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시선

9인의 사진展   2001_0110 ▶ 2001_0120

김대수_국화_흑백인화_10×8inch_2000

참여작가 강성민_김광수_김대수_김형섭_윤현길 이상영_조성연_주상연_황정혜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www.gallerylux.net

새로운 정물을 위하여 ● 근대 미술이 정물이라 부르는 것은 17세기 초엽에 독립된 장르로 자리잡았다. 그러니까 「최후의 만찬」, 「가나안의 혼례」의 식탁을 채우는 음식물,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를 고지하는 천사의 백합꽃 다발은 16세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한 그림의 전체를 채우게 되었다. 게다가 가구의 문짝, 그리고 종교화나 초상의 뒷면을 장식하던 정물그림도 점차 그림의 앞면을 차지하게 되었다. 실제를 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섬세함으로 그려진 꽃, 과일, 야채, 사냥고기 혹은 어류를 어울려 놓은 그림은 1650년경, 화란지방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연'이라는 의미의 still-leven이라 명칭을 얻게되었고, 영어권 지역에서는 still life란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한 세기 뒤늦게 '죽은 자연'이라는 의미nature morte로 정물의 명칭이 정해졌는데, 이 명칭은 17세기부터 행해진 해골, 모래시계, 시든 꽃과 과일, 깨어진 그릇 등을 통해 이 세상 존재의 '헛되고 헛됨'을 표상하는 정물의 한 범주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 정물은 일상의 비근한 대상을 화가의 조형감각,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선택하고, 배치한다는 점에서 회화의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많은 창조적 자유를 보장하는 장르였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서구 미술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한 미술아카데미는 정물에는 종교화, 역사화의 전제조건인 문학적 지식과 이야기 (narration)의 구성능력이 요구하지 않다는 점에서 오직 손의 기예의 산물로만 여겼다. 또한 훌륭한 초상화의 전제조건이라 여겨지는 모델에 대한 내면적 통찰력을 수반하지 않는 까닭에, 정물화를 고상한 장르에 요구되는 정신성이 결여된 장르로 여겼다. 정물화는 게다가 풍경화가 가질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신비주의적 감정마저 동반하지 않는 까닭에 미술 아카데미가 수립한 장르의 위계질서 속에서 가장 낮은 위치를 점했다. 18세기에 샤르뎅이 내밀한 정물화의 명성으로 프랑스 왕립 미술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쾌거는 이 장르가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정점이었다. 이후 정물화가 다시 부활하기 위해서는 세잔느를 기다려야 했다. 그는 외계현실을 원주형, 원추형, 원형의 기본도형으로 환원시키고, 색의 풍요함으로 형태를 완성시키는 작업을 대상의 선택과 형태의 배열이 자유로운 정물을 통해 실험했다. 세잔느의 단단하고 냉정한 기하학적 재현의 모색은 20세기의 큐비즘으로 이어졌고, 피카소, 브라크, 후앙 그리 역시 정물을 통해 형태와 공간에 대한 기하학적 분석과 종합의 실험에 몰두했다. ● 20세기 사진은 칼 블로스펠트이후, 에드워드 웨스톤, 이모겐 커닝행을 거치며, 매플소프, 호앙 폰트큐베르타에 이르러 회화가 이루지 못한 정물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질적인 사물들의 상응, 상호 유사성을 찾아낸 것이었다. 블로스펠트는 속새풀에서 고대의 원주를, 산토끼 꽃에서 고딕 원형장식을 보여주었고, 웨스톤은 피망에서 남성의 근육질을, 양파의 단면에서 여성의 성기를 발견했다. 커닝햄과 매플소프는 꽃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꽃과 남성성기의 유사성을, 여성성기와의 상응을 찾아냈다. 폰트큐베르타는 열대 식물의 세부가 조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 '정물 視선'은 사진작업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정물을 실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정물 視선'은 샤르뎅, 세잔느, 큐비즘, 그리고 서구 사진계의 대가들이 클로즈-업의 형식을 통해 갱신한 정물화를 또다시 새롭게 일구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우리의 전통적 조형미의 참조와 발굴은 '새로운 정물'을 위한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초충도, 화조화, 사군자가 간직한 한국의 조형의식을 사진이라는 재현매체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롭게 천착하는 일은 기존의 정물들이 발견하지 못한 '정물 視선'에 도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물 視선'은 그러나 잊혀지고 폄하된 동양의 정물을 회고적으로, 국수주의적 감정으로 뒤돌아보는 어리석음은 피할 것이다. 사진을 통해 시효를 상실한 전통으로 복귀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인 '낡은' 정물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미술사와 사진사가 이룩한 성과를 고려하면서, 우리의 미의식을 상고함이 새로운 '정물 視선'임을 의심치 않는다. 사실 이론의 당위적 주장은 허튼 짓이고, 이를 작업의 통찰과 열정으로 넘어서려는 의지만이 '정물 視선'의 존재이유일 것이다.

