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과 미키마우스 남한에서 만나다.

이미지올로기 02 / 이동기

이동기_워키토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1×32cm_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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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만화방에 간다는 것은 무척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화라는 문화를 전혀 겪어보지 못한 부모님 세대들에게 이를 납득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퀘퀘한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화책을 들고 또래 아이들과 키득키득 거리는 만화방은 당시 어른들이 보기에 어린것들이 모여서 음모와 비행을 일삼는 낯설은 공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불량한 공간이 386세대에게는 무척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 요란스런 만화책 표지가 듬성듬성 붙어있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커다란 책장으로 둘러싸인 벽면이 나타난다. 그 벽면에 넓게 펼쳐진 만화책들은 책장을 둘러싼 검정 고무줄에 기대어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이야 각양각색의 만화책들이 있지만 당시에는 만화가도 얼마 없었으며 만화책도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 만화방의 만화책 진열방식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는데 책의 좁은 면으로 꼽혀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의 넓은 면으로 펼쳐져 진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만화책이 나오면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 출출할 때는 만화방 가운데 놓여있는 연탄난로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거나 속심이 소시지 대신에 고구마나 가래떡으로 만들어진 핫도그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만화방 한쪽 구석에 네발 달린 가구식 흑백텔레비전이 놓여져 있었다. 컬러텔레비전은커녕 흑백텔레비전도 마을에 얼마 없었던 그리 멀지 않은 386세대의 옛날 이야기이다. 오후 5시가 되면 온동네 아이들이 고사리 손에 10원 짜리 동전을 들고 모여들었다. 오후 6시까지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만화영화 방영이 끝난 뒤에도 끝내 아쉬워하며 그 모니터를 바라보던 기억들. 물론 그때 보았던 만화영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요괴인간' '아톰' '마린보이' '독수리 오형제' 등이었다. 어찌되었건 전자오락실이 등장하기 전까지 만화방은 386세대에게 있어 무척 소중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물론 컬러텔레비전이 방영될 즈음에 만화방은 무수히 많은 번역판 만화책들과 무협지, 로맨스 소설 등이 가득 채워졌으며 그 수요층도 점차 넓혀가고 있었다.

이동기_아토마우스 Atomaus_종이 인쇄 스티커 벽면 부착_2000

만화와 회화 ● 386세대인 이동기는 1988년부터 자신의 캔버스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두터운 물감과 거칠은 붓터치로 회화틱 하게 만화를 그렸었다. 그 최초의 작품이 '둘리'이다. 거무죽죽한 배경에 희동이와 초록색 둘리가 그려졌다. 아기공룡 둘리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캐릭터일 것이다. 그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의 힘이 그림을 그리는 이동기에게는 무척이나 커다랗게 다가왔던 것 같다. ● 무거운 캔버스에 담겨진 혓바닥을 삐쭉 내밀고 있는 둘리의 모습으로부터 이동기는 자신의 그림과 김수정의 만화가 어떻게 같고 다를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고민 끝에 이동기는 결국 자신의 회화를 선택했다. 이후로 이동기의 캔버스에는 까치머리, 야구선수, 권투선수, 자동차 충돌장면 등 만화의 감동적인 장면들이 매우 깔끔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만화를 그리면서 거칠은 붓터치로 칙칙한 회화적 질감을 연출하기보다는 인쇄처럼 매우 매끄럽고 고운색들로 만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려 나갔다. 분명 이동기의 회화작품이 노리고 있는 것은 텍스트가 되었던 만화로 곧바로 몰입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만화라는 텍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어엿하게 독립된 회화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한 이동기의 결론은 명쾌하다. 만화를 만화보다 더 만화답게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히려 텍스트였던 만화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이동기의 회화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동기의 캔버스는 극화와는 달리 긴 시간의 스토리를 펼쳐놓지 않는다. 그저 캔버스 하나로 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만화를 회화처럼 그리기보다는 보다 더 만화답게 그리는 것이 이동기의 캔버스를 회화작품으로 완성시키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묘안이었다.

이동기_수배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1998

'아토마우스'라는 괴물 ● 1993년 이동기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고안해냈다. 이름하여 '아토마우스 Atomaus'. 일본의 아톰과 미국의 미키마우스를 합성시킨 '괴물'이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절감한 일본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낸 원자소년 아톰과 미국 군사용 애니메이션을 위해 제작되었던 미키마우스가 남한에서 만들어낸 자식이 '아토마우스'인 것이다. 그래서 이동기의 '아토마우스' 초기 작품들에는 '괴물들'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그려진 외형은 무척이나 팬시하여서 곱고 여린 아동들의 감성을 파고들지만 그 내용은 다소 버거운 제3세계의 민족사를 반영하고 있는 요상한 캐릭터가 '아토마우스'인 것이다. ● 21세기를 즈음하여 남한의 '아토마우스'는 무척이나 바빠졌다. 하늘을 바삐 날아가거나, 폭탄처럼 터지면서 분열하기도 하고,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부리거나, 거미처럼 여러 개의 손으로 정신없이 일을 한다.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국수주의 관점이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유연한 지역성을 담보하는 캐릭터로 '아토마우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남한에 살고 있다. ● 386세대 이동기가 그려낸 또다른 괴물들로는 '모던 걸' '모던 보이' '수배자' '워키토키' 등이 있다. 과거 또는 현재에 누구나 한눈에 금새 알아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환기시키는 괴물들인 것이다. 이 괴물들은 만화와 회화가 낳은 돌연변이 일 수도 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영웅과 범인, 범죄와 일탈, 강요와 자발 등에 의한 갈등이 만들어낸 불량한 상상력의 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 힘의 근원은 남한에 존재했던 386세대의 아련하지만 소중했던 불량한 공간으로부터 출발한다. ■ 최금수

Vol.20001129a | 이미지올로기02/이동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