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DATIONS_PERSPECTIVES

기초/전망展 ③   1부 / 2001_0112 ▶︎ 2001_0228 2부 / 2001_0312 ▶︎ 2001_0430

노원희_구직求職_종에 꼴라쥬_140×80cm_2000

책임기획_서울미술관 살리기 대책위원회

서울미술관(폐관)

김대통령님! 서울미술관을 살려 주세요. ● 북한산 자락끝 구기동에 자리한 서울미술관(관장 임세택)이 폐관 위기라는 삭풍 앞의 등불이 되었다. IMF한파를 넘지 못하고, 극심한 경영난 끝에 98년 이후 전시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고, 미술인들의 손때가 묻은 건물과 부지는 조급한 채권단에 넘어가 수차례 경매에 부쳐지는 슬픔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양식 있는 국내외 문화인들이 관계 요로에 눈물을 담은 탄원서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한 '서울 미술관 살리기 운동'으로 일단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었다. 더불어 미술관측은 자구 노력으로 11월 19일 재개관 전시를 열고 정상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12월 초 경매가 눈앞에 몰려와 미술관 존립은 여전히 풍전등화 (風前燈火)다. ● 아시는가? 서울미술관은 바로 우리 나라 사설미술관 등록 제1호다. 81년 군부 독재의 무지몽매한 힘이 강제되던 문화의 사막 시대에 사설미술관의 효시로 출발했다. 서울미술관은 개관과 함께 유럽 미술을 적극 소개, 동시대 서구 미술과의 격차를 좁히는 일에 기여했다. 당시 모더니즘 일변도로 치닫던 한국미술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구상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하는 등 새로운 미술 흐름의 물꼬 트기에도 앞장섰다. 일찍이 미술평론가의 책임 비평에 주목, 매년 문제 작가를 선정해 작품전을 기획 전시하기도 했다. 20여 년 간의 문화적 공로로 서울미술관은 작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받은 바도 있다. ● 정부든 개인이든 간에 부실 경영의 책임은 누구도 면할 수 없다. 그것이 도덕적 해이에 의한 방만한 경영일 경우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생각해 보라. 물질만능으로 왜곡된 우리의 현실에서 사설미술관은 한 개인의 자기 희생을 넘어서는 숭고한 '문화사업'임을 분명히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미술관의 부채는 문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빚이기도 하다. ● 특히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할 사실 하나, 서울미술관의 경우 부실의 골이 깊어진 결정적 원인이 주한 프랑스 대사관과 진행된 문화원 부지 매각 협상에 있었고, 이것이 무려 1년 반 동안 지연되다가 결렬됐다는 점이다. 그 사이 겁 없는 이자는 눈사태처럼 불어났고, 공시 가격은 나락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올해 2월 양식 있는 프랑스 지식인·문화예술인·정치인등 1백여 명은 자국의 문화 정책을 비판, 서울미술관 살리기 서명 운동을 적극 전개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움직임은 현재 서울미술관을 『아시아-유럽 문화 센터』로 전환시키는 프로젝트로 발전되었다. 양국에 각각 『아시아-유럽 문화 센터』를 설립, 그 동안 꾸준히 이룩한 서울미술관과 유럽 예술계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1세기 세계 문화 예술 교류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는 아름다운 취지다. ● 그러려면 당연하게도 서울미술관을 문화관광부 또는 서울시가 매입, 국공립 문화 시설로 전환하거나 기금을 출연하여 공공 재단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이 프로젝트에 적극 지지 협력한다는 분명한 약속을 내놓고 있다. 남은 문제는 두말 할 것도 없이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 표명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상대하는 분명한 협상 파트너도 없을 뿐더러 계획안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조차 없는 상태다. 단지 실무자 차원에서 부채 문제를 이른바 "법대로 처리한다."는 한심한 대응만 세우고 있을 뿐이다. 말로만 듣던 복지부동의 자세 그대로다. 문화계의 진정한 보호자에 정부는 없고 오로지 일반 시민들만 있단 말이다. 미술관과 화랑이 잇달아 문을 닫거나,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업종을 바꾸는 사태를 지켜보아야 하는 심정은 실로 착찹하다. 그 동안 힘겹게 쌓아 온 미술 문화 인프라가 덧없이 무너지면, 자연계 먹이 사슬 붕괴같이 미술계 전반의 생태계 또한 위협받게 될 것이다. 작가들의 창작 활동은 위축되고, 미술 잡지 또한 생생한 제 목소리를 잃게 된다. 미술이 활력을 잃고, 문화는 말라비틀어질 것이다. ● 서울미술관은 시민의 휴식처인 북한산 등산길 초입에 위치, 유동 인구도 많고 평창동 문화 벨트와도 가까워 여러 모로 미술관으로서의 적합한 입지 조건을 두루 갖춘 장소다. 74년에 건립된 미술관 건물은 국내에서는 매우 희귀한 유럽 고전 건축 양식이다. '근대 문화재 참고 자료'로 지정될 수 있는 충분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들 어렵고 경제도 뒤틀려 있지만 21세기 새천년은 틀림없이 '문화의 시대'다. 인류의 진정한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미술관이 먹고 마시는 불고기 집이나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것보다는 문화가 살아 숨쉬는 풍요한 정신의 공간으로 존속되길 간절히 바란다.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문화 외교 차원에서 서울미술관에 관심을 보내는 만큼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따뜻한 배려와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해 본다. 우리의 문화 대통령 김대중님! 제발 서울미술관을 살려 주세요 ■ 김복기

