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그림들

최석운展 / CHOISUKUN / 崔錫云 / painting   2000_0630 ▶ 2000_0714

최석운_돼지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5cm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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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샘터 Tel. 02_514_5122

눈에 귀를 달아주는 그림 ● 1. 양평에 있는 최석운의 작업실을 갔다. 그곳은 집과 작업실이 함께 붙은 아담한 2층집이었다. 적막한 농촌의 땅위로 쏟아지는 한낮의 태양 아래 그의 어린 딸이 즐겁게 뛰어 놀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의 전원에 생기 있는 음성이 새떼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그 풍경이 낯설고 희한하게 다가온다. 나로서는 그에게 가정과 자식이 생겼다는 사실이 좀 채 믿어지지 않았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추운 겨울날 부산의 허름하고 누추한, 지독히 좁았던 작업실에서였다. 양평에 올라온 10년의 세월동안 그의 삶은 이렇게 많이 바뀌었다. ● 2층 작업실은 작지만 자신만의 공간으로 둘러쳐진 안온함이 열기가 되어 따뜻했다. 사방이 모두 그림으로, 벽으로 둘러쳐졌다. 세상은 이 공간에서 외면 당하고 오로지 그림만이 그를 세상과 독대케 한다. 최근작을 보니 바다와 해녀, 인어 그리고 배와 개, 새, 물고기, 돼지들이 등장하고 있다. 작년 제주도에서 보낸 추억들, 경험들이 이번 그림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소재는 사실 그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한다. 작가 자신의 일상적 삶의 공간에서 만남 주변인물들, 동물들이 그의 주된 소재들이고 또한 이들로 이루어진 에피소드,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구도 안에 좀더 함축적이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채우고자 한다. 그는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인 체험에 기댄, 간직하고픈,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 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음성이 되어 청각을 자극한다. 우리들 눈에 귀를 하나씩 달게 하는 것이다. ● 부산 출신이래서 일까, 그는 바다를 좋아하고 또한 바다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작가 자신인 듯한 인물이 여러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 앞머리에 앉아있기도 하고 수평선에 엎드려있거나 허공에 떠있는 배안에 개와 함께 걸터앉아 있다. 나른한 상념과 몽상 속에 자신의 육체를 가능한한 이완시킬 때까지 이완시킨 표정으로 세상을 관조한다. 그곳에 시간과 삶의 번잡함과 각박함은 진공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의 그림이 주는 이 미묘한 무중력함이 우리들 시선의 힘을 빼고 있다. ● 그의 화면의 배경은 전적으로 하늘이거나 바다 혹은 단색만으로 점유되어 있다. 퍼스팩티브가 잡히지 않는 화면에는 오로지 인간과 동물만이 명징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상황을 가장 압축해놓으려는 이 구도와 형상 또한 그의 그림을 읽는 그림,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그림으로 보게 한다. 하나의 문장을 대하는 느낌으로 그림을 보고 있다. ● 모든 문장에는 한 작가만이 즐겨 구사하는 단어들이 존재한다. 그만의 문체, 체취가 있고 동시에 그가 늘상 사용하는 단어들의 나열이 그의 육성이고 문학이다. 최석운의 그림 역시 자주 쓰는 단어(소재)와 문장(화면설정)에 의존한다. 더러 이점이 그의 그림을 일정한 틀에서 익숙한 방법론으로 풀려 나온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 2. 그의 모든 그림은 자신의 상상력에 기대 그려져 있다. 그는 늘상 어떤 꿈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꿈은 이 세상의 현실로부터 슬쩍 비껴난 그만의 위치에서 그가 누리고자 했던 모호한 욕망의 이상경 같은 것인데 그 영역을 고수하고자 - 그림 속에서나마 - 그는 이 세상과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쳐다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에게 풍자와 해학이란 것은 실상 자신과 분리되어있다고 여겨지던 세상에 대해 그가 보내는 어떤 연민인 동시에 그로부터 소속되지 못한 자의 여유 같은 것들이 기묘하게 얽힌 모호함일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 길들여지지 않은 자 아니면 그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자들이 세상의 외곽에서, 변방에서 보내는 연민에 가까운 복수의 시선을 닮았다. 그 시선은 결국 자신을 위안하고 다독거리면서 그 상실과 비애를 견디게 해주는 자존심 섞인 시선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그림이란 그에게는 자신의 절박한 삶, 생존의 이유 -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 를 안타깝게 증거 해주는, 보상과 치유를 지닌 유일한 장이다. 따라서 그에게 상상력이란 화면 안에만 근거를 지니는 자기 생의 욕구가 가능한 활동이다. ● 이번 근작에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 자신이 접한 사람들과 함께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에게 화면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인간이 부재한 화면에는 오로지 동물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가 즐겨 그리는 동물은 개와 돼지, 새 등이다. 늘상 그가 즐겨 구사하는 원형의 구도감 속에 인물이나 동물들은 간략하고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전 작업들이 생활에서 부딪친 인간 군상들의 속성과 위선, 허구와 욕망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표현하는 한켠에 동물을 등장시켜 그 메시지를 보조하는 편이었다면 최근에 와서 동물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을 만들면서 인간 삶을 대신하는 존재로 위상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인간에게서보다 동물에게서 그가 꿈꾸는 삶의 한 자락을 접하게 한다. ● 아울러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 무표정한 인물들은 정면으로 쳐다보는 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한결같이 곁눈질로 쳐다본다.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이런 사시적 시선은 주변부적 인간들의 전형적인 시선이다. 무언가 강박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고 사팔뜨기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언제나 남을 훔쳐본다는 것은 남을 끊임없이 의식해서 산다는 것이고 결국 자신은 부재하다는 얘기다. 최석운은 늘상 자신이 사는 이 시대의 단면을 포착하고자 했으며 그것을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한 작가이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이미지의 직접성에 기댄 흥미로운 그림이다. 그리고 그 삽화 같은, 단문의 문장을 닮은 그림/화면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치졸스러운 묘사와 표현, 단조롭고 평이한 화면구성, 즉물적인 색채 등으로 짜여져 있다. ● 그의 그림은 대부분 무료하고 진부한 일상의 끄트머리를 들어올린 것들이다. 그 속에 깃든 범속하고 상투적인 몸짓과 표정, 순간적으로 정지된 일상의 초상과 주름진 자욱들, 선명한 감동들, 감전된 듯한 장면의 발견과 느낌을 형상화하고자한 그의 그림은 결국은 자신의 육체가 기억해낸 세상을 가능한 정확하게 옮기려는 지난한 미술의 고통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장면들은 일상의 삶에서 기억해낸 시간의 한 자락들이고 몸들이기도 하다. ● 그는 화가로서 자신의 그 무심한 생애의 이완 속에서 슬쩍 훔쳐본 세상의 몸들을 이렇게 자기식의 단어와 문장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만들며 삶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며 그런 세월이 꽤 흘렀다. 그러나 그런만큼 그림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사실, 소재와 형식, 구도와 설정이 유사한 틀에서 자꾸 빠져 나온다는 아쉬움이 고개를 든다. 반면에 그림이 무척 따뜻하고 서글픔까지 드리우면서 온화해졌다는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그의 풍자와 해학은 사실은 세상을 감싸고 사랑한 자신의 그 짝사랑을 받아들여주지 않은 세상에 보낸 질투 같은 것인데 이제 그 미움이 서서히 중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박영택

Vol.20000630a | 최석운展 / CHOISUKUN / 崔錫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