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지난 6월 초순에 서남미술전시관에서 있었던 이강우전과 관련된 글입니다. 원래 전시기간 중에 비슷한 원고가 발송된 적이 있으나 전시를 마치며 새로이 첨가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많아 다시 발송합니다.
혹시 시각 이미지 생산자 분들이나 전시기획자 분들 중에서 이강우씨처럼 자신의 작업을 완성하고 난 후 작품설명 및 주장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미지 속닥속닥'을 활용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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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CORD_GAZE_PRISE OF THE LIGHT
서남미술전시관(폐관)
전시 개요 ● 이번 개인전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주제로 작품이 구성되어 연출되어 있다. 하나는 이제까지 내가 진행해 온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주로 '小서사'로서의 일상과 삶 그리고 '大서사'로서의 역사적 사건('79년 부마항쟁)에 대한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된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의 '문화풍경'을 인물사진을 통하여 '개념적으로 인식'해 보려는 의도로 시도된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넓게 보면 위 두 가지의 주제와 작품구성이 전혀 다른 내용의 것들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내용과 시간성 그리고 의미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태도의 차이'가 상존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작업의 대상을 사진의 '기록성'에 기대어 주로 '개념적'으로 다루려고 한 것이 그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작품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과 문제들을 결국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가 작업의 초점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연유로 작품의 전반에 걸쳐 짧은 문장이나 인터뷰 자료 그리고 서류 등 몇 가지 텍스트 자료들이 많이 활용되었다.
■ 작품 1 ● COLORFUL 遺傳.(反)遺傳 COLORFUL ● 구성·76.2×170cm 크기의 컬러 인물(뒷모습)사진 4점과 텍스트들 ● 텍스트·시각적인 VISUAL / 촉각적인 CONCEPTUAL / 물질적인 TACTUAL / 개념적인 MATERIAL
■ 작품 2 ● 문화풍경, 시선 그리고 개념적 색채에 관하여 ● 구성· 76×240cm 크기 20장의 컬러 인물사진, 20개의 텍스트들로 구성 ● 제작과정· 20인의 젊은 대학생들이 현재의 다분히 시각적인 문화현상에 빗대어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연출하고 작업에 참여해 줌으로써 제작된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대형으로 인화하여 각 사진마다 그 문화현상과 관련된 짧은 경구들을 넣어 설치.
●작품 1, 2에 대한 설명 ● 나는 최근에 새삼 '색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색채는 형식주의적인 미술이나 사진에서 그랬었던 것처럼 매체 그 자체의 물질적 조건 안에서 가졌던 관심의 대상으로서의 색채가 아니라 그것이 '기능' 하거나 '의미'를 갖는 방식에 관한 질문의 대상으로서의 색채에 대한 관심이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실제의 공간과 삶 속에서 그것이 행사하는 어떤 '정치적 기능'과 -여기에서의 정치적 기능이란 어떤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정치적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행사하는 어떤 미시적인 정치행위와 연관된 기능을 말한다- 그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 Colorful! Colorful! 나는 요즈음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으면서 현재 도시의 가장 특징적인 문화현상의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20대를 전후로 한 젊은이들의 색채에 대한 혁명적 태도와 사고, 감각 그리고 그것에 대한 열광에 주목하고 있다. 요즈음 거리를 나가보면 그 어느 때 보다도 색채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대단한 구경거리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그들 자신의 신체에서 뿜어내는 언어가 가장 강한 언어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사람들의 눈은 그들 신체의 미묘한 변화와 제스처 그리고 형태의 특징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원래 '몸'으로 하는 언어는 가장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감각에 매우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사람들, 특히 20대 전후반의 영맨 들의 신체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최근의 색채감각들은 바로 그런 양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그것은 도심에서 가장 강력한 '풍경'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視감각'을 매개로 한 그리고 본능적 감각으로 무장한 스펙터클 한 인간들이 점점 이 도시에 넘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과 관련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의미들을 생각해 보았다. ● 먼저 그것은 충분히 '자극적'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튀는 세대! 