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단편애니메이션의 이념과 방법

2001 애니마포럼 애니메이션 영화제 세미나 2   2001_0129_월요일_07: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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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_전승일 토론자_나기용_이혜원_유진희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서울 중구 예장동 8-145번지 Tel. 02_755_9510 ani.seoul.kr

개인적인 이야기 ● 소위 '80년대 민중미술운동'에 한동안 몸담고 있다가 참을 수 없는 욕망을 해결하고자 독립애니메이션을 시작했던 90년대 초, 그때 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지금은 대학에서 관련 학과의 베이스가 되어버린 포토샵, 페인터, 프리미어 등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접하고 나는 정말이지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한마디로 "이거 큰일났군! 빨리 안하면 진짜로 큰일나겠군."이었다. 디지털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것 같았다. ● 여기에 프레드릭 백, 유리 노르슈타인 등과 같은 아트애니메이션 거장들의 작품은 나로 하여금 그림을 1초 이하의 단위와 그것의 연속성 속에서 사고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작품을 포함한 상당수의 외국 단편애니메이션들은 내가 알고 있던 그렇고 그런 상업애니메이션과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어렵게 8미리 비디오 카메라를 장만해서 손잡이가 세 번이나 부러져 나갈 정도로 아무튼 보이는 건 가리지 않고 찍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서는 그렇게 찍어서 수만 프레임의 이미지를 얻는 게 스틸 카메라를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는 미술에서 영상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 대개 그렇듯이 나는 독립애니메이션을 매우 개인적인 '예술운동'으로 시작했는데, 이 말은 애니메이션이 나의 예술방법 중 유일한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개인적인 실험이 어느정도 끝나고 나서는 이를 조직과 이념에 기반한 '문화운동'으로 하고자 했다. 그래서 독립정신, 작가주의, 예술지향이라는 개념을 제안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사용했다. ● 당시 주로 채택한 대중화 방법은 대학이나 사회단체, 심지어 80년대처럼 집회장에서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도 '예술은 그 자체의 힘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생각한다. 즉 그때의 방법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다. ● 아무튼 95년 전후 문화에 대한 국가정책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 광주비엔날레, 부산국제영화제 등은 국가 문화정책이 '규제'에서 '진흥' 쪽으로 옮겨간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운동(혹은 예술운동)의 입장에서는 문화(예술)와 정치의 통합을 추구하지만, 국가 문화정책은 문화(예술)의 산업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독립애니메이션은 일정하게 흔들렸다고 본다. ●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국가는 디지털 정보통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힘주어 떠들고 있다. 요즘 분위기로 볼 때 인터넷 안하면 바보나 역적쯤으로 몰리기 쉽상이다. 인터넷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요소를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디어이기 때문에 누가, 어떤 생각을 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 그렇다면 인터넷에 대한 독립애니메이션의 대응은 어떠한가? 웹에 기반한 영상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독립애니메이션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뭔가가 필요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아직도 '무늬만 방송국'인 미메시스티비를 작년 5월에 만들었고, 10월부터는 자체 커뮤니티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한 국가 문화정책을 활용하여 '영상제'를 준비하고 있다. ● 단편애니인가? 독립애니인가? 좀 길지만 인용해보자. "독립영화의 독립이란 흔히 말하듯 검열을 거부하고 자본을 적게 쓰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독립은 '그 무엇을 위한' 일일 때 그 의미가 완성된다. 화려하고 기름진 화면보다는 치열하고 정직한 장면들로 새로운 영상언어를 만들기 위해, 우린 상투적 영화공식에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한 사람의 인권, 소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린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우리는 독립이 삶과 영화의 진실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믿는다. ....작은 진실을 위해 작은 카메라를 정조준 할 때 영화는 비로소 독립하는 것이다." 98. 9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선언문 중 ● "독립영화는 내용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인 영화만이 아니고, 형식적인 차원에서 단편영화만이 아니다. 