표류하는 '서울미술관 살리기'● 자크 랑, 알랭 주프로와, 자크 데리다 등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과 예술인, 국내 문화계의 적극적인 '서울미술관 살리기'운동에 힘입어 지난 10월 재개관전까지 열었던 서울미술관이 여전히 표류중이다. 재개관은 했지만 아직도 정상화방안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것. 재불화가이기도 한 관장부부 임세택·강명희씨는 1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으며 6일부터는 매일 오전 프랑스대사관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이 미술관의 초대관장이었던 김윤수 영남대교수는 3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내 프랑스 정부가 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 잘 알려진대로 서울미술관은 81년 국내 최초의 사설미술관으로 개관, 80년대 민중미술과 한·불 문화교류의 산파역할을 해왔다. 90년대 들어 경영난이 심해졌고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부채가 급격히 늘면서 경매에 처해지자 이 사실을 안 프랑스 문화계의 주도로 국제적 구명운동이 벌어졌었다. ● 7일 임씨 부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현재까지의 상황을 밝혔다. 임씨부부는 "결국 상황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서울미술관부지를 프랑스 문화원 이전부지로 구입할 뜻을 비치고 매각협상을 1년반이나 끌다가 특별한 이유없이 결렬시켜 재정적 부담을 안긴 프랑스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 즉 "매각협상이 지연되는 바람에 매각가격이 폭락했고 그후 경매에 나왔을 때는 시가의 3분의 1로 떨어졌으며, 그 기간중 이자때문에 부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우리 정부도 아무 지원없이 파산할 날을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그러나 정식계약을 번복한 것이 아닌 프랑스대사관측은 "특별히 코멘트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며, 정부 또한 IMF로 위기를 맞은 미술관이 한둘이 아닌데 사설미술관을 특별 지원할 명분과 방도가 없다고 밝히고 있어 문제해결은 묘연한 상태. 현재 서울미술관은 수차례 경매가 연기 내지는 유찰된 채 공중에 떠있다. 임씨는 서울미술관 부지를 정부가 매입해 '아시아유럽문화센터'를 설립, 한·불 문화교류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안을 내놓고 있다. ■ 양성희 기자 ·문화일보 2000년 12월 11일자

서울미술관 어찌하오리까 ● 미술평론가 김윤수(영남대 교수)씨는 지난 3일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2년여에 걸쳐 매각협상을 벌였으나, 최근 폐관 위기에 놓인 서울미술관(관장 임세택)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탄원서였다. ● 김씨는 이 글에서 "20년 가까이 누구로부터의 지원금도 받지 않고 일체의 상업주의를 배제한 채 한국 ·프랑스의 한차원 높은 문화교류를 주도해 온 서울미술관이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매각 교섭이 오가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놓고 현명한 판단과 결단을 촉구했다. ● 서울 구기동 구기터널 어귀에 있는 서울미술관은 지난 1981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부부 화가 임세택·강명희씨가 세운 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현대미술을 집중 소개하고 민중미술 작가들을 비롯한 진보적 미술 흐름을 담아온 사립미술관이다. ● 재정난을 겪기 시작한 97년 말, 임 관장은 마침 '마타전'에 참석한 장 폴 레오 주한 프랑스대사와 구두로 서울미술관 자리를 프랑스문화원 터 후보로 내놓기로 합의해 다음해 3월부터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두 차례에 걸친 구매협상 사절단 방문 등 곧 살듯 살듯 하던 주한 프랑스 대사관쪽이 1년 6개월을 끌며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구제금융사태 등을 겪으며 빚이 늘어나게 된 서울미술관은 채권단에 의해 경매에 부쳐졌고, 계속 유찰되면서 65억원이던 공시지가가 20억원대로 떨어졌다. ● 임 관장은 "프랑스 정부가 파리 센강변 중심지 땅 2만평을 서울미술관과 맞바꿔 '아시아·유럽센터'로 꾸미자고 제안했지만 우리가 지원을 요청한 문화부나 레오 대사 모두 대답을 회피했다. 미술계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누군가 싼 값에 서울미술관을 넘겨받으려고 작전을 편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6일 열릴 예정이던 마지막 경매를 일단 한 달 연기한 임씨 부부는 7일부터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항의방문하고 이번 사태에 대한 프랑스쪽 해명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정재숙 기자·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11일자