그들에게는 '겸양' 같은 고전적인 몸가짐이 더 이상 필요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어떤 '도시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것 같지도 않다. 또한 그들에게는 신체를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신체에 적극적으로 '메스'를 가하여 다른 형태와 감각을 가진 '다른 나'로의 변신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거기에 '색채'까지 덧붙여 이미 달라져 있는 자신의 신체에 '또 다른 나'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건설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의 신체는 단순한 '시각'을 넘어 충분히 '촉각적'이다. 즉 우리로 하여금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게 연출된 그들의 신체는 또한 다분히 '물질적'이기도 하다. 물질은 결국 소유의 욕망을 자극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하부구조인 토대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각적인 면에서 출발한 그들의 신체변화는 하나의 '신화'가 되는 셈이다. ● 그리고 그런 현상 속에는 어떤 '차이'에 대한 강한 일종의 '강박'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추측하건 데, 요즘처럼 자기의 신체에 대하여 자기 자신이 그렇게 불만을 가져본 적이 과연 있었던가를 한 번 더듬어볼 일이다. 사실 그것도 이미 하나의 '강박'이 되어버린 듯 하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오로지 '남과 다른 나'만이 중요한 듯 하다. 즉 그들에게는 '개성'이라는 말과 그것이 자주 혼동되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한 '차이'만이 의미가 있을 뿐더러 그렇게 남과 다른 자신의 차별성을 시종 고수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이 숙명적으로 물려받은 인종학적인 특징도 과감하게 포기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들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유전학적인 신체의 형질을 필요에 따라 차례차례 거세해 나아가곤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신체 자체가 받는 어떤 압박도 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발생하는 신체의 고통과 훼손을 끝내 감내 해낸다. 그래서 종국적으로는 자기의 신체를 어떤 '이미지의 화신'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한다. 결국 그것은 철저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신체는 이제 적극적인 '이미지 정치의 場'이 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면 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해진다. 거기에 또 다른 어떤 문화권력의 기도가 숨어있지는 않나 주목해볼 일이다. 사실 개성이라는 것도 잘 생각해 보면 어떤 주체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자기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고 또 불가능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즉 요즈음 같이 문화산업이 엄청나게 번창해 있고 그것의 전략과 전술 아래에서 양산되는 각 종 이미지들에 철저하게 포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이미 우리들에게로 철저히 내면화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선험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그런 이미지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조종당하면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 루카치 같은 사람은 그것의 암울한 폐해를 절절하게 선견하며 경고하지 않았다고 하던가? 바로 그러한 면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그 차이 혹은 차별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흐름으로 위장된 의도된 전략은 혹시 아닌지를 예의 주시해 봐야 될 일이다. ● 반면에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변수는 역으로 그런 '차이'에 대한 집념이 어떤 적극적인 '발언'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미 현대미술 속에서 혹은 최근의 몇몇 영화영상 속에서 그런 점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이 기존의 신체에 대한 사회의 통념에 대한 도전 혹은 저항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마치 힙합 문화를 그 점에 빗대어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들을 나름대로 어떤 긍정적인 가능성과 함께 가늠해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그런 현상과 그들의 문제가 어떤 '구조'나 '제도'적 차원의 문제로 격상된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 봐야 할 것은 그런 가능성들이 실제로는 다분히 소비적이며 분절적인 문화양상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면 마치 어떤 대중가요 스타가 기존의 질서에 실컷 반항하는 투의 욕을 해대면서 일정한 성과와 이득을 취하자마자 간단없이 무대 뒷전으로 잠적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한 때 설파하여 열광을 받은 그 저항감각은 그야말로 이미지로서의 감각 혹은 메아리로만 남듯이 말이다. 저항의식마저도 치밀한 상업전략 아래 '돈'으로 사고 파는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좀 더 냉정한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한편 위와 같은 시각 문화적인 현상 속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미지와 결부하여 '본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또 다시 제기된다는 점이다. 