강성민_무제_디지털 프린트_10×6inch_2000

'정물 視선' ●'정물 視선'은 서구의 미술이 가장 격의 없고 자유로운 장르로 규정한 정물을 지금, 이곳의 새로운 '視선'으로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이 사진 기획은 세잔느, 고호가 어느 다른 장르보다도 애호했고, 피카소, 브라크, 후앙 그리 등 큐비즘의 대가들이 천착한 정물을 다시 한번 우리의 새로운 관점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담고있다. 또한 '정물 視선'은 칼 블로스펠트 이후 클로즈 업 방식을 통해 20세기 사진이 발견한 이질적 사물들의 상호유사성, 다시 말해 속새풀에서 고대의 원주를 발견하고, 피망에서 남성의 근육질을, 꽃의 형상에서 여성의 성기와 남성의 성기를 찾아낸 사진적 시선의 성과를 고려하면서, 새로운 정물을 또다시 일구려는 노력이다. ● 새로운 정물의 구현을 위해 '정물 視선'은 무엇보다도 잊혀지고 멀어진 우리의 전통적 정물을 새롭게 재해석한다. 우리의 전통적 조형미를 참조하고 발굴하여 새로운 정물을 성취하고자 한다. 초충도, 화조화, 사군자가 간직한 한국의 조형의식을 사진이라는 재현매체를 통해 다시 한번 새롭게 천착하여 기존의 정물들이 발견하지 못한 '정물 視선'에 도달하고자 한다. ● 강성민, 김형섭은 한국의 초충도, 민화의 재현양상을 숙고한 후, 서구적 정물의 원근법적 재현과 현실환영주의 illusionism를 해체하고자 했다. 게다가 그들은 디지털사진의 조작과 폴라로이드 전사라는 대단히 현대적인 방식으로 한국의 전통미를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조성연은 한국적 미각과 시각, 동양적 선의 기품을 환기시키는 소품들을 다도의 정성과 꼼꼼함으로 배치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동양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간의 깊이감, 원근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전통적 정물의 양상에 충실한 면모를 보여준다. 결국 이들은 서구적 재현방식과 한국의 정물적 양상을 교묘히 섞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영의 나비가 앉은 잡풀의 형상은 서민적 초충도의 양상에 난(蘭)의 품격을 더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며, 그것은 한국미에 대한 오랜 관찰 끝에 찾아온 것이다. 그는 정물화의 한국적 특성을 초충도와 사군자에서 길어내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복고적 취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 장시간 노출이라는 암중모색을 시도했다. ● '정물 視선'은 그러나 잊혀지고 폄하된 우리의 정물의 양상을 되살리려는 노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사진의 시선은 서구의 미술사와 사진사가 이룩한 성과를 고려하면서, 새로운 정물의 양상을 타진한다. 무엇보다 클로즈 업 방식을 통해 윤현길은 황금빛 깃털의 비상을 시도했고, 김광수와 황정혜는 여성적 꽃의 형상에 상승과 확장이라는 운동성을 부여했다. 어둠의 태양 속에서 빛을 발산하는 김광수의 해바라기나, 황정혜의 백합꽃과 해바라기 줄기가 보여주는 집요한 향일성은 전통적 정물이 고집하는 꽃의 장식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김대수는 정물의 전통적 주제인 쇠락과 죽음의 시간을 통보하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를 풍자적으로 개작한다. 표본화된 나비, 떨어져 죽은 파리들, 바늘에 꽂힌 꽃, 내던져진 주사위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시간, 죽음의 시간을 표상하지만, 그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쇠락을 유머로서 대처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비는 여전히 살아있는 형상을 가장하고, 싱싱한 꽃은 바늘을 꽂아 시듬을 강요하는 파리를 몰살시킨 듯하기 때문이다. 던져진 주사위는 오직 파리의 운명 정도로만 여겨지는 것이다. 주상연의 사과와 나뭇잎은 인공적 형광빛으로 방부처리됐지만, 흠과 상처로 얼룩졌다는 점에서 메멘토 모리의 불가피성을 가시화하고 있다. 죽음을 거부하는 인공지체, 유전자 조작을 상기시키는 강렬한 인공색채는 죽음의 자취와 흔적을 가리우고 늦출 수 있지만 결코 거부할 수는 없다. 그녀의 정물에서는 어둠이 형광 빛을 잠식하는 것이지, 그 역은 결코 아닌 것이다. ● 이처럼 '정물 視선'이 보여준 정물의 시도는 하나의 미학적 방향, 목표로 묶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것이다. 기존 정물의 형식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두드러진 작품이 있었는가 하면, 정물의 전통에 의지하여 작가의 강박관념적 주제를 암시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해묵은 정물의 주제에 의거하여 새로운 사진형식을 추구하기도 했고, 서구 정물의 양상과 동양의 정물적 표현을 새롭게 손질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 2회를 맞는 '정물 視선'은 사진을 주 매체로, 정물의 동양적 가치와 서구적 양상을 포괄하면서 정물의 새로운 '視선'을 구축하려는 시도들의 모색인 셈이다. ■ 최봉림

Vol.20010107a | 정물시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