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맴돌다

이현진展   2000_0906 ▶ 2000_0917 / 추석연휴 휴무

이현진_버드나무_비디오 인스톨레이션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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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진흥원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720

사이와 차이 ● 버들잎이 흘러내리듯 공간을 세로로 묶어 놓은 듯 보이는 설치 작품에서, 'THIS,,, THAT...'에서, 그리고 바다와 땅의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되며 반복되는 모습에서, 현재가 '조각화'되고 분절되는 이미지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영상의 전개와 제시에서 독립적인 이미지들이 단선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닌 복수로 전개되는 플롯을 읽을 수 있다. 전시 제목인 '사이에서 맴돌다' 에서 보여지듯이 그녀의 작품은 '사이'라는 개념에서부터 문제제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이'는 공'간'이며, 항상 '사물' 이나 '존재자'들 사이의 장소이다. 부연하면, 항상 'to', 'for'으로서, ad venir(도착하다, 도래하다)의 공간이다. 이 단어의 ad 는 부가적인 의미와 함께, 복수의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빈공간 '사이'의 지향점이자 움직임을 지시한다. 움직임, 'mu'(고대 그리스어의 의미소, 예 : mu-stikos)는 때로는 포착하기 힘든 신비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사이'는 작가의 지적대로,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공간이며, 그것은 형상화 'figuration' 되는 공간이다. ● 그녀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움직임의 이미지로서, '고체 상태'가 아니라, 액체 상태의(liquidite d'essence, Alain Renaud-Alain의 설명) 본질로 보여진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고정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음악처럼 흐르며 변화하는 액체와 같은 특성을 갖는다. ● 또한 그녀의 작품들은 작품 '완전평면TV'에서처럼, 그림에서 지시되는 것이 평면과 입체 사이에 보여지는 인덱스이자 미메시스이다. 이는 복합적인 이미지들의 관계를 보여주며, 그럼으로써, index와 indice의 차이와, 제시(presentation)와 재현(representation)의 관계를 드러낸다(작품 '폭포'). 이렇듯 복수적 상황들이 겹쳐진 공간은 입체와 영상이 오버랩된 형태로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병치된다. 이 겹침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공간(neuter)이다. 이 공간은 복수의 것들이 섞여져 만들어진 중성(neutre)의 공간이 아니라, 항상 두 가지 축이 그대로 드러나는 'a to b'의 공간이다. a에서 b로 이르는 순간(momentum)이고 이행해 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존재에 다가가 붙거나 (ad here : adhaere), 도착되는 (ad-venire) 것이다(그녀의 입체작품위에 프로젝션). ● 이렇듯, '사이'는 장르와 양식이 혼재하는 등 서로 다른 관계를 허용(ad mettere)하기도 한다. 이는 referece의 구조로서 주체와 타자의 이분적 구조이거나, 복수의 대상들의 관계로 볼 수 있다. 그 사이에서 발견되는 형태들은 단순한 morphology가 아니라, 일종의 morphogenetic(devenir-forme), 즉 '형태가 되는' 또는 '형태를 생산하는' 공간이다. 즉, 생산적인 공간(khora : platon 의 timee)이다. ● 또한 단선적이거나 단층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시간'(image-temps)이다. 드뤼즈의 지적처럼, 오디오 비쥬얼한 이미지는 전체를 보여주는 영상이 아니라, 오히려, 잘려지고 찢어진 것들이 혼재하는 것이며, 이는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IMAGE-MOUVEMENT'로서의 이미지는 정지된 이미지와 시간적 이미지를 분리시켜, '사이' 또는 '절단'을 강조한다. 절단된 이미지들은 플롯의 파편화에 의해, 더욱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다원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정지된 이미지와 분절적인 이미지 그리고 움직임으로서의 이미지들의 '사이'를 제시한다. Eisenstein이 '촬영한다는 것은 세계를 조각내는 것'으로 이야기하듯이, 그녀의 영상도, 세계를 단절시키고 있다. 일예로, 땅, 하늘, 바다의 이미지가 순서가 바뀌면서 반복되거나, 대상들의 방향이 전환되는 작품에서, 그리고, 'this... that ... '에서도, 병열적이면서도 부분적(fragmental)인 이미지들에서도 이러한 특성들은 발견된다. 또한 조각(fragment)의 특성은 제목에서도 보여지는데, 앞의 'this.... that...'가 그 예이다. '...'에 의해, this와 that은 구문상으로 파편화 된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의 기능이다. '... '은 말 줄임표이면서도 무엇이든지 넣을 수 있는 빈 공간이다. 즉 this와 that의 사이의 공간, 후속공간이면서도, 관찰자나 작가가 무엇이든지 넣을 수 있는 함수의 x와 같은 공간이어서, 개념적인 놀이를 가능케 하는 장소이다. ● 여러 이미지들 사이에서, 또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이미지와 아이콘의 혼재이다. Nicephore는 Antirrhetics 에서, 아이콘은 과거의 것이나 원본과 관련된다(skesis)고 설명한다. 아이콘은 항상 원인을 갖으며, 그것은 그 원인의 결과이다. 이 이유에서 아이콘은 관계성(pros ti)을 가져야 한다. ( I. 277 C - 278 D) 이러한 관계성(pros ti)은 그녀의 작품에서 여러 시점 사이에서, 다양한 사물 사이에서 나타나며, 리퍼런스들이 원인으로서 그리고 근거로서 지시될 때(index) 그 의미관계가 여러 층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작품의 이미지 또는 아이콘은 원본과의 관계에서 유사성, 복제성, 그리고 재현성에 기초한다. ● 그녀의 아이콘과 이미지의 차별적 특성은 구체적으로 Mondzaine의 설명을 예로 들어 제시할 수 있다. 이미지는 일종의 이포스타시스이거나 히포케이메논(hypostasis, hypokeimenon)이다. 다시 말하면 형식적인 기체(基體, 기층 : substrat)이다. 그와 달리, 아이콘은 비물질적인 측면으로 archetypon이며 prototypon이다(원형적 형상 또는 특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들은 그의 작품의 물질적, 비물질적인 특성을 지시하며 이 둘 사이의 독립된 관계로 제시된다. 물질적인 형상의 특성으로, 그녀의 작품에서는 입체적 실체의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고, 그것에 올려진 환영적인 이미지를 비물질적인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이'는 그의 작품에서 '다시점'으로 나타나며, 이는 드뤼즈의 두 개의 시점에 대한 설명과 관련시켜 반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사이'라는 개념이 단지 개념의 충실한 번역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더욱 더 예술적인 해석과 창의적인 제시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 강태성

Vol.20000907a | 이현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