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그 주술적 힘

전시기획 / 김희은_백현아_원금옥_조아영_최빛나_최은하   2000_0601 ▶ 2000_0630

양아치_대한미국_천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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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병철_김지애_김지원_김해민_이가경 이은정_이진경_최미정_황의정_양아치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01번지 Tel. 02_737_7650

미술 그 주술적 힘 ● … 이 시대의 그림은 이른바 주술의 도구였던 것이다. 즉 그림은 짐승이 그 속에 걸려들게 되어 있는 함정이었다. 아니, 이미 짐승이 걸려든 함정이었다고 말하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대상 그 자체이며 소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소망의 달성이었기 때문이다. 구석기 시대의 사냥꾼 예술가는 그 그림을 통해 실물 자체를 소유한다고 믿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려진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발췌 ● 이렇게 미술과 주술이 각각의 이름을 갖지 않고 하나의 영역에 있었던 선사시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줄까. 가상이 곧 현실이 되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 즉 대상을 재현하는 일이 바라는 바를 이루는 일과 구별되지 않았다는 사실. 주술로부터 분리되면서 미술이 자신의 자리를 획득한 것이라면, 또한 주술이 종교와 과학에 의해 철저히 대체되어 단지 미신일 뿐이라고 할 때, 이것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새삼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본 전시는 "미술 그 주술적 힘" 이라는 제목으로서 그것에 대한 해답을 시도해본다. 현대에서도 주술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대적' 주술에 미술이 작용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술에 바로 주술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이(혹은 예술이) 우리 삶 깊숙한 문제로부터 시작되어 그 삶으로부터 품어진 강한 뜻과 소망을 담고 또 이를 시각적 형식을 통해서 풀어내어 미술가 자신은 물론이고 감상자에게 어떤 힘을 발휘한다는 것, 나아가 그러한 이유로 해서 미술이라는 행위 자체가 삶을 일궈나가는 필연적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 이것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 주술이란 사전적으로 '인간이 뜻대로 할 수 없는, 인간 능력밖에 있다고 여겨지는 일상적 삶의 문제를 초자연적인 특수 능력에 호소하여 해결하려는 일련의 기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래서 주문이나, 주술도구, 특정한 행위들로 구성되는 주술은 -흔히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져의 분류를 따라- 물을 붓는 의식으로 비가 오게 하는 기우제나, 앞서의 동굴벽화처럼 유사법칙을 이용하는 모방주술과,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털을 가져와 품어 그 사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접촉의 법칙을 따르는 감염주술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분류는 다시 주술의 의도에 따라 건강을 비는 것과 같이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내는 백주술과 증오하는 대상을 인형으로 만들어 바늘로 찔러 고통을 주는 경우처럼 저주를 내리는 흑주술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술의 동기와 효력은 무엇보다 삶에서 우러나온 강렬한 소망 그리고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주술현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점을 얘기해보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책상,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코르크 판을 둘러보아야 겠다. 여기에는 정말 잡다한 것들이 이런저런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여행에서 산 명화 엽서부터, 무언가 나를 닮은 것 같아 잡지에서 오려낸 어린아이 사진, 맛있는 음식, 섹시한 모델의 사진들. 놀러가서 찍은 어여쁘고 고고한 오리사진, 아빠가 외출하실 적 남기신 메모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조각 사진, 그리고 또 하버드 대학교 정경이 찍힌 엽서, 또 정성스레 휴지에 옮겨 적은 윤동주의 서시, 그리고 신문에서 오려낸 '욕망을 절제하려면'이라는 제목의 기사, 또 노오란 색지에 크게 써놓은 지난 해 이번 해의 다짐들-열심히 살자!