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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에 대한, 허위로서의 비유 ● 고승욱의 오브제는 이쑤시개 같은 사물들, 즉 사용에 용이한 만큼 버리기도 쉬운 사물들이다. 일회용이란 말은 '사용 후 버릴 수 있는'이라는 뜻을 가진 '디스포저블'(disposable)의 번역어이고, 알다시피 '편리 이데올로기'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단히 현대적인 발명품에 각인되어 있는 풍요의 이데올로기야말로 팝아트가 예술의 원전성에 대적하는 최종적인 출처이기도하다. 그런데 이러한 일회성을 단지 반복함으로써 작가를 무덤에 묻는 앤디 워홀의 방식을 따르는 대신, 고승욱은 일회용품이나 이에 준하는 '가정용품'을 기괴한 방식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거의 전통적인 의미의 저작권(authorship)을 고수한다. ● 고승욱이 선택하고 자르고 붙인 플라스틱의 공산품적 성질은, 우선 축적과 반복, 면적의 팽창을 통해서 과장된다. 이러한 사물의 시위를 통해서 그 사물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성질이 강조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의 무기적이고 화학적인 면모 같은 것으로 요약된다. ● 따라서 이러한 싸구려 상품의 인공성은 그 물건의 부분적인 속성으로 남지 않고, 마치 자율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그 물건으로부터 분리되는데, 그것은 저질의 칼라 도판처럼 일정한 시지각적 현기증을 동반시킨다. 이러한 시지각적인 과잉현상, 사물들이 스캔들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하이퍼-비주얼한 현상은 그 자체로 풍부한 언어적인 범주를 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나치게 화학적인 가공을 연상시키거나 작위적인 인상을 주는 이 비자연적이고 낯선 느낌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한국의 근대성을 감촉할 수 있게 할뿐만 아니라 급격한 산업화나 계급상승의 욕구에 깃든 시각적 조바심, 육체적인 초조감을 보여준다. ● 고승욱의 작업은 팝아트의 시대에 농담이나 우화, 놀이, 생활언어와 같은 민간적인 소통방식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한편으로 오브제를 사회화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상징질서를 다른 상징질서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징을 의미로부터 더 확실하게 떨어뜨려 놓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시 전체를 붉은 색으로 디자인한 것은 아직도 우리 현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를 암시하기 위해서이지만, 사실 이것은 무엇인가를 '암시'하기보다는 그것이 하나의 색이며 패턴이며 효과, 혹은 경제적 효용이라는 것밖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지시'한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말해서, 하나의 정치적 자작극이나 자해적인 폭로극 같은 이데올로기의 과잉을 비웃는 한 젊은 작가의 '쎈' 농담이다. 물론 이 농담은 분노의 증후일 뿐이지만, 여전히 농담이라는 것이 우리를 또 다른 과잉으로부터 구출하는 셈이다. ■ 박찬경
Vol.20000328a | 고승욱展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