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말걸기

1부 일상으로부터-서울, 그 삶의 공간에서   2000_0901 ▶︎ on_line

이흥덕_부타, 예수 서울에 입성하시다_캔버스에 유채_182×291.3cm_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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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기획_김진하   참여작가 강경구_이흥덕_이청운_김주호_안창홍_박강원 김지원_이상권_이강우_이동기_김석_손기환

와이즈갤러리 www.wisegallery.com

서울에서의 삶과 문화의 모순을 어떻게 미술에 반영하는가...? ● 작업실에서 자신만의 세계로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 것과는 다르게 일상을 소재로 하여 작업의 매듭을 풀어나가는 작가들은 객관적인 현실세계에 대한 리얼리티를 찾는다. 그것은 생활과 일상에서 체험하고 사고한 바를 그림으로 종합해 내는 것, 혹은 삶으로부터 유래하는 자아와 실존을 진실하게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다. ● 그 반영의 과정과 결과를 통하여 동시대의 삶과 문화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비판과 개입이 부드럽게 서정적으로, 혹은 풍자적으로, 혹은 날카로운 공격성으로 드러난다. 이런 경향을 미학용어로 리얼리즘(Realism)이라 한다. 미학자 루카치(G. Lukccs)는 리얼리즘의 기본은 현실의 모순을 반영하면서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인식을 작품에서 구현하는 것이라 했다. 반영(反映 Reflection)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영향을 드러냄"이다. ● 즉 인간이 자신의 감각과 지각에 포착되는 모든 것을 다시 표출시키는 것을 말한다. 근대이전의 서구미술사는 반영과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을 같은 것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나 재현이라는 것이 기법적인 사실주의, 즉 대상이나 현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한정된 것임에 반해 반영은 작가의 폭넓은 사유와 관찰을 포함한다. ● 고대 그리이스의 플라톤은 미술(회화)을 단순한 모방기술로 치부했다. 미술이 이데아(Idea)라는 절대적인 정신세계, 즉 형이상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외피를 재현하는 단순한 기능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플라톤이 살았던 고대 그리이스에서의 미술은 궁정이나 신전의 장식물이거나 인물이나 사건을 기록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것이 더 합당했을지도 모른다. ● 따라서 미술은 테크네(Techne: 호머시대의 그리이스 말로 경제적인 유용성을 위한 단순한 기술을 의미하는 단어)의 차원에서 그 개념이 규정되었다. ●그러나 문학이나 음악, 연극은 한 차원 수준 높은 예술로서의 테미스(Themis: 인간의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문명의 원리로서의 기술)로 보았다. 즉 이런 쟝르들은 언어나 동작 소리 등의 추상적 요소가 작품의 제재였기 때문이었다. ● 이는 플라톤이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만 미술을 보았을 때의 기준이다. 적어도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신과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상상력과 신화적 상징을 통해서, 그리고 색채와 원근법과 해부학의 탐구로 회화미술은 단순한 테크네의 수준에 있지 않았다. 또한 근대를 거치면서 화가는 사물의 외양을 그리는 단순한 장인(匠人 Artisan)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독립된 예술가로 자신을 자각했고 거기에서부터 현실과 일상과 사회와 역사를 다양한 형식과 수사법과 상징으로 작품에 반영하게 되었다.

안창홍_오렌지 빛 청춘_캔버스에 아크릴릭_130.3×89.4cm_1994

서울에서의 삻을 작가들은 어떻게 보고 표현하는가...? ● 우선 서울이라는 공간적인 소재를 굵고 거친 필치의 먹선과 대담한 화면구성을 통해 삶의 끈질긴 힘과 에너지로 상징화한 강경구의 풍경화가 있다. 전통적인 풍경화라는 쟝르를 좀 더 적극적인 자기 표현으로 확대시켜서 거대도시 서울을 하나의 큰 에너지덩어리로 포착해 낸다. ● 다음으로 서울의 중심과 외곽에서의 밤과 낮의 일상에 접근하는 작업들이 연결된다. 그 삶의 다양한 양상들은 이흥덕, 이상권, 박강원, 이청운, 안창홍, 김지원, 이강우, 김주호 등의 작품들이다. ● 이흥덕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소시민성에 주목한다. 그들의 심리적인 불안과 흔들림, 그 배후의 부조리한 힘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주목하면서 때로는 우울한 서정성을, 또 때로는 희화적인 풍자를 통해 우리의 의식 한 부분에 밀착한다. ● 이청운은 도시 변두리의 공간과 사람을 통해 고단한 삶 속에서의 인간적 끈끈함, 혹은 삶에의 의지를 펼쳐 보인다. 그의 이 서정적인 고도시리즈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을 관통하는 자전적인 서울이야기다. 거기에서의 남루하면서도 소박한 삶에의 의지는 그의 세대(50대)들이 헤쳐온 성장제일주의의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 이상권의 작업도 이런 분위기와 연장선상에 있다.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의 일상을 우울하게 묘사하며 포착하는 것은 그들의 정서적인 공통지점이다. 살기 위해 싸우고 투쟁하는 현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이면에는 굵직한 삶에의 집착과 힘이 드러난다. ● 여기에 비하면 박강원의 포카스는 매우 밝다. 그녀는 도심 한 복판에서의 활기와 강열한 햇살을 한 화면에서 조우하여 우리시대 서울의 낮을 압축해 보인다. 구체적인 현장성과 당대성에 기반한 사실적인 정서의 포착은 자본주의의 나른함과 폭발적인 욕망을 동시에 오버랩 해내는 작가의 예민한 촉수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김주호_근데 말이야_질구이_52×62×25cm_1998