-, 때때로 발견하거나 생각나는 " I live fully in every moment." 류의 좋은 문장이 쓰여진 색색 포스트잇 까지 이 많은 것들이 약 1미터 길이에, 그것의 3분의 2정도 되는 높이의 코르크 판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다. ● 또 그 코르크 판에서 살짝 눈을 내리면 지지난 해부터 계속해온 그림잡기장 세 권이 몇몇 사전류와 함께 나란히 꽂혀 있는데 그 잡기장을 열어보자면 이러하다. 나와 나의 옛날 남자친구가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을 그린 그림. 가출해서 이제는 뭐하고 어떻게 사는지 알 수없는 우리집 강아지 우람이의 귀여운 모습 그대로를 그림, 너무나도 멋진 영화나 연극을 보고 나선, 행복한 감정을 주체할 줄 몰라 그것이 주는 이미지들을 그리곤 했던 것, 또 어릴 적 먹던 사탕껍질을 붙였다거나, 너무나도 화가나 주체할 줄을 모를 때 시퍼런 얼굴에 빨간 불을 내뿜는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 섬뜻한 욕을 주변에 적어놓고는 서슬 퍼런 곰팡이를 찍은 사진을 붙여놓은 것, 맛있었던 음식점의 젓가락 포장지를 붙여놓은 것 등등. ● 누가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어찌하였는가'라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들이다. 코르크 판에 붙여놓은 것들은 내가 동경하거나 좋아하는 모습들, 혹은 너무나 좋았던 기억이어서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들, 또 꼭꼭 기억해서 담아두어 생활로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고, 그림일기에 있는 것들은 주로 기분에 좌우되는 것으로 행복하거나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울 때 그 기분을 즐겨가며 재밌게 다시 한번 종이 위에서 그것들과 놀아보는 것이다. 화가 몹시 날 때는 나를 화나게 한 대상을 그려 놓아 해코지를 그것에 하기도 하고, 아님 화난 나의 모습을 그저 표현함으로써 화를 풀어보고 이 흥분을 가라앉혀 보기도 한다. 또 슬플 때는 역시나 그 슬픈 마음을 색깔이나 형태를 써서 그대로 옮겨보기도 하지만 슬픔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그림으로 재현시켜 놓기도 한다. 그래서 슬픔이 조금씩 가시고 차분한 마음을 찾게 된다. ● 나는 여기서 '이것들이 바로 주술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혹자들이 미신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이유가 되듯, 지금의 시대에서 주술이 어떠한 식으로 초월적, 영적 영역을 열어 놓으며, 얼마만큼의 "실제적 혹은 초월적"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여러 종류의 굿이 있지만 그것이 한이던 소원이던 한 번 "신명나게" 풀어 보자는 데 큰 취지가 있는 것이라면 현대적 주술현상이라는 이름을 부칠 때 이는 한판의 굿이요, 소원풀이라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자기 최면과 자기 암시를 통해 일상에 파고드는 시름이나 권태, 아쉬움, 안타까움, 슬픔, 때로는 너무나도 강한 행복감, 흥분 등을 동반하는 '문젯거리'를 자신도 모르게 극복하는 수단인 것이다. 때로는 이러 저런 주문을 외우며, 의미 있는 물건을 끌어와 나만의 은밀한 주술을 걸기도 하고 때로는 제의에 참가하듯 집단적으로 커다란 주술행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 중요한 점은 이러한 주술행위 혹은 현상들이 우리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갑에 곱게 접어 담겨져 있는 친구의 쪽지에, 수첩에 가지런히 붙어 있는 스티커 사진들에, 가방에 걸려 걸을 적마다 달랑달랑 뒷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 인형에, '바꿔 바꿔'하며 매일 같이 듣는 노래가사에, 사진과 작은 추억의 물건들이 가득 담긴 작은 상자에, 사랑하는 사람이 건네준 그 사람의 향기가 묻어 있는 손수건에, 책갈피로 곱게 끼워놓은 연예인 사진에, 담고 싶은 쭉죽빵빵 모델의 사진에, 매일 꼭 챙겨먹어야 힘이 날 것 같은 콜라에, 오늘도 고집하는 검은색 옷에, 주마다 바뀌며 좌우명이 되는 핸드폰 화면의 문장에 또 한편으로는 가수들의 콘서트에 가는 것이나, 테크노 클럽에 가는 것이나, 붉은 악마로 무장하여 축구장으로 가 신나게 응원하는 것이나, 입시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팔고사고주고 하는 엿이며, 포크, 껌 등 또 구석진 곳 혹은 산 정상 바위의 낙서들, 사찰주변에 소복이 쌓인 돌들, 소담한 그릇에 매일같이 물을 떠놓고 가족들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에나, 요즘도 눈에 띄는 마을 정승들 이 모든 것에 주술적인 의미와 효과가 들어 있다. 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해결 방법뿐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매개로 해서 나의 정신적인 힘(혹은 진정 나도 모르게 나를 초월하는 어떤 정신적인 힘에 의해서 일까)에 믿음을 갖고, 나의 소망을 기원한다. 