반론보도문 「서울미술관 보도관련」 ● 『한겨레』 지난 11일자 11면 서울미술관 보도의 부정확함과 관련해 프랑스대사관이나 프랑스 정부는 사립미술관인 서울미술관의 어려운 상황에 대하여 전혀 책임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다. ● 프랑스 정부는 주한 프랑스대사관문화과와 현 문화원을 좀더 넓은 장소로 옮기기로 하고 그 후보로 여러 건물을 검토하였고, 이미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던 서울미술관의 임세택 관장은 1999년 2월 17일자 서신으로 자신의 부지를 매매할 의사를 대사관에 통보해왔다. 장 폴레오 주한 프랑스대사는 이를 본국에 알렸고 그해 4월 9일 프랑스 외무부장관이 임 관장에게 다른 후보지들과 함께 고려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각 후보지의 비용, 면적, 위치, 기능적인 면 등을 판단하고 현장검토를 하기 위해 프랑스 외무부 차관이 1999년 7월 방한을 하였을 때, 서울미술관도 방문하였다. 차관은 본국에 가서 임 관장에게 8월 18일자 서신으로 서울미술관이 여러면을 고려하여 볼 때 주한 프랑스대사관 문화원후보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통보하였고, 임 관장은 8월 31일자로 프랑스 외무부장관에게 청원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외무부장관은 9월 27일자 서신을 통해 서울미술관을 사지 않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결정을 재확인하였다. 그후 대사관은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있는 우리빌딩 18층과 13층 일부를 구입하였고 곧 이전 개관할 계획이다. ● 그러므로 서울미술관의 관장과 그 친구들이 마치 서울미술관의 재정적인 어려움이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프랑스 정부의 잘못에 기인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며 서울미술관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오로지 그 소유자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며 프랑스 정부 및 주한 프랑스대사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 주한 프랑스대사관 ·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22일자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22일자 반론보도문에 관하여 ● 한겨레 지난 12월 22일자 12면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반론보도문 관련 서울미술관의 어려움에 관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책임회피주장에 사실을 밝힌다. ● 서울미술관은 1981년 한국 최초 사립현대미술관으로 설립하여 국가나 여타 기관의 지원없이 현대미술 및 문화전반에 관한 전시회, 토론회,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로 특히 한·불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순전히 사재로, 만연한 문화적 상업주의를 배격하며 운영되어왔다. 1998년 초 서울미술관은 현 부지를 매각, 이 대금으로 미술관 소유의 다른부지에 이전, 장차 아시아 유럽문화센타로의 설립이라는 큰 목표를 세워 실행키로 결정했다. 마침 새 문화원 부지를 찾고 있던 주한프랑스대사관과의 매매 협상이 시작되었다. ● 1998년 3월 17일: 프랑스 대사관에 후보지 접수(1. 공문 별첨) 두 개의 후보지 집중검토 서울미술관(750평 제시가격 공시지가 기준 65억부지, 10억건물) 가나화랑(인사동부지 약200평, 85억) ● 1998년 8월: 후보지 가나화랑 포기로 유일한 후보지인 서울미술관 결정을 유보하며 레오대사는 다른 후보지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이후 계속지연시킴. ● 1998년 12월 26일: 전 문화부장관 당시 국회 외무위원장 쟈크 랑이 베드린 외무부장관에게 서울미술관이 새 문화원 후보지로 최고 적격지임을 추천(2.공문별첨) ● 1999년 2월 16일: 서울미술관장이 베드린 외무부장관에게 그간 진행되고 있는 매매협상의 부당한 절차 지연에 대한 문의와 더불어 새로운 매각조건 제시(65억으로 인하하며 이중 10%를 한·불 문화기금으로 제공한다는 내용).(3공문 별첨) ● 1999년 3월 31일 : 외무부 총 감독관 꽁뜨네씨 제1차 실사팀으로 서울미술관 방문(4. 