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의 기호

오세영 회화展   2001_0105 ▶︎ 2001_0130

서남미술전시관(폐관) Tel. 02_3770_3870~3

괘卦의 상징성과 그 해체 ● 1960년대 중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실험과 표현기법을 연구해 오고 있는 오세영은 한국화단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세영의 주제는 심성의 기호를 통해 기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상호와해를 모색하는 일이며, 자연적인 질서 속에서 인간심성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다. 그리하여 세계사적인 미술문화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우리의 고유한 시각과 미감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 그의 심성기호는 한마디로 태극기에 나타난 괘卦와 효爻에 대한 관찰로부터 유래한다. 주역에서 괘와 효는 '-'와 '--'의 두 부호로써 이루어져 있다. 매 쾌마다 새 항으로 짜여있고 매 항마다 '-'와 '--' 두가지가 있으므로 팔괘가 된다. 두 쾌를 서로 포개어 중괘重卦를 만들어 64 중괘가 된다. 매 중괘마다 포함된 6개항을 6효라고 한다. 효에서 표현된 '물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物極必反라는 의미는 변화의 역동성과 더불어 우주의 질서를 잘 보여준다. 괘와 효 자체는 단순한 기호에 지나지 않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깊은 뜻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를 오세영은 자유자재로 해체하기도 하고 재구성하고 조합하기도 해서 심성의 기호를 나타낸다. ● 1958년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가 그린 성조기는 이미지와 실재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우리로 하여금 묻게 하며, 결국 그가 그린 그와 같은 성조기는 작가의 심성 왜에는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팝아트의 선구가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에서 시사점을 얻어 오세영은 태극기의 바탕인 음과 양, 그리고 팔괘를 기본으로 한 그의 야심작 심성의 기호 연작 30여점을 이미 1996년에 세계미술의 살아있는 현장이며 중심지인 뉴욕 소호에서 발표하여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 그에 있어 태극과 괘는 무엇인가? 태극은 우주만물의 생성근원이며, 절대성과 통일성의 의미를 아울러 담고 있는 개념이다. 태극은 중국에서 온 개념인 듯하지만, 이미 신라시대에 태극도형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 시대의 벽화나 백제의 와당 그리고 나아가 고려자기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면, 이는 우리 고유의 문화 및 사상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극이 낳은 음과 양은 그 다양한 변화로 인해 하늘과 땅, 달과 해, 남과 여 등을 이룬다. 이는 얼핏 상극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생의 원리이며, 대립이나 갈등, 모순이 아니라 생명을 잉태한 조화의 원리이다. 태극을 둘러 산 사괘는 하늘, 땅, 물, 불 등 우주를 생성하는 근본요소요, 그 질서를 상징한다. 오세영은 괘를 주어진 바 그대로 그리지 않고 다양하게 해체하여 화폭 위에 펼쳐 보인다. 괘의 상징성을 전제하되, 그것을 해체하여 기존의 의미를 유보하고 비결정적인 채로 놓아둔다는 말이다. 여기에 오세영의 다원적 접근이 엿보인다. 상징은 의미작용을 하는 기호이다. 의미작용이란 기호를 통해 표현된 대상과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를 필연적으로 연관짓는 지시작용이다. 그러나 오세영에게서 이러한 지시작용은 매우 개방적이고 유연하며 다의적이다. 이는 우리의 심성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함축한다. 어찌보면 1990년 갤러리 현대에서 펼쳐 보인 홀로그래피즘 Holograpjism의 연장선 위에 있다. 실체에 근접한 허상을 완벽하게 그려내는 홀로그래피를 조형적으로 창조한 작업이었다. 홀로그래피는 재현된 일부분으로 전체를 재구성해내는 특성을 지닌다. 이미 시선 속에 지워지고 사라진 부분을 재현해내는 것이다. 이차원적 평면과 삼차원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여 우리에게 완벽한 원래 모습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오세영_숲속의 이야기_목판화_57×87cm_2000

한편으로 오세영은 자신의 이전의 시도인 잔상殘像 시리즈에 바탕을 두면서도 이번 전시에서 질감 위주의 연작을 다시금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1988년도 서울의 진화랑 전시에서 보여준 잔상 시리즈에서는 약간은 구상적이고 회화적인 맛을 제공하였다. 거기에서 그는 다양하면서도 부드러운 색감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기호적으로 단순화되어 있는 포스트모던한 화면을 그려내어 얼마간 경직되고 옵티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혼합매체를 사용하되 마티에르 중심의 판화적 특성을 잘 살려내고 있다. 즉 요철凹凸의 효과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다 자신의 특유한 양식으로 상감기법을 가미한 것이다. 또한 토기에 나타난 빗살무늬를 그려넣어 석기시대의 역사적 깊이를 느끼게 한다. 벽화와 유사한 느낌을 자아내며, 부조에 컬러링을 하고 단순한 평면적 붓터치 보다는 나이프와 같은 연장을 동원하여 긁고 그린다. 그는 기본적으로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하되 황색톤의 중간색을 강조하며 무채색을 덧붙여 쓴다. 거기에다 현대인의 생활주변의 용품들, 이를테면 뜸뜨는 일상용품의 일부나 컴퓨터 내부의 침을 오브제로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기계시대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하면서 오세영은 화폭의 한쪽에 우리의 돗자리를 오려 부치고 다른 쪽에 컴퍼스를 사용하여 정확한 원을 그려넣고 하여 고유한 정서와 미의식에다 서구문화의 산물로서의 제도製圖적 기교를 잘 조화시킨다. ● 작가와 그 작품은 근본적으로 자기시대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작품은 그 시대를 사는 삶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시대에 못 미친다면 시대의식의 결여일 것이요, 지나치게 앞선다면 관객의 공감과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최첨단의 지식과 정보사회에서 오세영은 끊임없는 실험작업을 통하여 기계부품의 일부를 오브제로 활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화폭 위에 시계의 부품 같은 것을 부쳐놓음으로써 기계가 여전히 우리의 생활에 아직도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인자임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기계적인 것을 거부하기보다는 그것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이것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우리의 주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 새로운 세기의 벽두에 그리고 새천년을 여는 즈음에 작가 오세영의 이면 전시가 세계적인 미술문화의 보편성안에서 우리의 고유한 조형의식이 정당하게 자리매김이 도리 것으로 확신한다. 나아가 현실에 안주하지 아니하고 늘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작가 자신의 예술적 도전을 높이 평가하며 새로운 도약을 보여주는 뜻깊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김광명

Vol.20010105a | 오세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