 동요치 않고 의연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작가정신에 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더 좋은 성취를 이루어 세계 무대에서 우리 미술을 빛내는 세계적인 작가로 비상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선미술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박순영

Vol.20000307a | 황주리展 / HWANGJULIE / 黃珠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