김주호의 조각은 이웃의 샐러리맨의 일상을 낙천적인 여유로 드러낸다. 바쁜 일상과 고답적인 구조 속에서의 온갖 스트레스를 역설적인 유머로 포근히 감싼다. 익살과 해학으로 잡아낸 인물들의 표정과 간단한 몸통묘사가 수반해내는 맛은 시원하고 구수한 숭늉처럼 부드럽게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 안창홍의 공격성은 맹수의 그것처럼 본능적이다. 모던한 감각과 세련된 화면의 처리 뒤로 우리시대의 음험한 욕망의 구조와 그것을 그림으로 즐기는 자기의 의식까지 싸잡아서 공격한다. 그래서 달콤하게 즐길 수 있는 그의 화면구성의 쾌락적 표현보다 더 큰 무거움이 견인해내는 반성은 크고도 버겁다. ●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창백한 관능의 이중성은 그래서 더욱 리얼하다. ● 김지원의 그림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식을 요구한다. 일상적 소재들을 등장시키지만 그 소재들 자체보다는 우리들의 '상식적인 생각하기'에 딴지를 건다. 개념적인 사유를 통해서 일상 속에서 쉽게 지나가 버리는 부분을 다시금 떠 올려서 반성케 하는 것이다. 이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생각하는 자세를 문제시함으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작업의 포인트로 상정된다. ● 이강우의 방식은 문제 한가운데로 직진한다. 그의 사진작업은 사진이라는 매체가 갖는 직접성과 현장성을 최대한 확보하면서도 그 현상의 섬세한 부분까지 작가의 관점을 밀착시킨다. 사진 뿐 아니라 르포르타쥬 형식의 글과 대담이 모두 작품에 도입된다. 최근 신세대를 소재로 한 그의 작업은 미술이 얼마나 그 형식과 방식을 넓힐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으로 연결된다. ● 일상보다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기호와 시각이미지들을 반회화적인 방식으로 중성화시키는 이동기와 손기환의 작업은 팝아트를 연상시킨다. 대중적인 시각문화를 고스란히 차용하면서 그곳에서의 일상을 반영하지만 송곳같은 인식의 예리함이 숨어 있다. ● 이동기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을 포인트로 등장시킨다.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들의 오감을 사로잡고 있는 기호가 단순하게 제시된다. 그런데 이것이 제기하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대중의 심리적인 반응의 문제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비껴가려는 우리들의 의식을 가로막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돌출적으로 유도한다. ● 즉 제시만 하는 작가의 행위를 통해 관객의 머리 속에서 복잡한 갈등을 일으켜 버리는 것이다. ● 손기환도 이와 유사한 어법을 구사하면서도 좀 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운을 뗀다. 만화를 동원하면서 결코 만화적이지 않은 소통체계를 우리에게 요구함으로 일상 속에서의 가벼움과 무거움, 지나치는 것과 중요시해야될 것들을 동시에 대치시킨다. ● 그래서 그의 그림은 감정적인 부분을 버리고 스파이더맨과 구한말의 의병을 공존시키며 우리의 인식과 이성을 공략한다. ● 김석은 어떤 기호나 내용을 배제하며 관객들에게 "만납시다. 얘기합시다."라고 하며 조각공간을 해체하며 열어 보인다. 그것은 모든 것이 동일화되어 가는 사회현상으로부터 주체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공간의 제공이다. 아무런 분위기도 없는 사람의 두상을 간략하게 디자인한 형상의 반복적인 제시와 설치를 통해서 당신과 나의 만남, 비어 있고 투명한 만남 자체를 유도한다. ■ 김진하

Vol.20000915a | 미술의 말걸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