그 점은 또한 사진과 관련된 본질적인 화두 이기도 한 것일 진데, 즉 '시각적 이미지'와 '본질'에 관한 제 문제이다. 그런 가운데에 거기에 덧붙여 최근 이미지론者나 혹은 문화론者들의 태도처럼 우리가 그런 현상을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해석해내야 할 지'가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거기에 또한 주체들의 '시선'의 문제도 본질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이 자신들의 신체를 통하여 어떤 '발언'을 하거나 또는 '이미지 정치'에의 시도는 결국 그것에 대한 대상과 목표가 어떤 형태로든 필연적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그 상호간의 시선의 교환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힘의 교차가 '본다'는 문제의 의미를 매우 중요하게 부각시키기 마련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현실은 사진으로 기록되고 물질화 되기 이전에 이미 지극히 '사진적'이다라는 말이다. 어쨌든 사진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인하여 종국적으로는 사진을 매개로 하여 교차된 시선에 어떤 위계질서-이것은 사진의 시선작용문제에서 나쁜 점인 것 같다. 곧바로 열등감과 타자의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광고사진'이 바로 전형적인 예이다-를 낳는다. 사진에서 교차되는 시선은 때로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잠복해 있는 타자를 예기치 않게 주체로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즉 단순하게 표현하면 '무의식'과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선을 매개로 한 사진의 존재방식이자 그런 사진을 바라보고 인식하는 현대적인 사진해석의 전형이자 주요 이슈인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 사진적 현실이란 말인가? 그렇게 그들의 신체는 이미지요, 사진 그 자체인 셈이다. ● 그러나 또 한가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제 그렇게 연출되는 '이미지'는 더 이상 이른바 '플라톤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마 최근의 정신사의 흐름도 바로 그런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바꿔 말하면 이미지를 이제 거의 하나의 '사건'이나 다름없는 '실체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그 이미지에 의해서 우리의 의식과 삶이 얼마나 영향을 받고 때로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영위되고 있기도 한 것인지를 따져 볼 때, 어찌 보면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그야말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측면들이 이미지로 경험하고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이미지를 더 이상 '거짓'이나 '허상' 혹은 '가짜'로만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문화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본 모습 즉 리얼리티를 제대로 보고 인식하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나름대로 두터운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인문학적인 두께 속에서 오늘의 이미지적 현실에 얽힌 그물 같은 '의미망'들을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우리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위와 같은 의미들을 고려해 볼 때, 그들에 의해서 현재 화려하게 연출되고 있는 그러한 다양한 신체적 양상들은 그것이 이제 단순한 시각적인 현상으로만 국한되지 않는 다분히 개념적인 신체풍경의 양상들로 전이된다.
● 작품에 쓰인 텍스트들 ● 1. 너는 보았다. 그러나 너는 보지 않았다. 나는 보았다. 그러나 나는 보지않았다. / 2. 정신과 몸은 하나이다. 몸과 정신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면 몸은 몸일 뿐이냐? / 3. GRID 지금 네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네가 아니다. / 4. (反)GRID 지금 네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너이다. / 5. THE BEST OF THE BEST! / 6.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다. / 7. 네가 본 것이 그 자체이다. 그러나 네가 본 것은 그 자체가 아니다. / 8. 빛은 위대하다. 그렇다. 빛은 진정 위대한 것이다. / 9. 나는 본질이 중요하다. 그런데 너는 본질을 믿지 않는다. / 10. 너는 순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순수를 믿지 않는다. / 11. 너는 너이다. 그러나 너는 네가 아니다. / 12. 나는 나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아니다. / 13. 나는 네가 아니다. 그리고 너도 내가 아니다. / 14. 너 스스로 몸을 가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은 안에서 형성되기보다는 몸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 15. 나는 사진을 보고 있다. 그런데 사진이 먼저 나를 보고 있었다. / 16. 나는 너를 좋아한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를 통해서 보여질 뿐이다. / 17. 너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나를 통해서 보여질 뿐이다. / 18. 너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19. 아는 것이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보는 것은 힘이 아니다. / 20. 네가 본 것을 두려워하고 있느냐? 나는 내가 본 것을 즐기고 있다.