그래서 장편과 단편은 독립영화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다만 그것은 창작주체의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하고, 독립영화를 축소 또는 왜곡하는 오류로 연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독립영화는 어떤 제한에서도 자유로운 창작자의 목소리가 살아있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시도와 실험 자체가 완성도를 갖는 것이어야 하고.... 그래서 독립영화들은 한국영화가 구태와 매너리즘,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흐름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피를 수혈할 수 있는 '항체'의 구실을 해야 한다." 00. 12 영화진흥위원회 '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설립과 운영에 관한 보고서' 중 ● 몇해전 Y회사와 다수의 독립애니메이터들이 '단편애니의 대중화'라는 공감대를 갖고 사업을 벌인 적이 있다. 결과는 2년도 안되서 망가졌고, 애니마포럼 준비위는 그 끝무렵에서 시작되었다. 애니마포럼 준비위는 2번의 영화제에서 '단편애니메이션'를 모토로 삼았는데 이것은 독립애니메이션의 발전 혹은 길찾기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왜 애니마포럼 준비위는 전면에 '독립애니메이션'을 내걸지 않는걸까? ●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독립애니메이션의 개념과 위상을 재정립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글 제목에서 '독립단편애니메이션'이라고 한 이유는 한국에서 대부분의 독립애니메이션이 단편이라는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미국의 독립영화와 한국의 독립영화가 같은 개념을 갖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독립애니메이션의 개념, 위상, 역할, 의미 따위를 생각할 때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한국 사회 혹은 문화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그토록 특수하지 않았다면 독립애니메이션이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 애니카페 사이트나 애니메이션노동조합 홈페이지 게시판을 보면 '예술할려면 딴데가서 해라!' 혹은 '애니메이션 절대 하지마라!'라는 얘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에 관한한 한국에서는 산업화전략 만이 관철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은 누군가에게 돈이 되니까 해온 것이고, 아마도 돈이 되지 않으면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투자나 지원의 목적은 분명하고 단기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고 있다. ●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이 주류애니메이션이고, 독립애니메이션은 소수문화이다. ● "문화란 문화구성체들의 집합적 효과로서 존재한다. 소수문화들은 그 집합적 문화 효과 속에서 다양하게 생성하고 변이되는 무수한 것들에 대해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존재론적 구성으로서 존재한다. ....각자 취향과 욕망에 따라 자기조직화하는 소수문화들이야말로 삶의 생성이자 창발성을 토대로 한다. ....소수문화란 중심과 주변 가리지 않고, 그 엄격한 경계를 허물며 가로지르고 탈주하는 것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허물며 동시에 허물어야 할 것은 지배문화, 권력화된 문화이다. 다시 말해 지배화 과정과 권력화 과정으로 집계되는 모든 문화들을 해체시키려는 게릴라적 탈주가 바로 소수문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수문화는 다양한 변이들을 추구하면서도 기존의 지배-권력의 힘들과 장치들을 허물어내거나 상대화시키는 탈주이자 저항의 기호체제를 수립한다. ....문제는 주류냐 비주류냐가 아니라, 지배문화 체제로 포획되느냐 아니면 소수문화들로 끊임없이 탈주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길섶의 글 '소수문화 - 지배와 권력에서 탈주하는 생성의 힘' 중 ● 단편애니메이션은 말 그래도 상영길이가 짧은 애니메이션에 다름 아니다. 광고애니메이션이나 방송용 스팟도 단편애니의 한 종류이다. 말장난 같지만.... 단편애니는 독립애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독립애니는 단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단편애니의 가치는 짧음의 연출에서 나오고, 독립애니의 미덕은 지배적인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에서 시작된다. ● 상업적인 요구 혹은 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한다면.... 할 수 없는 부분, 피해가야 하는 것,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이 대체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힌다. 애니메이션으로 돈버는 일이 그리 쉽지 않으므로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한다. 그게 자신의 임무이고, 그 길에서 끝을 봐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충 만든 상업애니메이션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이다. ● 독립애니메이션은 상업적인 애니메이션에서는 하기 힘들거나, 할 수 없거나, 피해가야 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독립애니는 '각자 취향과 욕망에' 따르기 때문에 다양하고, 진지하며, 상대적이고, 작지만 생동하는 것이다. 독립애니메이터가 스스로 소수문화의 일원임을 상기한다면 무엇에 집중하고, 어떻게 활동하고,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가 조금은 분명해질 것이다. ● 얼마전인가 개그맨 김국진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일본문화를 다루었는데 나는 그걸보면서 무척 화가 났다. 