공문 별첨) ● 1999년 4월 9일 : 베드린 외무부장관이 서울미술관장에게 회답(5.공문 별첨); 서울미술관이 새로 제시한 매각조건에 대한 감사와 서울미술관의 한·불 문화교류에 대한 중요성 표명, 곧 2차 실사팀 서울에 파견통보. ● 1999년 7월 10일 : 외무부 차관 까따씨 대표로 제2차 실사팀 서울미술관 방문, 당시 다른 후보지인 매경빌딩 이미 매각으로 서울미술관만이 또 다시 유일 후보지였음. ● 1999년 8월 18일 : 예산초과 이유로 까따 차관 서울미술관장에게 부적합 통보(6.공문 별첨) ● 1999년 8월 31일 : 서울미술관장이 외무부장관, 차관에게 부당한 결정에 대한 항의편지 발송 (제시가격 82억으로 둔갑, 부당한 매매 협상 절차, 레오대사의 지연책동 등)(7.공문 별첨) ● 1999년 12월: 서둘러 남대문 근처 오피스 빌딩 18층과 13층 일부 구입.(70억상당) ● 이상 1년 6개월에 걸친 불투명한 매매협상으로 인해 재정난이 극히 심해져 폐관 위기에 놓인 서울미술관의 사정을 안 프랑스에서는 2000년 2월 데리다, 레지스 드브레, 필립 솔레르스 등 세계적 지식인, 마따, 술라쥬, 자오우끼 등 예술인, 여 야의 전문화부 장관 쟈크 랑, 자크 뚜봉등 정치인, 100여명과 2000년 3월 한국의 예술인, 지식인 등 100여명이 서울미술관 살리기 서명운동을 전개(8.청원서내용 별첨)하여 드디어 2000년 5월 프랑스 쟈크 시락 대통령은 불미스러웠던 새문화원 구입 문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처리결정키로함. ● 2000년 5월 25일: 따스까 문화부장관이 서울미술관장에게 문화예술훈장 수여통보(9. 공문별첨) ● 2000년 5월 29일: 베드린 외무부장관이 서울미술관장에게 ASEM회의 프랑스대통령 방한 기념 한,불 전시회의 성공기원 공문발송(10.공문 별첨) ● 2000년 7월 4일: 프랑스 대통령 지시로 서울미술관에 대한 대안책 제시(외무부대외협력국장 니꿀로 공문(11. 공문 별첨); 서울미술관 어려움에 대한 염려와 그간의 문화적 업적, 한·불 문화교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서울미술관이 계획하는 아시아 유럽문화센타 재단 설립에 개인 기업체를 통해 지원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내용) 같은 날짜 레오 주한프랑스대사 ASEM회의 기념전 공식 후원과 대사관 예산 50,000프랑 지원 통보.(12.공문 별첨) (현재까지 지급되지 않았음) ● 2000년 7월 19일: 프랑스대통령관저에서 빌뺑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울미술관장 면담. ● 2000년 8월 3일: 쟈크 뚜봉 현 대통령 고문, 전 문화, 법무부장관이 제안한 파리 13구소재 아시아 유럽 문화센타예정 제공 부지를, 조사차 방불 한 강신성일 국회의원과 서울미술관장 현지답사. ● 2000년 9월 18일: 쟈크 랑 현 교육부장관이 서울미술관문제 미해결에 대한 문의와 아시아 유럽문화센타 예산규모, ASEM회의 필요예산 협의. ● 이상의 프랑스 대통령과 정부의 서울미술관을 살리기위한 다각적 노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님과 한국정부에도 이해와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는 매매협상이 현지에서 추진되었던 1998년 3월에서 1999년 4월까지의 기간을 감추며 서울미술관이 직접 외무장관에게 알려 추진된 이후의 6개월간의 협상만 거론하는 이유가, 처음부터 문화원 후보지였던 가나화랑이 서울미술관 살리기 노력이라는 명분으로 10번에 걸쳐 경매가 연기되며 경매가가 폭락된 서울미술관을 인수하기 위해, 문광부 일부 공무원과 접촉 해왔던 사실(13. 공문 별첨)과 유관한 것인지 의혹을 제기하며, 이미 2명의 새 주한프랑스문화원 구입 관련 책임자인 니꿀로 대외협력국장, 따이엉디에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참사관이 인책 해임된 사실로도 과연 대사관의 책임 회피가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새 주한프랑스문화원 설립 문제를, 문화적 중요성을 외면한 채 오직 외국의 땅을 사는 문제로 처리하는식의 레오대사의 인식과, 대사 개인의 잘못을 은폐하려고 일관하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의 행정적 과오로 인하여,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세계 문화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고 한·불 문화교류의 중심역할을 해왔던, 한국이 어렵게 일구어 온 최초의 사립현대미술관을 사라지게 한다면 이는 모두에게 비극이다. ■ 서울미술관

Vol.20010122a | 기초/전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