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0_0520_토요일_04:00pm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Tel. 0561_745_7075
...작업을 하면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관해서 나 자신에게 가끔 묻곤 한다.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것들은 계속 현실 속에 오브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만 찍어도 다르게 나오는 투명한 하늘빛이라든가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이라든가, 가슴 저미는 첼로음색이라든가 그런 것들이었다. 이는 모두 멈추지 않고 계속 변하면서 흐르는 것이었다. 내게는 어떤 순간의 느낌만을 남긴 채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구름 같은 것들이었다. 이유는 아마도 마음속에 기억의 앙금이 되어 '환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이 '환상'이며 '상상하기' 혹은 '상상 연습'을 통해 아름답고 즐거운 것들의 에너지를 느끼면 나는 살아있다는 실감이 된다... ● 안성희의 작업노트 중에서● 1. 하얀 미술관이 풀밭으로 바뀐다.(!) ● 상상연습 -'나는 풀밭에 있다' 전을 통해 작가가 발언하고자 하는 것은 가상공간에 대한 것들이 하이테크 미디어 공간에서 벌어지는 것만큼이나 관람자의 기억의 공간, 곧 상상과 기억들이 주조해낸 공간이라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가상공간은 우리들 내부에서 만들어진 기억의 편린들과 작은 상상의 나래 들이 엮어내는 공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전시는 그 공간 속을 채워 가는 몫이 관람자에게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관람자의 적극적인 수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전시 공간은 커다란 빈 그릇처럼 다가오는 것이고 그 내용을 각기 다른, 다양한 관람자의 기억과 상상력으로 채우는 전시인 것이다. ● 이 전시는 200평이 넘는 전시장 공간의 내부 벽 하단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풀밭으로 꾸며놓음으로써 구성된다. 그 이외의 공간은 텅 빈 채로 나둔다.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관람자의 당혹감은 사실상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화려한 수사학만큼이나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놀라움과 당혹감의 충격만큼 양자는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가상공간에 대한 문제가 심적 공간의 구성, 개인들의 상상력과 기억들이 엮어낸 공간임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각도에서 가상공간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다. 요즈음 들어 부쩍 논의가 늘어난 미디어, 테크놀로지 공간이 갖는 모호성에 대한 작가적인 발언이기도 하다. ● 전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 풀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풀밭을 떠올려 '상상체험'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소풍가서 뛰던 풀밭, 잡초가 무성하던 동네 뒤 언덕 등등...작가가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벽에 그려진 풀 그림이 아닌 관람자 개개인의 기억 내부에 존재하는 풀밭인 것이다. 이 마술의 주문은 '나는 풀밭에 있다' 이다.
2. 기획 의도 ●: 이 전시는 회화의 공간확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의 일면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여기서의 작업의 공간확장은 벽에서 삼차원의 공간으로 가느니, 미술관 외부로 나가느니 하는 논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의 벽 저 너머 내부 공간으로의 무한한 확장을 꾀하는 것이다. 선재 미술관의 물리적 공간은 작품을 늘어놓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상상 속으로의 출구」가 되어 살아 움직이는 장소가 된다. 작가와 관람자가 모두 이 「상상 연습」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요즈음 거론되고 있는 21세기의 미술관의 물리적 존재에 관한 또 하나의 이유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자가가 주장하는 Inter의 개념, 즉 소통의 개념의 확장은 우리의 외부가 아닌 내부로 이어지고 그 완성은 우리의 '내부'에서 상상이 촉발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업의 외부에서 작업이 완성되는 것이다. ● 3. 풀밭에 관한 기억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 풀밭에 관한 느낌들을 적어 보내주세요. 삭막해진 도시의 한복판을 거닐다가 문득 발견한 작은 풀밭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요? 그런 이야기들이 듣고 싶습니다. 제게 메일을 보내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 민병직
Vol.20000518a | 안성희展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