어떤 물리적 사물에 내 뜻을 담기도 하고, 어떤 행위에 나 자신의 염원과 마음을 실어내고, 그래서 몰두하고, 또 다시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며 다음 순간을 살아나가는 힘을 얻어내는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이미 전통적인 주술현상에서 주목되었듯이 현대의 주술현상에서도 그것에 담겨지는 내용과 함께 매개체로서 색이나 형태의 시각적 요소가, 미술적 요소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이 주술의 결정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술과 미술이 하나였다는 점을 상기할 때 사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미술은 도구에 멈출 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 주술로 기능하고 있다. 미술 활동 자체가 이미 주술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주술사로서의 미술가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을 불러내올 수 있을 것이다. ● 지중해에 피그말리온이란 젊은 조각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볼품없는 외모를 지녔던 그는 사랑에 대해서는 체념한 채 조각에만 정열을 바쳤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도 언젠가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심혈을 기울여 여인의 나체상을 조각했습니다. 그 조각은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여인상이었고 그는 정성스럽게 다듬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여인상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랑의 감정으로 싹터갔습니다. 그래서 매일 꽃을 꺾어 여인상 앞에 바쳤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섬에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피그말리온은 신께 그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었노라며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은 여인상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피그말리온이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조각상에서 점점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며 사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피그말리온의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인 신이 그 조각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조각상이 살아 있는 여인으로 변하자 피그말리온은 결혼을 하고 파포스라는 딸을 낳습니다. ● 주술사로서의 미술가, 미술의 주술적인 측면은 여인의 나체상을 만들어 사랑하게 된 피그말리온의 신화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여인상이 실제 사람으로 변하게 되기 이전까지로 자른다고 해도, 우리는 여기에서 충분한 "미술 그 주술적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조각가가 가진 현실에 대한 문제는 작업에서 이내 소원의 형태로 동기로 작용하는데, 이는 주술의 근본적인 조건이며, 이 소망은 기도와 같이 정성드레 공을 쌓아 가는 과정 속에 녹아들어 어느덧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일종의 소망성취가 된다. 설령 어떤 특정한 결과물을 갖지 않더라도, 여인 조상이 진정 '현실의'-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하는 현실이 진정한 현실일까- 여인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작업 과정에서 이미 상상은 미술가의 마음속에서 실재처럼 피어나는 것이다. 심리적 변화라 할 수 있을 이것은 일종의 치유로서 미술이 갖는 중요한 효과가 된다. 가상의 창조이지만, 환상이지만, 그것은 간절한 마음의 바램과 함께 놀이적 즐거움, 그리고 색과 형태를 통한 미적 매혹과 결합하여 현실의 짐을 덜어놓고, 한편으로는 그 짐을 풀어헤치며 주술이 되는 것이다. 미술이 작업을 직접 행하는 작가에게 그리고 나아가 감상자에게 주는 것은 이러한 '인정된' 환상이다. 그러니까 미술에서 꿈을 꾼다는 것 혹은 품는다는 것은 그것이 그저 꿈으로 끝날지라도 그 꿈이 삶으로부터 길어졌다는 것과 다시 삶에 영향을, 진한 향기 같은 영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주술이 단지 미신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정신적인 측면과 관련한 것이며, 다시 주술로서 미술이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미술은--확장해서 많은 이미지들은- 현재와 엮어진 과거를 불러일으키고, 가려진 현재를 보여줌과 동시에, 또 미래를 내다보게 해서 지금의 우리를 즐겁게 하고 닦아주며 단단히 한다. 