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넘어, 진실을 넘어

故 임응식 선생 온라인 추모전   2001_0119 ▶ ON LINE

임응식_구직_흑백인화_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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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아트갤러리(폐관)

임응식(1912-2001) ● 사진계의 거목 임응식 선생께서 2001년 1월 18일 오후 2시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한국사진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셨던 그분, 그에게 있어 사진은 삶의 존재이유 바로 그 자체였다. ● 촬영이란 오로지 세상에 대한 인식, 삶에 대한 이해방식으로 생각하셨던 분이시고, 그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사진가의 의무이자 덕목으로 생각하셨던 분이시다. 그분의 사진에 대한 완고한 인식과 굽힐 줄 모르는 고집은 종종 시대적 조류에 둔감하고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 강직함이 있음으로서 오늘의 한국사진이 있을 수 있었다. ● 그분의 사진적 발자취, 그분이 남기시고 간 사진의 흔적들은 우리사진의 역사이자 우리의 근·현대사가 되었다. 예술 이전에 처절했던 우리 삶의 모습이었고, 사진 이전에 눈물겨운 우리 삶의 실존이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청년 임응식의 믿음"이었고, 사진작가 "임응식의 사진적 좌표"였다. ● 우리는 대표작 "求職"(1953)에서 그가 보았던 이 땅의 전쟁의 상처와 지난했던 삶의 역경을 본다. 그의 시각은 현실에 대한 "진실한 기록", 그것을 떠나 말할 수 없다. ● 위대한 영상시인이었던 그분, 그분이 또 한번 위대한 것은 기록을 넘어, 진실을 넘어 사진을 미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카메라는 스케치북이고 직관과 마음의 움직임에 따르는 도구"라고 했던 그분은 사진을 예술의 영역으로 인도했다. 그분은 늘 사진가도 화가와 시인의 눈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카르티에 브레송과 으젠느 앗제를 "카메라의 시인" 혹은 "사진의 은유시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 사진의 영상의 고결함 때문이다. 임응식 선생을 위대한 영상시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영상의 고결함 때문이다. 반세기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명동을 사진에 담은 그분, 브레송과 앗제가 옛 파리를 그리워했던 것처럼 시대의 노스탈쟈, 그 사라져 가는 옛 명동의 모습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려 했다. ● 이제 그분은 떠나가셨다.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러나 그분이 남기시고 간 사진은 영원히 우리 곁에 있다. 바로 우리 앞에 생생하게. 우리 모두 그분을 위한 애도의 시간을 갖자. ■ 진동선

Vol.20010119a | 故 임응식 선생 온라인 추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