● 작품 1, 2에 대한 보충설명(질의 응답 식) ● (1) 사진을 대형으로 인화하여 설치한 이유는? ● 그런 시각문화현상에 대한 내 자신의 체험이 바로 주변의 '환경'에서 비롯되었고, 거기에서 나온 작품도 관람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환경'으로서 체험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사진을 대형으로 제작 설치하였다. 이를테면 '이미지 환경'을 조성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196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이 당대의 급변하는 미국의 현실 즉 뉴욕이라는 대도시의 엄청나게 팽창된 그 환경 규모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한 방식으로서 작품이 대형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를 참고로 하기도 했다. ● (2) 사진 프레임 3개를 활용하여 인물을 촬영한 이유는? ● 우선 인물의 인화 해상도를 높이고 싶었다. 아무리 6'*6'사이즈의 중형필름을 사용한다고 해도 하나의 프레임에 인물의 전신을 촬영하여 그렇게 크게 인화하면 그 형태 감이 많이 약해지고 해상도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마치 8'*10'사이즈 정도의 필름을 사용하는 정도의 효과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3개의 프레임에 나눠서 인물을 촬영할 때 어쩔 수 없이 그 형태가 약간 엇갈리게 되거나 정확한 비례나 신체길이의 확보가 어렵게 되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최근에 사람들이 지향하는 신체의 형태미 즉 '길어지고 싶다' 혹은 '날씬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형상적으로 담기에 오히려 그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사진에 나와 있는 인물들은 실제 신장보다 더 길어져 보인다. ● (3) 사진 프레임의 여백이 그대로 드러나게끔 인화한 이유는? ● 우리는 사진을 촬영한 후 필름을 현상하고 나면 빛에 노출되어 이미지 화된 부분만을 보기 쉽다. 그러나 나는 그 빛에 노출되지 않은 부분도 이미지 화된 부분과 똑 같은 필름의 한 부분으로 여긴다. 다만 빛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지 분명 필름인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약삭빠르게 필름 제조회사의 상호명과 제품명 그리고 일련의 공업적 기호들이 각인 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엄연한 필름의 한 부분인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사진매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공업성'을 드러내 주는데 효과적인 역할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그 부분은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엄연한 사진의 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작업의 주요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인데, 그 여백을 'GRID(격자)'의 개념과 연결시킨 것이다. 즉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우리를 움직이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틀'과 '구조'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정립하여 제시한 그 개념을 그 여백에 대입시켜 내 작업의 주요 개념과 의미를 상징하는 '형식'으로서 활용하였다. 그래서 나는 분명한 필름이면서도 단지 빛에 노출되지 않아서 그럴 뿐인 그 검정여백에 단순하게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 (4) 그 프레임의 여백에 들어가 있는 문장들은 어떤 관점과 의미인가? ● 대체로 오늘의 시각문화현상과 신체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비교적 가벼운 말투의 20개 문장으로 꾸며서 그 여백에 넣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들이 섞인 채로 제시되어 있는데, 하나는 플라톤적인 시각 즉 '본질론' 적인 시각에서 바라 본 이미지에 대한 인식의 태도와 다른 하나는 최근의 '문화론' 자들이나 '이미지론' 자들이 얘기하는 이미지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마치 경구와 같은 문장으로 만들어서 제시하였다. 이미지를 '가짜'나 '허상'으로 보는 입장과 반대로 이미지를 이제는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고 해석하는 입장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 위의 두 가지 입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일관성 있는 개념들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 중에 어떤 것이 올바른 입장인지가 아직 확실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것 같고 또 앞으로도 확실하게 결론이 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도 아닌, 마치 '시이소'처럼 다분히 역학적이고 가변적인 상호 대립적인 연관성을 가진 그런 입장들이어서 그것들이 섞여있는 현실을 그대로 노출시켜 주는 것이 오히려 더 리얼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종판단은 그렇게 제시된 작품을 보는 사람이 개별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 한편 그러한 문장과 사진 속의 인물들이 어떤 특별한 연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배열된 것은 아니다. 