일본의 한 평범한 지하철역 주변에 놓인 수십대의 자전거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단 한 대도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 얼마전 나는 건물 앞에 세워둔 내 자전거의 별 것도 아닌 부속품이 뜯겨져 나간 경험이 있다. 이어 일본의 한 공원을 보여주었는데 사람들이 그냥 여기저기 가방을 놓고 딴데 가서 놀고 있었고, 가방은 아무도 훔쳐가지 않았다. 또.... 오늘은 외국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아.... 한국이란 곳은 도대체 얼마나 어떤 나라인가! ● 나는 개인적으로 예술운동이 문화운동이 되려면 특정한 계급 혹은 계층운동, 요즘 용어로는 시민운동이나 마이너집단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교육한다면 이런 범주까지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예술과 문화가 되는 방법과 개념을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예술이론이 우리 주위에 과연 얼마나 있는가? 이런 일들이 바로 독립애니가 해야할 일이 아니던가! ● 애니메이션 액티비즘을 제안하며 ● 행동주의(Activism)는 원래 1차대전 후 30년대 프랑스 특정 문학운동을 지칭하는데, 그후로는 예술과 사회의 소통 및 통합을 강조하는 예술적 입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술에서는 흔히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를 예로 든다. ● "요셉 보이스는 예술의 역할이 단지 예술이라는 제한된 영역 속에서 물질화된 어떤 대상을 생산해내는 일이 아니고 거대한 사회구조의 짜임과 흐름 속에서 보다 인간적인 삶을 이루기 위한 각 구성원들간의 상호 소통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보이스 예술 사상의 중심은 자유 평등 박애에 입각한 유머니즘의 실현에 있었으며, 실제로 그는 자신의 예술적 생애를 통해 이러한 개념을 온몸으로 실천하려 했던 이상적 행동주의자였다." 요셉 보이스展 서문 중 - 국제화랑, 96. 10 ● 액티비즘에 대한 독립영화의 국내 사례로는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아시아 페미니스트 비디오 액티비즘'이 있고, 독립영화진영에서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뉴스제작단과 푸른영상을 떠올릴 수 있겠고, 작년 일본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있었던 'Video Activism -Report from Korea' 심포지움과 '만들다, 보이자, 바꾸자!'라는 제목으로 열린 한일 비디오 액티비즘 대토론회 등이 있다. ● 애니메이션 액티비즘을 제안하는 이유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이 어쩌면 단편애니라는 용어로 지나치게 예술 쪽으로 혹은 기술적 완성 쪽으로 경도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 미메시스 커뮤니티 토론방에서 요즘 '애니메이션이 예술인가'라는 주제로 의견을 내고 있는데, 한 멤버는 '예술은 경지의 문제이다'라고 적었다. 그런거 같다. 따라서 단편애니이건 독립애니이건 '난 예술이야'라고 먼저 선언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지'에 도달하려면 작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또 얼마나 많은 지점들을 거쳐야 하는가 말이다. 기술적 문제도 우리는 상대주의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어디 좋은 기술이 있고, 나쁜 기술이 있으랴. 다 장악하기 나름이고, 사용하기 나름아니던가! 독립애니는 좀더 길거리에서 마구 뛰며 놀 필요가 있다. ● 사실 내가 프레드릭 백이나 유리 노르슈타인 그리고 얀 슈반크마이에르 같은 애니메이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매우 독창적인 애니메이션 예술세계를 개척했을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그들이 대단한 행동주의 예술가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하야오나 오시히 마모루 또한 만만치 않은 행동주의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앞서 말한 몇몇 애니메이션 사이트에 가보면 요즘 어디서 추진하고 있는 애니메이터 자격증 문제로 온통 난리다. 무슨 사건이라도 곧 벌어질 것 같다. 그런데 독립애니메이션 쪽은 너무나 조용하다. 다들 이미 애니메이션 '작가'이기 때문이란 말인가! ● 얼마전 눈이 펑펑 내릴 때도 명동성당 앞에서 진행되었던 인권운동가들의 장엄한 단식대열에 독립애니메이터들이 손에 손잡고 방문했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제안하는 애니메이션 액티비즘은 정치이슈만을 말하는 게 결코 아니다. 안티서태지 사이트에 이렇게 써있더군. '서태지 말고도 피끓는 젊음이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라고. 그렇지 않은가? 이 천박하고 우스운 한국에서 독립애니는 할 일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변화된 문화환경으로 극장 같은데서도 독립애니메이션을 어렵지 않게 상영할 수 있게 되었지만, 어차피 애니메이션의 영원한 구매자인 어린아이들은 별로 안 올테니까 그 애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하나 힘 모아 만들어 동네 놀이터 순회 상영전 같은 거 하면 어떨까. 왜.... 나오잖아? 안재훈 감독의 『순수한 기쁨』에.... ● 아니면 최금수의 '이미지 속닥속닥' 처럼 메일매거진을 애니 형식으로 하나 만들어서 일주일에 몇 번씩 수 천명에게 날려 보자구. 거기에 끝내주는 플래쉬 애니 담아서 말이야. 제목을 미친 척하고 '백양 웹애니 버전'이라고 붙이면 수 천명이 금방 수 만명이 될텐데. ● 해마다 하나씩 했듯이 아무튼 올해는 독립애니메이션의 액티비즘을 제안해본다. 자! 움직이자구...... ■ 전승일

Vol.20010126a | 독립단편에니메이션의 이념과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