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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_김동유_김두섭_박불똥_박명천_정원철
서남미술전시관(폐관) Tel. 02_3770_3870
뷰파인더 캔버스 '00을 기획하며 ● 상상력이다. 머릿속을 떠도는 복잡한 생각들은 어떤 계기를 찾고 있다. 그리고 되살아나는 기억들은 과거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과거로서 미래를 호출할 수 있는 방법. 구속된 사고와 현실의 제약을 뚫고 요상한 생각들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더 넓은 폭과 엷지 않은 깊이를 원한다. 결국 상상은 현실에 드리워진 저항의 그늘 끝에 위치한다. ● 감각과 정보 그리고 속도와 방향 ● 예민한 감각은 정보의 량을 스스로 제어한다. 지나치게 많은 량의 정보들은 오히려 감각을 흐리게 만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새천년 남한은 '사이버월드 리더'를 자초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대국'이 되었다. 무섭도록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그 방향을 묻는다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다들 자신의 속도만을 자랑할 뿐이다. ● 감각이란 시각 이미지 생산에 있어 형식에 더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굳이 나누자면 정보는 내용에 더 가깝다. 좀더 비약하자면 감각과 정보는 결국 내용과 형식을 일컫는 것인데 그 방향이 어디가 되었건 간에 속도에 있어서 그 근원이 되는 내용과 형식은 따져야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시각이 감각의 일종이기에 감각만 믿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보 없는 감각이란 너무나 말초적이기에 유행보다 더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어떤 정보인가를 따져야 한다. 물론 정보 또한 그것을 전달하려할 때 일정의 시기와 형식을 필요로 한다. 결국 방향의 키를 정보가 쥐고 있으며 그 속도는 감각에 의해 제어되는 셈이다. ● 방향의 시대였던 80년대에는 정보를 생각했었다. 속도의 시대였던 90년대는 감각을 선택했다. 아마 감각이 손쉽게 모든 것을 새롭게 보이게끔 하기에는 더 적합했었을 것이다. 정보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데 그 껍데기인 감각만 다르게 포장하면 과거에 비해 무언가 바뀐 것처럼 눈속임할 수 있겠다는 얄팍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는 실제로 정보와 감각, 현실과 상상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원한다. 그것이 대량으로 살포되고 접촉되는 매체의 힘이던 남한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능력 변화에 따른 것이던 말이다. ● 현실을 배반하는 이미지의 힘 ● 쏟아지는 매체에 담겨진 이미지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일단 이미지는 현실을 배반할 수 있고, 실재 권력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그물망을 형성하는데 촉매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더 심각하게 고민하자면 이미지는 현실의 권력보다도 더 권력적인 부정의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것처럼 꾸며진 이미지는 그 자체로서 실재 현실을 배반하게 만들고 전혀 엉뚱한 이미지의 현실로 우리를 인도한다. ● 불행히도 남한 현실 이미지의 폭은 그리 넓지가 못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공연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현실 이미지의 폭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가 결과한 남한의 토양이 그렇고 지금도 재촉하고 있는 여러 억압장치들이 이미 이미지의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저질러진 현실 시각 이미지의 답답함을 탓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저항의 그늘에 위치한 이미지 생산의 팔자는 그 폭을 스스로 넓혀갈 수밖에 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각 이미지 생산의 폭이 넓어질수록 현실 시각 이미지의 폭이 정비례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합의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잦은 발디딤이 분명 현실의 폭을 점차 넓힐 수 있겠다는 믿음이다. 현실의 배반. 