물론 작업의 전체 개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문장과 사진은 따로 구성되어 나중에 합쳐진 것이다. ● (5) 대체로 사진의 인물들이 직립 한 채로 정면을 향하여 서 있도록 한 것들이 많은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 바로 '정면성'의 개념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했다. 그것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 조형원리인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정신성'을 강조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조형어법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것의 강한 언어적 힘을 주목했다. 현대의 시각문화 또한 그 원리가 치밀하게 관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매체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오늘날 영화영상은 그 존재형식의 특성상 가장 권력적인 매체이기도 하다. 또한 그 '정면성'의 원리는 대상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풍부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형식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의 '70년대 '토포그래픽스' 풍경사진의 경향들도 바로 그러한 점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결국 그 사진들은 다른 어떤 사진들보다도 정밀하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그야말로 '자료'의 원형이 되고 있는 것이다. ● (6) 인물들의 머리와 복장의 색채는 어떻게 연출했나? ● 내가 먼저 작업의 개념과 방식을 설명해주고, 다른 모든 것은 참여 당사자가 알아서 준비하여 자발적으로 연출하도록 요청했다. 머리염색의 색채, 옷의 색깔과 종류, 액세서리, 신발 등.... 결과적으로 나는 포즈만 약간 연출해 주면서 사진으로 기록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 작품 3 ● '체 개바李'의 小敍事 ● 구성·20*20cm 크기의 일상의 풍경과 인물들을 담은 컬러사진 42장 ● 작품설명·어느날 문득 신문에서 한 기사를 읽고 나는 많은 상념에 사로 잡혔었다. 그 기사는 지난 20세기를 풍미한 가장 뛰어난 인물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는 체 게바라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그에 대한 일대기를 서술한 책을 최근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열독 하고 있는가에 대한 기자의 기획취재기사내용이었다. 특히 그 기자는 가령 '80년대나 그 이전과 같이 우리 모두를 종종 하나로 통합시키곤 했던 '가치관'이나 '거대이념'이 현재에는 상당히 퇴색되어 있고 또 삶의 방식이 각자 개별적인 단위로 철저히 분절화 되어 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하필 그 가치관과 거대이념의 가장 강력한 상징 중의 하나인 체 게바라의 평전에 대한 구독열풍이 새삼스럽게 불고 있는가에 대해서 불가사의한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특히 대학가의 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말이다. 더우기 그들은 우리의 현대사와 문화 속에서도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가장 돋보이는 개성파이자 개인주의자들이다. 또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종전에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던 것들에 과잉 집착하고 그리고 한 때는 그들 자신이 최대한 유치해지기를 열망하기도 했던 그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난 20세기적 상황과는 다른 디지털 시대라고 하는 새로운 환경과 언어소통의 방식과 감각에 체질적으로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그런 그들이 어찌 보면 지난 20세기를 통 털어서 거대이념에 가장 그리고 집요하게 집착했던, 소위 '거대담론' 혹은 '大敍事'의 표본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체 게바라와 같은 사람에게 왜 그렇게 열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더우기 그는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에 그 달콤한 열매를 과감히 다 떨쳐버리고 또 다시 다른 공간으로 그의 이상과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투신하면서 장렬하게 생을 마감했던 어떻게 보면 자기 개인을 철저하게 버렸던 그였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미 만연된 현재의 개인주의적인 시각과 감각으로 놓고 볼 때, 그는 요즈음 세대들과 어떤 교감과 접점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고 불일치하기까지 한 인물임이 자명한데 왜 그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였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가 훌륭한 외모와 카리스마를 갖춘 아주 매력적이기도 한 인물이어서 그러한 이미지적 신화를 선호하는 최근의 젊은이들의 구미에 제법 잘 당기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 그러면서 기자는 그 기사의 말미에 대체로 다음과 같은 추론을 내리면서 글을 맺고 있었다. 