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대면

유비호_정인엽_함진展   2000_0705 ▶ 2000_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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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갤러리 Tel. 02_732_9861

자본, 꿈, 악몽 - 변태의 세 지층 ● 이번 전시는 유비호, 정인엽, 함진 등 외관상 그 경향을 달리 하는 세 작가의 작업을 한 공간에 설치함으로서, 상호간의 조화와 충돌 가능성을 모색하는 점이 특정의 주제나 성격으로 소급되는 여타의 전시와 구분된다. 설치와 영상, 그리고 행위를 넘나드는 유비호와 정인엽의 작업에 대한 성향으로 보나, 오브제와 설치, 그리고 공간에 대한 감각적인 경험을 하나로 묶는 함진의 경우로 보나 이들 작가들은 탈경계로 대변되는 최근의 한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범주화의 덫을 피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다양성의 지평에로 열려진 과정과 시도로 보여진다. ● 이러한 표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을 관통하는 최소한의 접점은 있다. 신체에 대한 관심과 변태(變態, metamorphose)가 그것이다. 가상공간에서의 인간의 존재에 주목하는 유비호의 경우에 이러한 사실은 몰핑(morphing, 이미지와 이미지를 합성하는 영상 기법으로, 어원적으로는 생물학적인 변종을 지시) 기법의 형태를 띤다. 정인엽의 작업에서 이러한 변태는 유충으로부터 성충으로 변해가는 나비의 삶의 과정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여타의 이유로 인한 신체의 떨림에 기초한 작가의 감각적인 경험이 나비의 날개짓과 연결돼 있다. 나비의 날개짓이 작가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실마리인 셈이다. 기존의 장난감 인형이나 손으로 빚어 만든 합성 점토 인형, 그리고 소형의 틀(주물)로 떠낸 인형의 몸체로부터 특정 부위를 떼어낸 후 그것을 다른 오브제로 대체하는 함진의 인형이 기초하고 있는 방법 역시 변태인 것이며, 이러한 변태는 재차 '사물의 전치(轉置)'에 이어진다. ● 사물의 전치는 사물을 일상의 맥락에서 단절시켜서 미학적인 문맥으로 옮겨놓는 것이며, 그 자체 중성(中性)이나 무성(無性)의 한낱 질료적인 세계에 특정의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감정적인 소통의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사물의 재조건화는, 즉 기존의 사물에 대한 순전히 자의적인 해체와 재편집은 그 속성이 가상공간에서의 형태에 대한 이해와 현저하게 닮아있다. ● 유비호의 작업은 모니터 3대를 이어 붙인 싱글 채널 비디오를 설치한 것으로서 특정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의 전개를 빌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내러티브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관된 서술적 구조와 연속된 흐름을 지속시키기보다는 분절과 도약의 조작을 거침으로 인해 현저하게 상징적이다. 삭막한 도심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붉은 인체의 군상을 가시화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후기 자본주의의 현실인식과 비판의식을, 그리고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같이 붉은 의상으로 통일된 군상이나, 마치 매스게임을 보듯 동일한 몸짓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체의 동작이 후기 자본주의의 거대 자본과 권력이 요구하는 획일화된, 그리고 특정의 규범과 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강요된 인간을 가시화하고 있다. 자율적인 실체를 상실한 복제 이미지로서의 동시대인의 정체를 보는 듯하다. 강요된 획일화에 기초한 전체주의나 군국주의 역시 붉은 색이나 매스게임을 주된 상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후기) 자본주의를 이와 다르지 않은 정체의 한 연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 이렇듯이 각각의 등장 인물들이 나름의 개별적인 운동과 통일된 몸짓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한 몸으로 통합되는 것으로 작업은 종결된다. 마치 거울이나 데칼코마니의 대칭되는 이미지를 보듯 마주하고 있는 인물들이 그 자체로 자웅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자웅동체는 자기 외부로부터 유입된 어떠한 간여나 조작의 개입 없이 자족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자본과 권력의 속성을 상징한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권력이 권력을 낳는 것이다. 자본의 원인이 (생산이 아닌) 자본인 것이며, 권력의 원인이 (투쟁이 아닌) 권력인 셈이다. 아마도 차후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생물학적인 변태로 통합된 거대 자본과 권력의 불가항력적인 힘에 기초한 연속성의 끈을 단절시키는, 틈의 미학적 실천에 맞추어지지 않을까 싶다. 