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부록이다.

손정목 사진展   2000_1102 ▶︎ 2000_1114

서남포토스페이스(폐관) Tel. 02_3770_2672

예술은 정말 부록일까? ● 피카추 스티커에 열광하며 피카추 빵을 사먹던 동네 아이들의 분주한 손길을 떠올리며 부록이라는 것이 가진 힘을 절감할 수는 있었지만, 어쨌거나 부록은 '덤'으로 오는 것 아닌가. 수세기 동안이나 감히 그 이름을 정의하지 못해 아예 공중에 섬 하나 띄워주고 거기에 예술을 안착시켜 모시고 온 것이 지금까지의 예술이 가진 그 지위의 역사라면, 이 젊은 작가의 패기 만만한 정의는 단순한 가벼움을 넘어서 신성 모독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너 좀 안다고 재는 거냐, 소리를 듣기에 충분할 만큼.

두 개가 한 세트다. 아니면 둘 중 하나는 부록인가? ● 처음에는 아, 이 사람이 카메라 들고 이것, 이것 찍었구나 생각해서, 작품 하나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그와 거의 동시에 그 작품이 다른 어느 하나와 다시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는 또 다른 하나가 제공하는 풍경 속에 들어가 있던 부분의 풍경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이제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들어가 있는 제목에 눈길이 간다. 제목이라고 보기엔 아무래도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다. 머리를 더 굴려본다. 아, 두 개의 사진이 이제 제목이랑 다시 한 쌍이 되는구나. 그런데 그것도 좀 수상하다. 제목이 먼저인 건 아니었을까. 텍스트의 의미를 쫓아 이미지로 가는 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 손정목의 작품에서 대상 자체의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이제 거의 불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피사체와 눈의 관계에서 출발하여 그 피사체가 다른 것과 연결이 되고, 또 그것이 다시 텍스트와 만나게 되는, 혹은 그 반대로 진행되었을 지도 모를 그 과정은, 물론 작가의 임의적인 선택, 작가의 시각이 낳은 결과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아가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같으면서 다른 것, 같은 것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다른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다른 것으로의 가치 전이를 꿈꾸고 있다. ● 라깡의 욕망 이론이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이 남자 가지면, 또 다른 남자가 보고 싶은 것과도 같은(나의 가벼움을 용서하시길),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지각 변동이 아니다. 새로운 욕망은 언제나 무언가를 가졌을 때 나타난다. 무언가가 미리 내게 없다면, 새로운 욕망도 없다. 일상 속에서 나를 부르는 사물들과 만나면, 그 사물들과는 다른 어떤 것이 기왕의 사물을 통해 나를 부른다. 부록들이다. 새로운 욕망은 부록인 셈이다. 무언가가 없었다면 부록도 없다.

이쯤되면 우리는 무진장 궁금해진다. ● 부록은 알겠는데, 작품은 대체 어떤 것인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몰두하게 되는 그 주어진 몇 작품들 간의 상황, 그것 모두가 손정목의 작품인 것이다. 주어진 사진과 텍스트들은 굳이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그 순간을 우리가 어떻게 포착해내는가 하는 것이다. 일상이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면, 예술은 그 어디에라도 있을 수 있다. 삶이 내게 주어진 이상 꿈꿀 수 있다면, 거기에 예술은 있다. 작가는 그래서 예술은 부록이라고 과감히, 과감히 말한다.

물론 우리가 이 작품들 속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또 있다. ● 작가는 충실한 사진가로서, 사진 속에 담겨진 상황들의 의미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를 '부록'으로 이끄는 것은 단순히 내가 무심코 보는 것들이 아니라, 그래도 어느 정도는 특수한 상황을 선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그 특수한 상황으로 몰입해가는 과정에서 개입될 수 있는 권력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그가 사진 위에 붙여 놓은 붉은 색의 점들은 우리의 눈을 집중시켜 그것을 보게 함과 동시에 '일단 정지'라는 경고의 표시이기도 하다. 허울 좋은 이름들을 달고, 우리에게 전체주의를 강요하는 그릇된 '시각'이 어디에도 있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그 그릇된 것들이 우리에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날 경우, 진정한 예술도, 윤리도 다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진지한 작가를 만났다. ● 무작정 진지하기만 하면 곤란한데, 사는 재미도 좀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첫 개인전에서 근사한 것들로 무언가를 포장하기 전에, 자신의 작업이 어디쯤 있는가를 건강하게 묻고 있는 손정목이라는 작가를, 이제 눈여겨 두고 볼 일이다. 피카추 스티커는 일단 내 손에 들어왔으니, 피카추 빵이 정말 맛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니 말이다. ■ 황록주

Vol.20001110a | 손정목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