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담론

80년대 소그룹의 작가들   2000_1106 ▶︎ 2000_1121

한운성_매듭87-a_캔버스에 유채_1987

초대일시_2000_1106_월요일_05:00pm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500

80년대는 격정과 혼돈의 시기였다. '80년 서울의 봄을 앗아간 신군부에 의해 재편된 권력과 제도 그리고 이에 맞서 민주화를 갈망하는 투쟁과 운동의 시기인 동시에 산업사회 후반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후들로 인한 혼돈된 가치관과 새로움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공존되었던 시기다. 이러한 혼돈의 와중에서 문화 역시 변혁의 모색이 꿈틀대던 시기였다. 미술 또한 이러한 정황과 무관할 수 없으며, 이러한 변혁은 구체적으로 제도화된 문화에 대한 거부와 극복이라는 특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성들은 소위 민중·민족 진영의 정치적 인식을 토대로한 강렬한 사회운동 차원의 적극적인 태도와 기성 미술에 대한 새로운 어법을 통해 미술 내적인 변혁을 꾀하는 상대적으로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대별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 또한 이 시기는 이성과 합리적 사유를 근간으로 하던 서구의 모던적 사유가 한계를 드러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부에선 포스트모던적 사유의 가치가 운위되던 시기였다. 국내의 경우도 80년대 후반부에 들어 포스트모던의 이론이 소개되어지면서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새로운 문화이론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파급되던 시기였다. 또한 외형적으로는 그간의 미술계에 편만해 있던 거대한 그룹이나 단체들과는 양상을 달리하는 소그룹이나 독자적인 개인의 발언들이 강화되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그룹이나 개인의 발언들은 민중과 민족진영의 큰 목소리의 그늘에 가려져 충분한 평가나 논의가 다소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 '80년대 소그룹 활동은 모노크롬 성향으로 획일화되어가던 당시의 '한국적 모더니즘'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개인의 표현 영역을 넓혀가려는 평면 위주 작가들과, 평면을 탈피하고 다양한 매체와 형식실험을 통해 입체와 설치작업으로 작업방향을 선회하면서 상대적으로 강한 거부를 꾀한 작가들의 활동으로 대별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태도에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 70년대 중·후반의 획일화되고 제도화되어 가는 미술에 대해 나름대로의 거리를 가지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미술계를 제도화시킨 획일적 거대담론으로부터 거리를 둔 작은 담론의 생산자들로서 일상과 같이 사소한 것들을 소재로 하거나 또는 개인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패권주의적 단체활동 대신 군소 그룹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심사로부터 도출된 언어들을 구사하였는데 다양한 표현 매체와 방식을 통해 개인적 관심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특히 입체작업을 통해 표현영역의 확대와 장르의 해체를 좀더 적극적으로 꾀했던 일부 소그룹 활동은 소위 설치미술의 확산을 통해 당시 청년미술계의 향방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 80년대의 비평계는 70년대 후반에 등장하여 강력한 집단발언을 통해 미술의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던 민중·민족진영들의 비평가들과 그들의 주 공격대상이 되었던 기존의 제도적 비평세력, 그리고 양자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제3세력으로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신진비평가 그룹으로 대별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의 재편은 결국 모더니즘 미학을 근거로 유지되던 제도권이 큰 도전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현실적인 입지 수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부분적으로 신진비평가들 역시 제도와 느슨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피상적으로는 민중·민족진영 대 제도권이라는 비평세력의 양대 구조로 대립구조가 심화되었다. 비민중·민족진영의 신진 비평가들 역시 한계를 보이는 제도권 논리를 탈피하기 위해 그들만의 방법론을 가지고자 하였는데, 소위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주조로 하였다. 이에 대해 민중과 민족 진영에서는 기존의 제도권과 마찬가지로 서구미학의 무비판적 추종세력으로 비판하였고, 상대 진영에 대해 '계급성'과 당파적 논리를 근간으로 한 불순한 세력들로 비판하면서 80년대 후반에 오면 양자의 대립구도가 더욱더 심화되어 접점 없는 상호불신과 비난으로 미술계의 구도를 끌고 갔다. ● 이러한 정황 하에서 80년대 소그룹의 작가들은 양자의 대립적 구도 내에서 비평세력과 제도수호 세력들에 의해 작위적으로 분류되어진 감이 없지 않다. 제도권과 민중·민족진영이라는 양대 구조 내에서 작가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서로 다른 권역에서 활동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이러한 비생산적 대립구도는 지속되었고 문민정부 이후 민중·민족 진영은 재편된 제도 속에 급속하게 유입되면서 이후 새로운 제도권을 형성하였다. 이후 양진영은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 다원화된 가치의 일부로 희석되어 버리면서 건전한 논쟁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서 혼돈만이 가중되고 있다. ● 본 전시는 상술한 시대적 정황을 바탕으로 80년대에 나타난 소그룹들에 속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작가들의 당시작품을 선보임을 그 목표로 한다. 여기에는 80년에 결성된 실험 그룹 서울80, 개인의 일상과 주변, 그리고 무의식의 상태에 대한 관심을 공감대로 출범한 TARA(81), 개별성을 존중하며 회화의 분명한 언어를 회복코자 했던 82 서울회화전, 주변의 사물을 통한 회화공간에서의 개념적 한계를 극복하며 본질을 확대하여 표출코자했던 난지도(85), 메타 언어의 구현을 통한 모더니즘 어법의 극복을 추구한 Meta-Vox(85), 그리고 80년대 후반에 신세대들에 의해 조직되어 후기산업사회적 감수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드러낸 뮤지엄(87),언어상징의 구조분석을 통한 이미지와 오브제의 문제를 다루었던 3월의 서울(87),개인적 어법으로 형상과 비형상을 통한 레알리떼의 추구를 목표로한 레알리떼 서울(87), 예술과 과학의 근간이 되는 로고스와 파토스를 통한 새로운 미학의 추구를 목표로 했던 로고스와 파토스(87)그리고황금사과(90) 등의 10개 그룹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여왔고 현재도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22명의 작가들을 초대하였다. ● 오래지 않은 과거의 미술들을 들추어내어 무엇을 할 것인가? 