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야쿠르트 아줌마

책임기획_전용석   2000_0421 ▶ 2000_0513

임흥순_나의 신사문화답사기 중에서 일부

참여작가 강은수_임흥순_고승욱_박찬경_윤정미_이창준 전용석_김영미_김태헌_이진경_박연선

갤러리우덕 Tel. 02_3449_6071

1. 제목에 보여지듯이 이 전시는 야쿠르트 아줌마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에 대한 것이다. 특별히 도시에 대한 전시를 하는 것은 물론 위기에 처한 예술과 삶의 경계를 되묻고, 작가를 포함한 관객이 자신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관계적, 역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비판적 질문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미술에 있어서 어떤 '즐거움'을 되찾기 위한 동기에서 우선적으로 비롯된 것이기도 한다. ● 2. 야쿠르트는 특별히 어떤 과거를 연상시킨다. 국내에 유산균 발효유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71년 8월 10일 한국야쿠르트가 용량 80ml 짜리 야쿠르트를 선보이면서부터 이다. 발효유라는 '이상한' 음료를 세상에 소개하고 홍보하는 문제, 가정주부의 사회활동을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뚫고 야쿠르트 아줌마를 적절하게 산업체계 내부에 위치지우는 문제, 건강/기쁨/가정/행복(이들은 야쿠르트 광고전단에 자주 등장하는 카피의 중심개념들이기도 한데) 등의 근대적 가치를 약호화하는 문제 등 한국야쿠르트가 초기에 설정한 문제들에서 한국 근대화의 몇몇 측면을 엿볼 수 있다. ● 3. 근대화 내러티브와 함께 형성된 야쿠르트 아줌마의 정체성은 공적/사적 코드들이 묘하게 얽혀 있는 이상한 공간감을 연상시킨다. ● '...저는 야쿠르트에 들어와서 정말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했는데... 지금의 저는 부자예요. ...노후보장도 튼튼히 해놨죠. 더군다나 지금 이렇게 야쿠르트에서 후보점 여사님들에게 인생의 성공담을 들려줄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도 부자지요... 현여사는 신념에 찬 목소리로 후보점여사들에게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일을 시작할 것을 역설한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이렇게 좋은 날을 맞게 해준 야쿠르트에 정말 감사드려요... 25년간 고객과 동료 여사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무에서 유를 성취한 ...여사' ● '처음 야쿠르트에 입점했을 때, 엄마를 찾으며 혼자 울다 지쳐 잠들어 있을 세 살바기 어린 딸 지연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었지만, 남편의 사업실패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사는 모질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현실의 냉엄함이 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쿠르트 사보에서, 강조는 필자) ● 한 야쿠르트 아줌마의 성공담/후일담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의 개인적 퍼스낼러티는 그렇게 한국 근대화 내러티브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공공적'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회상에는 이상하게도 야쿠르트를 다양하고 재미있게 먹어 보려 애쓰거나 그것을 두고 형제와 다툼질하던 우리의 기억과 같은 '사적' 내러티브가 없다. 자신의 고초를 되돌아보는 그의 시선은 바로 사진적 죽음 그대로이다. 우리는 과거를 현실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기록'한다. 즉, 망각을 위해 언어화한다. ● 4 . 신사역 사거리 주변은 전형적인 개발지구로서 도시의 일반적인 표면-넓은 대로와 복잡한 교통, 적절히 정비된 가로-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히 기획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신사동의 비균질성-다층성이다. 신사동에는 빌딩들도 있지만 빽빽한 주거지역도 있다. 학교와 교회가 있고 최고급 소비문화가 자리잡은 곳도 있다. 이러한 다층성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스케일을 낳는다. 그것은 물론 건축적/도시공학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심리적인 것이다. 그러나 크기에 대한 다양한 감각은 도시디자인에 있어서 공간분할 상의 위계와 충돌한다. 브로드웨이 극장 앞에서 우리는 코딱지만한 구들장을 상상할 수 있지만 극장의 스케일과 구들장의 스케일은 감각적으로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갭은 물리적인 차원의 것만은 아니다. 사실 그러한 충돌은 우리가 도시디자인적 위계를 일종의 명령으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동선과 시선은 건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신사동의 뒷골목들, 그리고 유흥지역들은 이러한 규정들에 '빵꾸'를 내는 공간들이다. 또한 집합주택지역은 명품들이 즐비한 상가들과 등을 맞대고 이접해 있다. 어떤 옥상은 아래층의 닫힌 공간과 오픈 스페이스의 경계로서 어떤 '주름'들을 보여준다. 신사동은 그렇게 이접의 기다란 목록을 가지고 있다. ● 5. 