어찌되었건 그것이 다른 현실로 로그인 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 하이퍼텍스트 ● 눈앞에 펼쳐진 현장보다 권력에 의해 제공되는 매체로부터 얻어낸 정보가 더 실감나는 세상에서 진실보다 더 진한 진실은 브랜드와 도메인 그리고 업그레이드 속도와 조회수로부터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래도 현명한 유저user는 자신만의 생각들을 고수하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절대 어리숙하지 않은 어드민admin 또한 합법적으로 배려된 다양한 컬러들을 준비한다. 이분법에서 다분법으로 변화된 환경은 단품종 대량생산을 버리고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을 구축한다. 결국 각각의 유저들에게 맞는 환경을 서비스하기 위해 어드민은 더 바빠진다. 하지만 환경이 아무리 다양하게 제공된다 하더라도 이미 자본의 게임을 고수해야 하는 합법적인 어드민은 전혀 다른 생각의 모든 유저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 하이퍼텍스트는 어드민의 고민을 유저들에게 떠 넘기기 위해 고안된 것 같다. 마치 계속되는 희생을 요구하는 스톡옵션처럼 유저들의 목을 더 단단한 쇠고랑으로 묶어놓으려 한다. 어디서부터 출발하여도 상관없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각각의 유저들은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들처럼 서로 다른 정보들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어드민의 실체는 최소화된 상황에서 유저들의 자신들 고유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개운치 않은 것은 아직도 어디선가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누군가의 모습이다. 도랑치고 가재잡고. 손안대고 코풀기. ● 회화에 대한 신뢰 ; 뷰파인더 캔버스 ● 처음부터 회화라는 장르 구분에 연연할 생각은 없었다. 남한이라는 사회에서 회화라는 희한한 장르가 갖고 있었던 그 노골적인 현실배반과 맹목적인 반합법의 기질을 옹호할 의도였다. 이제 그 신뢰로부터 회화의 폭을 넓히기로 하였다. 심지어 상업목적으로 제작된 현실 시각물들을 여과 없이 전시공간에 끌고 들어와 시각 이미지 생산물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한다. 과거 '뷰파인더 캔버스'가 회화의 입장에서 현실 시각 이미지를 보았다면 이번 '뷰파인더 캔버스'에서는 현실 시각 이미지의 입장에서 회화를 보는 까닭이다. ● 문제는 시각 이미지의 내용담지체적 형식에 있다. 그 내용담지체적 형식을 감지하기 위해선 시각 이미지 생산물의 동인으로서 사유 또는 감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정확히 의도된 난삽한 이미지의 충돌 그리고 반복되고 증폭되는 의미와 형식들. 세번째 '뷰파인더 캔버스'는 남한이라는 지역성을 바탕으로 동시대를 읽어내는 다중의미의 하이퍼텍스트형 시각 이미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 최금수
■ 참여작가 소개 ● 김동유는 1965년에 태어나 금호미술관 등에서 여섯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전통 회화기법을 고수하면서도 현실 이미지의 변화에 따른 여러 양상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그의 작업들은 보는 사람의 심상 또는 위치에 따라 상이한 독해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회화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 김두섭은 1967년에 태어나 뮤지엄살 등에서 두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래픽디자이너 및 타이퍼그라퍼로서 당당한 시각 이미지의 힘을 보여주는 그의 작업은 현대미술과 묘한 접점을 이루며 강력한 프로파겐더로서 기능할 수 있는 문자 디자인의 조형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 박불똥은 1956년에 태어나 눈빛, 졸작, 결사반대, 관능의 불구에 대한 자백, 곤충채집, 사유재산 등의 제목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콜라주 또는 오브제 기법으로 시대상황을 응축시켜 보여주는 그의 작업들에서는 사소한 사물들의 병치가 만들어내는 불안, 억압 그리고 반항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 박명천은 1969년에 태어나 만화그룹 네모라미, 디자인그룹 진달래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매스매스에이지 대표로서 002, TTL, 스니커즈, 마이크로아이 등 영상 광고물 제작에 참여하였다. 시각 이미지와 현실 이미지가 믹스되면서 만들어내는 그의 감각적인 작업들에서는 이미지 축적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정원철은 1960년에 태어나 퀼른, 카쎌, 루블랴나, 서울 등에서 8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섬세함과 담백함이 돋보이는 그의 판화작품들에서는 작은 이미지의 집적이 결과한 커다란 형상의 구축이 장인적인 기질과 함께 읽혀진다. 특히 지문 또는 도장을 활용한 판화작품들에서는 각인 또는 증명의 의미가 함께 녹아 있다.
Vol.20000412a | 감각과 정보, 그리고 시각의 힘-뷰파인더 캔버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