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ES

남기덕展   2000_1031 ▶︎ 2000_1121

남기덕_Stand on the Road_설치, 모니터, VTR, 거울, 신발_300×1000×200cm_2000

한원미술관 서울 서초구 서초동 1449-12번지 Tel. 02_588_5642 www.hanwon.co.kr/museum

오늘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여기는 너무도 거대하고 복잡하며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미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정보가 쏟아지고,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과학문명의 발달과 개발속도도 개인의 차원을 떠나 팀과 시스템에 의해 집단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개인은 이미 개인이 아니며 하나의 틀 속에, 집단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인간은 이렇게 본인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관계 지워져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 사회는, 집단은, 개인은 오늘도 나름대로 목표와 희망을 설정하고 미래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내하고 희생하며 성취하려던 목표의 설정이, 형식상 모두가 동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힘의 논리에 의해서 동의하였다고 말하여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오늘날과 같이 물질적으로 풍요를 이룬 시대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행복에 겨워해야 할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수혜자인 개인이 별반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인가? 인간의 삶이 행복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오늘의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에 대하여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은 물질적 풍요를 일궈낸 장본인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틀에 얽매여 허덕이는 희생자는 아닌가? ● 개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성공만이 최대의 미덕인 사회, 반대로 성공한 몇몇의 우상을 바라보며 대다수의 개인은 생존을 위해 삶의 현장에서 허덕여야만 하는 모습을 본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후미진 뒷골목에서 가끔 그들의 그림자를 본다. 무한경쟁을 강요당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은 과연 어느 선까지일까? 결국 개인이 하는 모든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개인은 사회에서 대부분 희생자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들 신데렐라의 꿈을 꾸고 있지만 아침에 그들의 눈에 들어 오는 세계란 신데렐라의 우아한 세상이 아니라 오늘도 피 튀기게 싸워야만 하는 전쟁터가 아닐까? ● 개인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냉엄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아부와 아집, 편견과 변칙, 협박과 요행. 오늘도 뉴스는 성공의 기로에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군상들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없는 사람은 생존하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은 더욱 가지기 위하여 발버둥친다. 역사는 시대와 윤리 사회제도를 뛰어 넘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나의 눈은 냉엄한 현실을 보고 있다. ■ 남기덕·시각 이미지 생산자

남기덕_The Cuting_VTR_00:30:00_2000

THE CUTING ● 신발이 있다. 신발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다. 누구인가에 의해 사용될 때 진정한 의미가 발생한다. 그 쓰임새를 사랑하는 손이 있다. 손이 신발을 애무한다. 신발이 신이 나서 활발히 움직일수록 손의 애무는 더욱 더 짙어간다. 손의 애무는 애로틱 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신발의 옆구리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와서 박힌다. 어쩔 수 없음. 이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칼은 신발의 옆구리 속으로 빨려든다. 이제 비수를 든 손은 신발의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마치 무엇인가를 찾기라도 하듯이. 때로는 여유롭게, 때로는 격렬하게... 잘못 보면 신발과 손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예리한 비수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져 버려진 신발은 그 존재에 대하여 누구도 알지 못한다.

남기덕_Stand on the Road_설치, 모니터, VTR, 거울, 신발_300×1000×200cm_2000

stand on the Road ● 멀고 먼 곳에 등불이 있다. 신발들은 멀리서 반짝이는 등불을 향하여, 등불을 희망 삼아 고단한 여정의 길을 걷고 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정의 길을. 때로는 빨리 가려고 지름길로도 가고, 다른 신발을 밟고 넘어가기도 한다. 단지 멀리 어렴풋하게 보이는 등불을 향하여... ● 등불을 향하여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신발은 자신의 몸이 변태하고 있음을 느낀다. 몸이 황금색 갑옷으로 바뀌고 바닥에는 창까지 돋아났다. 그들은 용기백배 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의 길을 빨리 마치려 서두른다. 역사는 항상 그러했지만 그들이 본 것은 사막의 신기루, 그들이 본 것은 거울에 비친 등불의 그림자였다. 신발들은 항상 길 위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남기덕_Banquet_설치, 신발, 식탁, 의자_280×280×180cm_2000

Banquet ● 당신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늘도 만찬이 열린다. 은밀한 곳에서. 오늘은 정식 만찬이 있는 뜻깊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기념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만찬은 이루어지고 그들은 무엇인가를 축하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그들의 대화가 나즈막하게 들린다. ● 그곳에 당신이 초대손님으로 참석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는 신발요리가 식탁에 오른다. 일류 요리사가 조리한 전혀 새로운 미각의 요리를 그날 저녁 당신은 맛볼 수도 있다. 그리고 부드럽고 격식 있는 대화가 오갈 것이다. 그곳에 초대되는 손님들은 매너 있고 격식이 있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 자리는 당신의 성공을 보장하는 사교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에 주의하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바로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남기덕_SHOES MONUMENT_설치, 신발, 쇠, 200×180×600cm_2000

SHOES MONUMENT ●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생존해 있다는 것. 이것은 충분히 축복을 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뒤쳐져서 낙오해도 생존은 사회에 커다란 의미이며 축복이다. 상품을 팔아주는 소비자로 세금을 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주는 희생자로, 그리고 당신을 휘두르는 거대한 집단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증표로서 당신은 유용하며, 동시에 당신마저 없다면 세상은 그만큼 재미가 없을 테니까! 생존이란 축복 받을 일이며 따라서 당신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웁니다. 당신은 쥐꼬리만한 권력도 없습니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Vol.20001111a | 남기덕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