기자가 판단하기에는 그 현상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 그렇게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고 그야말로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小敍事'의 천국의 시대가 되었으며, 또 모두들 그러하기에 너무나 열중하고 있기에 반대로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뭔가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거대담론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에 대한 그리움과 출현에 대한 기대심리가 바로 체 게바라 열전에 대한 구독열풍으로 연결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말이다. ● 물론 나도 영웅을 그리워하는 편이다. 아직도 우리 시대는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그에 못지 않게 그러한 '大敍事'라고 하는 '강력한 주체'의 그늘 아래에서 그 존재는 분명히 있었으나 잘 드러나지 않고 있었던 우리들의 작은 이야기들도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그러한 것들이 앞으로도 좀 더 많이 그리고 충분히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위 작품에 제시된 사진들은 바로 그러한 생각을 바탕에 두고 기록한 것들이다. 즉 내 생활의 언저리에서 늘 상존 하고 있으면서도 소외당하고 거세당하기 쉬운 일상과 주변의 하찮은 풍경이나 혹은 내가 이리 저리 이동하면서 본 것들과 만난 인물들 그리고 경험한 시간과 공간들에 대한 기록물들인 것이다. ● 그러나 어쨌든 내 자신은 체 게바라에 비하면 그야말로 소심하고 왜소한 인간임에는 거의 틀림없다. 하기야 외모로만 봐도 내가 그 보다 잘생긴 구석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또 나는 그처럼 그렇게 '민족해방'이라는 이념과 열정 하나만으로 인생을 치열하게 살다가 장렬하게 전사할 용기와 힘도 없다. 현재 나는 대부분 나의 삶과 의식을 카메라 뷰파인더의 작은 공간으로 좁혀지는 세계에 기대어 집착하고 또 탐닉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들이 앞에서 말한 대로 나에겐 나름대로 소중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가 몸소 보여주었던 실천력과 남기고 갔던 역사적 무게에 비하면 왠지 나는 한없이 작고 가벼워 보일 뿐인 것이다. 그러한 내 자신에 대한 회한과 탄식 그리고 일말의 경멸 조가 이 작품의 근저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이다. 또한 거기에 제시되어 있는 일상의 풍경들도 대부분 어떤 디스토피아 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사진이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거기에는 과거에 미래에의 '영웅'을 꿈꿨던 그러나 그 꿈이 현재 다른 방향으로 굴절된 사람들, 그리고 그것과는 별 상관없이 현재 자기의 삶에 충실한 일상의 보통 주변인물들도 함께 섞여 있다. 그들은 이제 만화 속에서나 이미지로서의 영웅을 만날 수 있을 뿐이고 그리고 그것에 대리 만족하면서..... ● 그러나 숙명적으로 '大敍事' 혹은 '거대담론'은 꼭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물과 현상에 가치판단의 과정과 척도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小敍事'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모든 시대가 안고 있기도 한 일종의 역설이 아닌가 한다.
■ 작품 4 ● 口傳의 歷史 '79.10.16-10.19 부마항쟁에 관한 인터뷰 ● 구성·A4 용지 크기의 디지털 프린트사진 43점과 32개의 '79년 부마 항쟁에 관한 인터뷰 텍스트들 ● 제작과정·부산과 마산 현지에서 '79년 당시의 항쟁을 선도했거나 경 험한 시민들을 만나서 그 당시의 역사적 경험들에 대하여 그 들과 직접 인터뷰 함. ● 작품설명·지난해 '99년 가을에 나는 부산에 새로 조성되는 '민주공원의 기념관'에 영구보존용으로 상설 전시될 작품을 제작해 줄 것을 요청 받았었다. 작품주제는 '79년 박정희 전대통령이 죽기 바로 직전에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크게 일어났던 시민항쟁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당시 주최측은 그 작품을 '사진'매체를 사용하여 제작해줄 것을 요청해 왔었다. 그러면서 현재 '당시를 기록한 사료나 사진자료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 알아서 일을 잘 추진하여 마무리해 달라'는 요청도 빼놓지 않고 있었다. ● 그래서 그 요청을 수락한 후에 제공받은 몇 가지의 자료들을 살펴본 바, 그 정도 가지고는 주최측이 기대하고 있는 정도의 작품 연출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나는 부산에 내려가 현재 생존하고 있는 그 당시를 체험했던 항쟁의 주동자들이나 시민들을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눈 내용들을 가지고 기존의 한정된 사료들을 보충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정리된 기존의 몇 가지의 사료들과 함께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관람자들에게 당시의 역사를 무겁고 딱딱하게만 읽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그리고 다양한 감수성으로 접근해볼 수 있도록 연출해 볼 생각이었다. ● 그리고 당시 경험자들과의 대담은 이미 기존의 사료에 나와 있는 내용들에 대한 재확인 차원으로만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사료에 잘 나와있지 않은 달리 얘기하면 잠복해 있고 은폐된 항쟁 당시 당사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감정과 체험, 인간적인 번뇌 혹은 어떤 실존적인 고민거리들 그리고 그런 체험들이 향후 자신의 인생과 어떻게 결부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들을 위주로 하여 대담을 진행해 나가면서 그렇게 해서 얻은 내용들을 작품에 