예술적 창조의, 미술의 주술적 힘은 바로 이것이다. ● 이 전시에 참여하는 10명의 작가들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미술의 주술적 힘을 보여주고 체험하도록 한다. 이들의 작업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주술, 그리고 현대적 주술현상들과 내용적, 형식적 측면 양자에서 그 맥을 같이하는데, 주술에서 보이는 시각적, 미술적 측면, 미술에서 보이는 주술적 측면이 이제는 하나로 보여지는 것이다. 우선 김병철은 작가 자신을 닮아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조각작품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뚝 선 채 으스스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장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김지원은 거대한 병풍과 같은 효과를 주는 언 땅끝 마을의 풍경을 담아내는 유화작품으로써 작가 고유의 통찰력을 통한 작업 그 자체가 일상적인 현실에 가할 수 있는 주술적인 힘임을 보여줄 것이다. 이것이 제1전시실에서 보여질 작품들이며 제2전시실에서는 이진경이 노란색이 쓰이는 일상적인 사물들을 모아 변용시킨 작업과 함께 노란색을 주제로 한 회화, 사진, 설치의 복합작업을 선보인다. 색이 우리에게 거는 주술이 그녀의 삶의 내용을 담아 펼쳐진다. 최미정은 색색의 오일물감으로 칠해진 종이 레이어 설치작업을 통해 서낭당의 오색 끈을 연상시키며 매일의 기원을 담아내고, 김지애는 새들이 쌍쌍이 나는 모습을 통해, 부부간의 사랑이나 이성화합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는 민화와 같이, 한 쌍의 부부를 따사롭고 정겨운 모습으로 재현하는 평면회화작업을 선보인다. 양아치는 굿이 벌어지는 장소나 신성한 땅, 혹은 정복한 땅을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던, 지금에 와서 역시도 국가나 집단을 드러내는 상징작용을 하고 있는 깃발을 이용하여 가려운 현실을 재치 있게 긁어줄 것이다. 제3전시실에서는 김해민이 유사주술사적인 역할을 떠맡고 있는 텔레비젼을 매체로 하여 비디오 작업을 보여준다. 황의정 역시 비디오 작업이 주가된 작품을 보여주는데 자신의 방 내부를 찍은 사진으로 도배된, 역시 실물크기의 자신의 방이 전시장에 재현되고 그 안에 비디오가 설치된다. 이는 삶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와 이동, 그리고 일상에 스며든 주술적 측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가경은 화장실의 은밀한 낙서와 같은 맥락에서 화장실을 그대로 설치 그 안에 작가의 내면세계를 거침없이 털어놓는 낙서회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은정은 여성의 이상적 신체를 실리콘으로 떠서 만든 옷가지들을 모아둔 신체 의상실을 만들어놓는데, 고대나 지금이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미에 대한 염원과 이 염원을 대리적으로 성취시켜주는 주술사의 모습으로 미술가 자신을 그려낸다. ●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시각이미지-대표적으로 수많은 광고들, 그리고 표지판들-,가 내뿜는 힘의 파장을 인식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힘의 파장을 이유로 모든 걸 주술로 보게 되면 이 이미지들이 하나같이 아우성을 치는 것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한다. 그러나 시각이미지의 하나이면서도, 흐릿한 경계를 가지고 다시 미술이라 불리우는 것들이 주술을 걸 때, 이것은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아른하면서도 즐거운 체험을 제공한다. 바로 우리가 함께 일상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그래서 공유할 수 있는 뜻, 그 뜻의 내부를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누구나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고민이나 문제, 감정, 의지, 나아가 간절한 소원을 담아 작가 고유의 독특한 시각적 형식-무거운, 재치있는, 날카로운, 따스한 등등-으로 이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술이 가지는 힘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미술이 주술이라는 다소 성기고 거친 얘기가 의미를 갖는 지점이다. 즉 삶으로부터 미술이 나오고 다시 미술이 삶에 봉사한다는 것이며 이번 전시는 바로 이를 확인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있다. 이제 전시를 열며, 나도 주술을 걸어볼까. ■ 최빛나

Vol.20000601a | 미술 - 그 주술적 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