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神殿

홍경택展 / HONGKYOUNGTACK / 洪京澤 / painting   2000_0809 ▶ 2000_0820

홍경택_서재1_캔버스에 유채_181.5×220.7cm_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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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원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60_4720

나만의 신전에 불러 들이기 ● 페인팅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이고 끊임없이 '나'로 집착하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엄연히 각각의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처음에는 남과의 차별성을 가르는 일이 무척이나 겁나고 소외를 감수해야하는 버거운 일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는 너와 이 만큼 달라"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예술이라는 것은 이런 차별성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이러한 독단들은 남에게 이해시키기는 일이 나의 작은 임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자신의 신전을 짓는 일이고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는 작가의 신전에 초대받는 일이다. 신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 그림으로 인해 감상자가 어느 정도 나의 세계에 교화(?)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을 수도 있겠고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유달리 집착하는 애호물(이미지)들을 모셔놓은 곳이라 그렇다. ● 화려한 색채와 매끈한 질감 사이로의 여행 ●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주로 캔, 컵, 필기구, 음식물, 책, 해골 등이고 대부분의 사물 등은 플라스틱의 매끈한 질감과 색채로 치환된다. 미국 B무비의 아버지 에드우드가 핑크빛 앙고라 스웨터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듯이, 코엔형제가 그들의 영화 속에 항상 모자를 등장시켰듯이 일종의 패스티쉬인 셈이다. 그건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본래의 속성을 떠나 의식 저편의 잠재의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화려한 색채와 매끈한 질감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한다. (덧붙이자면 원색의 순수성은 세월이 작품의 골동품적 가치를 결정하기 이전의 날 것, 다시 말해 회화라는 것에 덧 씌워져 있는 신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 이기도 하다) ● 플라스틱은 존재를 과장되게 드러낸다. ●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에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면서도 가장 천대받는 물건이다. 또 반 자연적이면서 말초적인 감각을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이 지니고 있는 변화무쌍한 면들도 무척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의 모든 형태로의 변형이 가능하고 어떠한 색깔도 입힐 수 있는 플라스틱은 그 현란함으로 자신을 위장하나다. 즉 자신의 존재를 과장되게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은폐한다. 플라스틱은 싸구려임을 자인하면서 경박함을 불쾌해 하지 않는다. 가장 일상적이면서 일탈적인 속성들은 내게 환타지를 이끌어 낸다. ● 에로틱한 열망들, 절충적 표현, 강박관념…● 그 환타지라는 것은 일종의 에로틱한 열망들이다. 소재와 색감이 가지고 있는 그 순간적인 화려함, 훔쳐보기의 장치들, 유아적이고 촉각적인 물건의 배치, 이들은 에로틱함과 함께 그의 부산물인 공허를 이끌어 낸다. 에로틱한 이미지들은 때로는 비밀스럽게, 때로는 폭발적인 제스춰를 취하는데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누구나 드러내고 싶은 욕망과 숨기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심리들을 표현하는데 있어 회화적 요소와 디자인적 요소의 절충을 꾀하였다. 흔히들 회화는 남성적이고 거친 것이며 디자인은 여성적이고 장식적이라고 여긴다. 이 들이 화면상에 공존함으로서 어떤 중성적 매력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런 절충적인 작업방식을 택한 이래 변치 않고 이어지는 것은 밀집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인데 그건 아무래도 나의 주변환경(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가업 '공장'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백이 사유를 유도한다면 여백이 없이 꽉찬 내 그림의 공간은 현실에서 파생되는 강박증의 극단적 표현일 것이다. ■ 홍경택

Vol.20000809a | 홍경택展 / HONGKYOUNGTACK / 洪京澤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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