몰핑 기법 곧 이미지의 변태 과정에 반영된 시간의 도입으로 작업의 지평을 증폭시킨 점 역시 주목해볼 만하다. ● 정인엽의 작업은 바닥에 잔디가 깔려 있는, 그리고 진동 모터가 내장된 알루미늄 판과 방충망으로 구조된 방의 벽에 금속성의 얇은 판으로 조립한 모조 나비를 부착하고, 공간에는 실제로 살아 있는 나비를 풀어놓아 나비로 상징되는 꿈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 꿈은 작가의 기억에 속한 것으로서 주로 과거를 향하는 것이며, 이로써 작가는 물질 문명(모조 나비)으로 대변되는 동시대의 한 쪽에 꿈의 이상(실제 나비)으로 대변되는 정신적인 가치를 마주 세우는 것이며, 동시대가 상실한 것과 회복해야 할 것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모조 나비와 실제 나비는 이렇듯이 동시대의 시대 정신을 반영하는 한편,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실제를 꿈꾸는 모조 나비의 조건성과, 예술적인 조작의 어프로치를 결여한 실제 나비의 조건성이 가상과 실제와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작가의 정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나비를 매개로 해서 가상과 실제와의 경계를 다룬 점이 장자의 나비 꿈을 번안한 작가의 버전을 보는 듯하다. ● 또한 모조 나비는 원본을 결여한 이미지를 실제보다 더한 실제 곧 메타 실제로 이해하는 보들리야르적인 인간의 인식 구조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메타 실제의 인식이 살아 있는 나비와의 대비로 인해 그 의미가 증폭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나비의 날개짓을 작가의 감각적인 경험과, 신체적인 떨림과 이어지게 한 것이다. 이러한 동일시는 실제로 사람이 접근하면 내장된 모터로 인해 미세한 떨림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모조 나비의 떨림으로 이어지면서 관객의 추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건 관객이건 그동안 미몽(迷夢) 속에 갇혀 있던 기억의 다발이 나비의 날개짓으로 풀어헤쳐지는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나비로 상징되는 모든 상실한 것들을 되살려내는 점에서 주술의 방법을 실현하고 있다. 그 주술이 되살려내고자 하는 것이 생명과 다르지 않은 점에서 작가의 방법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최근의 한 경향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 함진의 작업은 허다한 미니어처 인형들을 작가 자신의 신체를 배경으로, 이를테면 손가락이나 발가락, 눈이나 코, 귀, 그리고 배꼽 등을 배경으로 설치한 후 그 전경을 찍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마치 소인국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특유의 생경함으로 카프카 류의 변태를, 악몽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악몽은 밀착된 어프로치를 요구하는 집착과 편집(증)의 상식을 벗어난 (반)미적 태도에, 자의로 분절 조합된 모조 신체에 반영된 그로테스크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형 특유의 무감각한 표정에 기인한다. 작가 자신의 몸을 클로즈업한 파편화된 신체 부위가 갖는 그로테스크에 인형의 그로테스크를 오버랩시킴으로써 악몽의 강도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로써 작가는 진작부터 자신의 작업이 기초하고 있던 베이스먼트 곧 순진무구한 놀이와 유희 의식을 몸과 대지로 대변되는 원초적 생명과 연결시키는 신화적인, 주술적인 해석을 꾀하고 있다. 이러한 원초적 생명에 대한 그리움은 특히 배꼽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형에 반영되어 있다. 움푹 패인 배꼽의 구멍과 원형의 형상이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배꼽 신화를, 그리고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자궁 신화를 되살려내고 있다. ● 이외에도 작가는 반 고흐가 죽기 얼마 전에 그린 [밀밭 위를 나는 까마귀 떼]를 리메이크하고 있다. 자신의 머리털을 염색한 것으로서 밀밭의 색채와 질감을, 그리고 손톱 조각을 이어 붙인 것으로서 그 위를 나는 까마귀 떼를 재현한 것이다. 이로써 작가는 예기치 못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패러디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부분적인 신체 부위를 배경으로 설치한 인형 사진을 이어 붙여서 완전한 신체를 편집해내고 있기도 하다. 어느 경우이건 신체를 그 자체 완전한 결정체로서보다는 자의로 해체, 분절, 조합, 그리고 재편집할 수 있는 비결정의, 미지의 소재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 문화전문포털 사이트 컬쳐투데이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가상공간인 사이트 상의 온라인 전시와 실제 공간인 담갤러리의 오프라인 전시를 하나로 묶는 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 종전의 전시 방식과 구분된다. 효율적인 전시를 위해서나 작가에 대한 지원 면에서 총체적인 접근과 관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작업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러한 호환성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인상이며, 컨텐츠 곧 작업의 내용적인 지원이 사이트 관리의 관건임을 재차 확인시켜주고 있다. 작가 역시 실제 공간에서의 감각적인 경험과 함께 사이트 상의 가상 공간과도 친화력을 가질 수 있는 작업의 계발이 요구된다. ■ 고충환

Vol.20000714a | 3자 대면展

Art Peac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