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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진기와 오래된 건축물들 ● 역사란 무엇인가. 이 골치 아픈 물음에 답할 길이 없다. ● 나 자신이 복고적인 인간이라 그런지, 혹은 근대사에만 매진해서인지 옛날것만 보며는 몸이 뒤끓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헌책방에를 가도 그중 가장 헌것만 뒤적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역사라고 말한다. ● 그중 가장 귀한 것 하나가 옛사진이다. 옛사진을 빛바랜 것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제일 관심 있는 것은 건축물이 들어 간 사진이다. 아마 전공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 내가 섭렵하는 도시는 어느 한 도시만이 아니다. 나는 사실 '두 도시의 사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찰스 디킨스인가를 흉내내는 것은 아니다. 두 도시는 어떤 도시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먹고사는 곳이 대전이니 그곳이 우선 하나요, 다른 도시는 시도 때도 없이 가는 다른 도시를 말한다. 서울을 말하는 것은 우습겠다. 강격, 군산은 셀 수조차 없다. 며칠전만 해도 충청도 여러 도시를 포함, 광주, 순천, 목포, 제주도, 부산, 경주 등지를 다녀왔다. ● 강경, 군산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집중적으로 관심을 환기시켰다. 내셔널 트러스트를 말하는 것은 이제 진부하기 조차하다. 그런데 그 도시들이 자꾸 변해가고 있다. 갈 때마다 다르다. 발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성을 더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다. 번듯한 건물 지어서 소위 '우리도 잘 살아 보자는 데 왠 잔말이냐'고 나를 나무라는 사람도 부지기수이다. 그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나는 아마추어 사진가도 못된다. 그래서 사진가에게 동냥 받는 경우가 많다. 최근 며칠간 여러 젊은 사진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강경, 군산에 관심 있는 사진가들이다. 그들은 별로 돈도 안생기고 신바람도 안나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순수하다고 하면 실례가 될까. 어쨋든 그들이야말로 말없이 우리 도시역사를 챙기는 사람들일 것이다. ● 그중 한 사진가가 유현민(1967-)이다. 유현민은 몇년전 어느 자리에서 아마 배병우가 있는 자리에서 만난 것 같다. 전부 사진쟁이들이라 내가 관심 가질 이유가 없었다. 나는 사실은 프로 사진가의 사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도독놈 심보가 있는 나에게 사진값이 너무 비싸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은 건물을 작품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찌그러트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온통 제멋대로이다. 내가 인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작품으로 하는 것이니까 나의 이런 하찮은 말에 관심 기울일 필요는 없다. ● 유현민은 그런 중에서 꾸준히 강경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어 나를 놀래키었다. 오직 사진 속에 인생을 파묻은 사람 같았다. '참 대단하다'가 내가 해줄 유일한 말이다. 말이 쉽지 무한한 애정으로 한 도시를 찍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역시 돈도 되지 않을 테인데. ● 그러나 그는 남다른 사명감이 있었다. 왜 그런가 하면 그의 선친이 이미 해온 일을 그가 연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선친은 사진 1세대인 것 같다. 이름 있는 작가도 아니다. 작품집을 낸 적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강경의 학교 앨범을 계속 찍어왔다는 것이다. ● 사실 나는 나의 학교 앨범을 많이 뒤적인다. 왜 그런가 하면 당시의 학교 건물 사진을 거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학교는 앨범 숫자도 많다. 이것 저것 뒤지며 나는 한 도시의 건축을 기록하게 된다. ● 나는 유현민의 부친 유석영(1919-1985)님으로부터 참으로 귀한 것을 발견하고 너무 즐거웠다. 그 집안에 한 보따리 강경의 옛사진들이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학교만 찍은 것이 아니고 그 당시의 도시를 다 찍었다. 꿈많은 소년 소녀들을 앞세우고 셔터를 누른 것이다. 그 '앨범 사진사'는 결과적으로 그 사진을 기록으로 우리 눈앞에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 얼마전 이론에서, 150년전 태국에서 활동한 일본 사진가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을 보았다. 한 일본인 사진가가 태국에 가서 그 사진들을 찍었던 것이다. 그 사진들은 잊혀졌다가 한 사학자의 레이더에 걸렸고 그 사진들은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너무 부러웠다. 그 사진가의 기록정신과 보존능력, 그것을 다시 세상에 내 놓는 작업들이. 이것이 문화이고 역사 아닌가. ● 유석영님의 그 작업은 이제 그 아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15년의 세월은 더딘 것이 아니리라. 우리 사진역사에 한 장을 다시 추가해 주게 된 것이다. 아들의 부모사랑, 기억이 사라져 가는 이때 그에게 효자라는 관을 씌어 주기보다는 그 잊어버릴 것들을 다시 살린 그 마음을 칭찬하고 싶다. 칭찬이라기보다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 8월 한달간 유석영의 꿈이 그리고 유현민의 새로운 도전이 여의도를 채울 것을 생각하니 나 자신 대단히 기쁘다. ■ 김정동
Vol.20000802a | 강경의 초상과 풍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