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작가 한성애_한경희_심우현_이종탁_김성희_정현명_양정아 안민라_김재영_옥성룡_이경민_배기우_이동윤_서지현
나무갤러리(폐관)
'B급04' 전을 제안하며 ● 지난해 인사동에 가해졌던 전례 없는 대규모 공사를 기억해 보자. 이 공사의 목적은, 당시 서울시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그 동안 서울의 주요 관광지로서 인사동이 가진 지저분하고 복잡한 거리 형태를 개선하고, 나아가 전통 문화를 보존한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공사는 그것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용자들이 호소하는 불편함과, 오히려 공사로 인해 복잡하고 지저분해진 환경으로 인해 처음에 제시된 바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고 말았다. 공사는 더 이상 목적 지향적인 단일한 흐름에서 탈궤하여, 그 자체가 무목적적이고 방향을 잃은 떠돌아다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인사동은 전돌로 포장된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되었지만 문화적 정통성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새로이 들어서는 현대적 전시공간들이 인사동 길의 한 쪽에 늘어선 반면, '전통한옥 보존지구'로 묶인 단층 건물들이 또 다른 한쪽 면에 그대로 상존 하면서, 인사동의 공사는 어떠한 목적도 이루지 못한, 또 하나의 부조화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 그러나 여기서, 탈 궤도적인 공사의 운명을 무능력한 관료들의 전시행정 탓으로 돌리는 식의 단순논리, 단순비판을 넘어서는, 어떤 현대 문명에 본질적으로 내재된 아이러니를 발견하고 그 과정을 생생히 드러내고자 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또한 발견한다. 어쩌면 공사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전체적이고 합일 지향적인, 그래서 이데올로기화하는 그러한 목표 의식 바로 그 자체가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문제 지점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모더니즘의 아이러니는 도시 공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사진 매체를 이용해 작업하는 우리가 주목하는 것도 바로 사진이 근대적인 시각체계를 확고히 정립시키고, 나아가 현대의 이미지 환경을 가능케 한 발명품이었다는 점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사각형 프레임은 시각 장을 균질화 해버리며, 인화지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화학적, 기계적) 조작의 문제들은 사진의 시각이 매커니즘의 규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사진은 여타의 시각 예술 매체들보다도 그 한계와 경계가 과학 기술로서 분명하게 성립되는 매체이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이란 바로 모더니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사진이 성욕을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 구매욕을 자극하는 상업주의 등의 효과적인 매체가 되어버린 사진의 운명적 역사는 다시 공사에 대해 앞서 언급했던 지점을 상기하게 한다. 즉 사진의 시각에 대한 근대의 믿음 혹은 미신, 다시 말해 기계적, 과학적 시각에 대한 물신주의와는 사뭇 어긋나버린 사진 이미지의 충동적 흐름에서 우리는 탈궤도적 공사의 진행을 생생히 목격하는 것이다. ● 미술관과 전시 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의를 풀어볼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 박물관은 근대적 국가의 형성과 때를 맞추어 대중을 계몽하기 위한 제도 장치의 하나로 탄생하게 되었으나,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낸 것은 작품을 최종적으로 미술관과 아카데미즘의 제도 안에 '안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작품은 그것이 생산되고 진화되어온 문맥으로부터 엄격히 분리되며, 결국 부르주아적 기호품이 되고 말았다. ● 그렇게 변화해온 미술제도 및 담론에 대한 재 고찰은 모더니즘의 완성을 목전에 두었다고 믿었던 20세기 초, 다다이스트들에 의해 야기되었다. 그들이 실험한 반 미학 선상의 소동은 당시의 혼란스럽고 격동적이었던 사회 변화 속에서 근대 미술 담론에 가해진 무의미하면서도 진지한 균열의 발단이 되었고, 그러한 전사회적인 움직임은, 다시 말해 일련의 반 모더니즘적 '해체'와 '탈-'사상들은 현대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모더니즘적 전제들에 대한 세밀한 재해석에 불을 붙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미술 제도의 변모와 그것에 대해 이루어진 비판의 궤적을 더듬으며 작지만 새로운 실험을 제안해 보려 한다. 그 새로운 실험은 기본적으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미술 제도의 여러 부조리에 대한 비판 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실험은 지난 수십 년 간 이루어진 다양한 실험들의 성과와 시행착오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현시대의 문화적, 인식론적 상황에 걸맞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전시는 앞서 이야기한 다다로부터 비롯된 무의식의 흐름에 주목한 전시 유형을, 사진이라는 기계적, 과학적 재현 패러다임 내의 다양한 속성들과 비견시키는 데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 '디지탈'이라는 단어로 요약되는 현대 문화의 속성은 우선 이질적인 요소들의 재조합과 경계 소멸로 특징지워진다. 신바람 이박사의 예에서 보이듯, 하위 문화/고급 문화, 중심/주변의 경계는 새로운 기술적, 공간적 매체, 즉 사이버 공간의 등장으로 인해 재빨리 소멸되어버린다. 그것은 들뢰즈가 표현한 대로 상이한 계열간을 쉽사리 오가는 새로운 주체 혹은 사물, 즉, 유목민(nomad)으로서의 주체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현대 문화 속의 재현들은 재배치된 수평적 계열 속에서 집중이 아닌 분산의 운동을 지향한다. 이는 힘에 대한 새로운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 힘이란 자본의 확산, 욕망의 분출과 같이 예측불가능하고 편재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나는 지하적 흐름, 미시적 흐름을 야기하는 매우 미세한 힘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산의 운동은 새로운 문화적 생산의 견인력이 된다. 인터넷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산만한 잡담과 잡음, 심지어 편파적이거나 이기적인 발설행위들은 거세를 통해 옆으로 분산 누출되는 욕망과 같은 것이다. 비록 이러한 분산은 중심을 교란하고 개체의 안정성을 위협하나, 그것이야말로 집중에 의한 위계 서열화, 권력화, 이데올로기화를 막는 장치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빠른 진화를 이루어내는 유성생식의 유전자 교환에 비유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 우리의 사진 전시에서 실험하고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분산된 힘들이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 말하자면 상이한 작업 소재와 모티브들이 격자(grid)가 아닌 매질(matrix)적 나열 형태 속에서 보여줄 수 있을 재조합과 충돌의 힘이자, 문맥속에서 항상 새로이 생성되는 의미이다. 그것은 미술관 제도와 사진, 인사동과 낙원상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진행중인 공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생산적 무의미의 실험인 것이다. ■ 이홍관
Vol.20010109a | B급04-14인의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