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들

2000_0626 ▶︎ 2000_0820

이동기_아토마우스 스티커_2000 ● 일본 군국주의를 대표하는 '아톰'과 미국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미키마우스'가 한국에서 만났다. 만화를 매개로 두 문화가 만나는 지점은 한국의 아토마우스 atomaus. 다분히 팝아트적이고 팬시화된 아토마우스 캐릭터는 지난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보다는 살아있는 이미지로서 현재적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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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고낙범_박혜성_안상수_이동기_이불_이용백_이형주_홍성민

쌈지스페이스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Tel. 02_3142_1693~5

감성을 지배하는 시각 이미지 생산의 태도 ● 새로운 감성에 대한 갈망은 현대미술의 시작 때부터 부르짖었던 슬로건이다.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면 당연히 과거와 다른 무엇이 제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과거의 부정하는 것으로 새로움은 출발한다. 비아냥거림 그리고 까발림. 그래서 그런지 현대미술은 언제부터인가 성급한 젊은 혈기로 넘친다. 그 '젊다'라는 것은 무척 많은 상징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커다란 것은 '도전'과 '가능성'이다. 그 '젊음'으로부터 새로운 감성이 만들어지는 까닭이다.

고낙범_PORTRAIT MUSEUM_캔버스에 유채_각각 227.3×181.8cm_1997 ●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물로부터 유추해낸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고낙범의 인물화들은 인물을 묘사했다기 보다는 그 색에서 나오는 풍부한 감성으로 캔버스를 채우며 새로운 회화적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21세기를 준비한 앙팡 테리블 anfant Terrible ● 지난 6월 26일 홍대 앞 '쌈지 스페이스'가 오픈 하면서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기획전이 8월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참여작가는 고낙범, 박혜성, 안상수, 이동기, 이불, 이용백, 이형주, 홍성민.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혀왔던 그야말로 신선한 시각 이미지 생산자들이다. 당시 한국미술계는 80년대 민중미술 이후에 포스트모던이즘이라는 이종교배적 창작환경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시기였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탈모던'의 방편으로 '탈평면'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무서운 아이들"은 『뮤지엄』, 『선데이 서울』, 『서브클럽』, 『황금사과』, 『오프 앤 온』 등의 그룹전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이 생산한 이미지들은 당시로서는 무척 도발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방임적인 형식으로 비춰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미술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사회 전반은 아직 이데올로기적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80년대 민중운동의 열기가 남아있었던 까닭이다. 한마디로 "무서운 아이들"이 정말로 무섭게 보였던 시기였다. ● 하지만 "무서운 아이들"이 보여준 신세대 감성은 이후 90년대 또는 21세기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을 뒤바꿔 놓을 정도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80년대말 『일렉트로닉』이라는 아주 작은 카페에서 팩스아트 또는 허큘레스 모니터의 286컴퓨터로 PC통신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기도 했으며, 당시 홍대 앞 락카페 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던 『발전소』 또는 『곰팡이』 등지에서 각종 퍼포먼스형 즉흥 공연을 즐기곤 했다. 이들의 자유로운 사고는 매우 급진적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문화감성과는 커다란 괴리를 보였고 당연히 별종으로 왕따를 당하기 일수였다. 당연히 그 왕따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보았고 일종의 "왕따그룹"이 만들어졌다. 그 "왕다그룹"으로 인해 홍대 부근에 '홍대'와는 다른 '홍대 앞'이 생겨났고 그곳에 수많은 젊은 감성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안상수_한글주련_도안사 향적당 설치_나무에 서각_256×34cm_2000 ●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딴 타이포그라퍼 안상수의 마노체 글씨. 문자와 시각 이미지를 고려하여 과학적이고 감각적인 글씨체를 제작해 온 안상수는 전시, 종이출판, 전자매체 등으로 활용하여 단순한 도안사가 아닌 시각 이미지 생산자로서 디자이너의 몫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무서운 아이들"의 내용과 형식 ● 현재 합의된 문화감성보다 약간 더 빠른 문화를 즐기고 싶어 하는 아방가르드적 태도가 이들 "무서운 아이들"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워낙 사회의 속도가 느렸던 까닭에 자유가 방종으로 보이고 리얼리티가 엽기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무서운 아이들"은 당시 금기되었던 조형형식 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죽음, 섹스, 쾌락 등 굉장히 다양한 폭을 제시하였다. 그야말로 미술계의 새로운 신세대적 감성을 일상화하며 거칠고 도발적인 작업들을 시도했던 것이다. ● "무서운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지극히 개인중심의 사고로 시각 이미지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사회 일반은 '우리'라는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안전한 사고'만이 권위를 만들어 낸다고 믿고 있었다. 그 결과 '그 밥에 그 반찬 문화'만이 지겹게 답습되었다. 그런 답답한 풍토에서 홀로 자신의 감성을 확연히 드러낸다는 것은 분명한 용기였다. ● 그리고 "무서운 아이들"은 과감하게 탈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며 오히려 시각 이미지가 갖는 소통의 가능성을 믿었다. 내용에 있어 각자의 취향에 따른 편향을 보이더라도 시각 이미지의 형식에서만은 확연히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내용에 있어 그럴듯한 것들을 담아낸다고 하더라도 시각 이미지의 형식에서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거론할 대상이 못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서운 아이들"의 시각 이미지는 당시 여타 작품들에 비해 무척 높은 완결성을 보이며 밀도 있게 제작되었다. ● 당연히 "무서운 아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성향을 좋아했다. 솔직히 이전의 한국현대미술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역적인 아마추어리즘이 제도라는 권력을 질시했을 뿐이다. 과거 70년대 '모노 시스템'에서 벗어나 80년대 제도와 민중의 '스테레오'를 경험했던 한국현대미술은 이 "무서운 아이들"의 출현 시기를 즈음하여 '써라운드 시스템'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진정한 언더그라운드는 제도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제도를 만들며 당당한 문화를 누린다. "무서운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소통구조를 갖고 그들이 만들어낸 시각 이미지들을 즐겁게 소비하였다. ● 마지막으로 "무서운 아이들"은 주로 통합장르 시각 이미지를 생산하였다. '탈모던'의 방법을 '탈평면'으로 보았던 당시의 시각에서 보자면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로 시각 이미지 생산에 임했던 것이다. 장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며 시각 이미지 외에 이미 정해진 법칙을 답보하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들의 장르를 개척하며 만들어 갔던 것이다.