신사동 지역 주변의 공간감에 있어서 이접-다층성은 한남대교 남단에서 시작하는 경부고속도로의 공간감, 최근 시행되고 있는 한남대교 남단 램프 가설/확장 공사가 보여주는 스케일을 복잡한 이면도로로 구획되는 주택지구의 공간감과 관계지으려 할 때 가장 두드러진다. 우리는 불과 몇분 사이에 엑스라지(XL) 스케일에서 1평 남짓한 구멍가게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대단히 과격한 공간적 드라마를 겪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전혀 극적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우리는 공간을 '이미' 약호들로서만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리와 강, 차선, 시야를 막는 거대한 구조물, 신호등, 방향을 지시하는 표지판, 상호와 번지들이 한남대교 남단에서 신사동 어느 구석진 주상복합건물에 위치한 사무실까지 찾아가는 흐름에 존재하는 전부이다. 내가 차도 위에 있든, 극장 앞에 있든, 아니면 주택지구 어린이 놀이터에 있든 '이동'하는 한, 머리 속에 구성되는 공간은 질적으로 균일한 약호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90년대 들어 거리로 진출하기 시작한 사적 기호들-대형 전광판과 빌보드들이 홍보하는 개인적 취향들, 이에 영향받은 중간 규모 상가들에 내걸리는 더 로컬한 약호들; 소금인형, 죽마고우, 술과 장미의 나날들, 예삐 미용실...-이 또 한번 약호의 목록을 늘리면서 균일화된다. 이런 경향은 엿보기를 허용하는 대형 유리창, 쇼윈도 등의 일반화에 의해 건축적으로 뒷받침된다. 그렇게 본다면 앞에 이야기한 신사동 사거리 지역의 '이접성'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스케일의 차이와 공적/사적 공간의 차이 등은 의미 있는 차이인 것인가. 우리는 짐 자무시의 대사처럼 '분명히 새로운 곳인데 왜 이리도 낯익은 거지?' 라고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 6. 이렇게 약호화의 경향성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상가들이 열지어 있는 가로와 그렇게 얽혀 있는 스케일감각을 나름대로 장소화 하는 주민들의 자취들은 서울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다. 신사동에 다른 것이 있다면 가로공간의 이면에 80년대 번창한 룸싸롱들이 숨어 있다는 점, 그리고 그에 준하는 여타의 소비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정도가 아닐까. 즉, 신사동의 문제와 그에 대한 적응 및 해결은 신사동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사동을 그것의 물질적인 특성보다는 어떤 통계나 그래프, 이미지들이 재현하는 바를 통해 파악한다고 해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는 것이고 여기에 변형의 가능성이 위치한다. 즉, 우리가 다큐멘타리하겠다는 것은 신사동이 아니라 신사동의 이미지, 그 이미지를 대면하면서 생성되는 주체, 그리고 그렇게 차원을 옮겨가며 변형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 문제는 오히려 가로공간 자체보다는 '누가' 그런 다양한 크기 감각을 헤집고 다니는 가이다. 혹은 다양하고도 심리적인 크기들을 경험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야쿠르트 아줌마는 갤러리를 후원하는 회사를 상기하고 떠오른 아이디어이지만 실제로 방범대원이나 경찰, 신문배달원 보다는 풍부한 맥락에 놓일 수 있는 주체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정체성은 그의 개인적 사연과 그가 대면하는 크기의 감각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전시는 여기에 개입한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그가 어떤 스케일로 공간을 다니는 가에 따라 매번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건축적 구축으로서 작은 공간에 조응하여 작은 크기의 주체를, 커다란 공간에 조응하는 커다란 크기 감각의 주체를 수시로 교환하며 이미지에 대한 3차원적 지형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야쿠르트 아줌마의 탈을 쓰고 데이터로 재현되는 신사동을 상상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 혹은, 커다란 스케일의 감각으로 작은 공간들을 대하는 야쿠르트 아줌마-우주적인 공간감각으로 한 집 한 집의 디테일을 기억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어떻게 상상될 수 있는 것일까. ● 7. 신사동 사거리 지역과 야쿠르트 아줌마를 관련시키는 축은 시간과 스케일이다. 신사동의 가장 구석진 주택가에서 한남대교 쪽으로 진행해 나오는 것은 겹겹이 쌓인 포장지를 뚫고 오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역사적 지층을 통과하는 것인 동시에 작고 혼란스러운 스케일이 더 큰 스케일에 의해 숨겨지는 과정을 횡단하는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의 회상은 고통스러운 '개인적' 기억-지리멸렬하고도 정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사랑과 행복이라는 커다란 공간으로 향해 나오는 시공간적 횡단이다. 그 횡단은 신념과 책임감에 의해 조직되어 있다. 전시는 이런 약호의 공간을 변형한다. ■ 전용석

Vol.20000426a | 신사동-야쿠르트 아줌마展

Art Peac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