되도록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바로 그렇게 해서 얻은 대담자료들이 이번 전시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료들이 다른 어떤 공식적인 사료들보다도 당시의 정황과 분위기를 좀 더 생생하게 잘 전달해 주고 있다고 보았다. 1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그들에겐 20여 년 전의 일을 다시 기억에 되살려야 되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정확하게 얘기한다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또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거기에 그 세월의 여정만큼이나 그 사건에 대한 기억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변형되어 각 개인마다 주관적인 관점으로 그 경험들을 윤색하거나 더러는 개인적인 입장에서 합리화시킨 내용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의 여건으로 볼 때, 이제는 그 때 그 사건에 대한 증언과 발언을 함에 있어서 당사자들이 어떤 두려움이나 부담감이 없는 비교적 홀가분한 상태에서 그 때의 개인의 정황과 감정들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 만큼 나에게는 그들이 얘기한 그 내용들이 다른 어떤 공인된 사료 못지 않게 호소력이 크게 느껴졌었다. 즉 그것들은 공인된 사료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개인만이 체험하고 느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진실한 역사의 줄거리였던 것이다. ●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은 현재 부산의 민주공원기념관전시실에 설치되어 '99년 10월 16일 이후로 상설 전시되고 있다.
■ 작품 5 ● 미술가 27인의 '밥' - 연말정산서 ● 구성·27장의 폴라로이드 사진과 각 27장의 개인별 자필 프로필과 4 년간의 연말정산서류 등의 텍스트들로 구성 ● 제작과정·'99년 당시 계원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27인의 미술가들이 직접 참여하여 제작(폴라로이드사진 촬영 허용, 친필 개인 프로필 제공, 각 개인의 연간소득과 세금총액이 명기된 4 년 분 연말정산서류를 작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 ● 작품설명·'예술' 혹은 '예술가'하면 왠지 뭔가가 포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삶의 구조 속에서 일탈하여 존재하는 자유롭고 신비로운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미술가만 보더라도, 기존의 전시 시스템 속에서 일반인들은 치밀하게 신화화된 작품과 작가만을 접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한 예술가가 그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재화' 혹은 '물적 토대'를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확보해 나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 곧 예술가의 생존조건에는 별 다른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사실 바로 거기에 작업과정에서의 절절한 리얼리티가 숨어 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예술의 현장에서 관람객들은 그러한 작업의 현실토대가 완전히 탈색된 예술제도로 '전이된' 혹은 '각색된' 현실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 바로 그것이 예술이나 예술가에게 덧씌워진 '신화'일진데, 내가 이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려고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신화에 대한 혹은 신화 쌓기와 그 방식에 대한 거부의 태도이다. 특히 연말정산서류라고 하는 텍스트를 제시한 것이 그 의도의 핵심이다. 즉 소위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일반 사람들이나 셀러리맨들과 똑 같이 돈을 벌고 세금을 내고 생활을 하고 있는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실질적으로 작업이 출발된다는 점을 여과하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예술에 덧씌워진 신화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나아가서 그들과 예술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어떤 '장벽'이나 '거리감'을 해소시켜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작품은 그런 신화에 대한 해체의 의도와 더불어 일반인들에 비해 운신의 폭이 좁은 미술가들의 생존조건에 대한, 뿐만 아니라 그 당사자이기도 한 나에 대한 어떤 연민의 정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예술가랍시고 작업만 해 가지고서는 지탱해내기 힘든 현재의 삶의 구조에 대한 어떤 울분과 고달픔의 발설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예술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예술에 대한 어떤 투철한 신념 때문에 자신의 작업이, 만약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떤 잘 팔리는 작업의 유형을 철저하게 외면한 채로 나아가게 만드는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더욱 옥죄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나의 상념과 어떤 회한 같은 것도 약간은 들어있기도 하다. ■ 이강우·시각 이미지 생산자
Vol.20000621a |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