홍성민_바이킹 Bye King_단채널 비디오 영상작품_1995 ● 놀이동산에 있는 짜릿한 바이킹이 요란한 고함과 함께 왔다 갔다 한다. 바이킹의 왕복운동이 바뀌는 아찔한 순간 힘, 권력, 희열, 공포에 대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절제된 이미지노출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홍성민의 타임아트는 현실과의 거리두기로 오히려 더 진지한 사색을 가능케 한다.

이형주_도레미송_설치음향_2000 ● 미로가 만들어졌다. 어디에도 탈출구가 없고 무엇을 찾을지 정답도 없는 투명한 플라스틱 벽으로 지어진 미로이다. 벽을 지나가면 센서에 의해 투과하는 하얀 빛에 어울리는 도레미 음향이 나온다. 누군가 바로 옆 벽을 지나가고 있다. 존재 그리고 타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감성이라 말하는 시각 이미지 생산의 태도 ● 다들 시각 이미지의 감성을 이야기 할 때 우선 그 형식에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서운 아이들"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어떤 형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이 비슷하게 지녔던 태도가 있을 뿐이다. 태도가 형식이 되었을 때. 시각 이미지 생산에 있어 감성이라 하면 바로 태도가 형식이 되었을 때 읽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시각 이미지라는 것들은 형식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들이라면 바로 그 형식에 문제를 삼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태도로 감성을 읽을 수 있다. ■ 최금수

Vol.20000808a | 무서운 아이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