왜 하필 새삼스레 80년대인가? 80년대 소그룹 작가들의 가치를 재평가할 것이 무엇인가? 이들의 명예회복을 목표로 하는가? 등등 많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이전시의 목표는 이들 소그룹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 소장작가들로서 시대를 바라보던 고뇌와 열정의 단편들을 통해서 그들의 의식이 오늘에 제기하는 의미들을 조명 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그룹들의 성격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선배들처럼 자신의 그룹을 거대 집단화하여 제도에 편승하기보다는 제도에 대해 나름대로 이의를 제기했던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80년대 양대 구조로 미술계를 구획하면서 자신들의 거대담론을 내걸었던 거대 집단들과 방법론을 달리 하였지만 그들에게서 다원화된 오늘 우리시대 미술의 맹아를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7,80년대는 소그룹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수다한 소그룹이 거대 집단으로 흡수통합 되면서 제도권을 장악하여 권력화 되거나 이러한 역학 구조의 게임에 실패한 그룹들은 해체되었던 것과는 달리 80년대 소그룹들은 자신들의 서로 다른 다양한 어법을 통해 공존하면서 작은 담론들로 구성된 독창성을 유지하였다 ● 소그룹 활동에 속하였던 대다수의 작가들은 비민중 진영의 신진 비평가들에 의해 기획된 포스트모던과 관련한 많은 전시들에 동원되어 마치 포스트모더니즘진영에 속하는 작가들로 평가되기도 하고, 혹자에 의하면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과정에서 나타나는 초기단계인 탈(脫)모던적 세력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민중진영의 논객들에게는 무비판적인 서구미학의 차용이라는 수용미학적 관점으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이런 맥락 하에서 당시의 소그룹과 이에 속한 작가들을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미술사에 나타난 사실 듯이 그러하듯 이에 대한 평가가 결코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80년대 우리의 미술사의 흐름은 모던 -탈모던- 포스트모던으로의 이행과정 중 탈모던의 지위에 놓이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으며, 이를 역사적 당위로 관념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현재의 현란한 패션미술이 바로 포스트모던의 전형이라는 것인데 사실을 논리로 꿰어 맞추는 넌센스를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군의 신진 비평가들은 이를 일본의 모노하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 등과 같은 구미의 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폄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현장의 작가들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며 서구적 사관으로 미술사를 재단하려는 무모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 소그룹의 작가들은 모두가 작은 담론들을 통해 모더니즘 미학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 고심하던 작가들이며, 서구의 미학에 대한 무분별한 차용을 무엇보다 경계하던 작가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 소그룹의 작가들은 나름대로 그룹 단위의 이론적 탐구를 추구하였었는데, 이러한 결과로 8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서구 모더니즘의 전모를 이론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서구 미학과 미술사에 대한 진정한 비판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적 태도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 점은 전시와 함께 제시될 그룹활동 결과로 생산된 많은 텍스트 자료 등을 통해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소그룹의 작가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구의 모더니즘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첫 세대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미감과 우리식 어법에 대한 변별력을 탐구한 첫세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80년대 소그룹의 작가들의 경우,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양대 패권주의적 세력과 서구 미술사에 경도된 비평가들의 편의주의적 태도에 의해 작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건강한 비판정신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였다고 본다. 80년대 소그룹의 작가들은 다원주의 시대, 후기모던적 개념의 수다한 전시에 단골로 동원되던 작가들이며 현재에도 한국미술의 중추적 작가들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거대 담론에 맞서 또 다른 거대담론을 구축하고 제도 속에 편입되어 들어간 민중·민족 진영의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거대담론을 거부하며 본격적으로 작은 담론들을 생산하였던 세대들이며 오늘의 신세대 작가들처럼 시류에 편승한 패션미술처럼 얄팍한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담론의 생산자들이다. ●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이 제시했던 다양한 작은 담론들 속에서 80년대 주역들의 열정과 고뇌의 흔적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전시여건상 많은 작가들을 초대하지 못한 아쉬움과 멀지 않은 과거임에도 작품이 보존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진다. 전시회를 통해 제기된 작은 담론들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지속적으로 재해석되어지기를 기대한다. ■ 김찬동

Vol.20001106a | 작은 담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