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Road

이정진展 / LEEJUNGJIN / 李貞眞 / photography   2001_0227 ▶︎ 2001_0324

이정진_On Road 00-08_한지에 감광인화_55×79inch_2000

국제갤러리 서울 종로구 소격동 59-1번지 Tel. 02_735_8449 www.kukje.org

On Road: 사진의 프레임 ●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대상을 편집하고 규정하는 틀,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의 프레임은 이정진의 사진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편집된 사진이나 우연히 찍혀진 스냅사진 모두 카메라 프레임에 의해 의미 부여가 되고 이미지 기호로서 작용한다. 지난 10여년 동안 지속된 이정진의 활발한 사진작업에 있어서도 그는 카메라 프레임을 다양하게 적용하며 프레임을 독특하게 사진 이미지 생산에 개입시켜 작업하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 연작인 사진을 논하는데 있어서도 작가가 대상을 프레임 하는 방식이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라고 본다. ● 이정진은 1997년 「미국 사막」 연작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카메라 프레임에 대한 제어와 통제를 포기하고자 하였다고 기록한다. "작가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구도 잡기를 포기 함으로써 그 작가 의식 이전에 있는 대상 자체의 '자연스러움'과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가의 특전을 포기하면서 수 년간 작업하였던 사막 연작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의지의 결과는 현장의 생생함이 더 거칠게 표현된 마지막 사막 사진들이였다. ● 그 이후에 발표한 「바다」 연작은 이전 작업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였으며 이정진은 이 작업을 통해 그의 가장 추상적이면서 회화적인 사진을 제작하였다. 바다를 소제로 선택한 것도 작가의 새로운 사진 이미지 구현에 적합한 것이였다. 바다 수면의 잔잔한 물결, 바다와 모래가 만나는 해안선 등을 사진 전면에 펼쳐보이는 「바다」 사진들은 프레임의 장치가 담아낼 수 없는 광대한 스케일의 자연인 바다를 소제로 하여 작가는 그 풍경의 단편만을 사진에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진 구도 잡기'인 프레임의 부재의 결과는 추상 모노크롬 회화와도 흡사한 사진이였다.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풍경이 아닌 바다 그 자체를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매우 일반적인 물의 성질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고, 바다라는 풍경을 물이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프레임하였다. 이정진의 「바다」 연작은 도큐멘트로서 사진의 기능을 부정하는 반면 사진의 대상은 추상 이미지로서, 초현실적인 대상으로서 제시되었다. ● 가장 최근 작업인 연작은 이정진의 예전 작업과는 현저히 다르면서도 유사한 접근 방식을 갖고 있다. 90년대 초 제작한 미국 사막 연작과 비교해 볼 때 역시 하나의 기행 사진이다. 사막 사진처럼 이정진은 작업을 하면서도 장엄하고도 포괄적인 자연 풍경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흥미로운 요소나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기이한 형상들에 집착하고 있다. ● 국내를 이곳 저곳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과 몇 몇은 해외에서 찍었을 법한 사진들이 다채로운 이미지 레파토리를 형성한다. 황량한 들판, 기이한 건물의 외장, 시골 마을 어느 한적한 길 모퉁이와 적막한 작은 해안가 마을, 나무와 농촌의 버려진 창고들의 서정적인 이미지들. 대부분 그의 풍경들은 매우 한국적이다. 사진에서 보여주는 수평선이나 지형이 그렇고, 소나무나 건축물의 양식이 전통적이면서 독톡하게 지방색이 묻어난다. 작가를 사로잡은 이 풍경들은 프레임에 의해 고정되었다. 모든 사물과 정물이 정지되어 있고 완전한 적막이 드리워지고 생명의 흔적을 가리운 듯한 장면들에서는 시간 조차도 멈춰 선 것 같다. ● 연작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것은 사진의 형식이다. 모든 사진들은 두터운 짙은 검정색 띠가 사진 테두리를 에워싸고 있고 이는 개념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 테두리는 사진을 하나의 회화적인 그림으로서 편집을 하고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시각적으로 이 테두리는 영화 필름을 확대하여 영화 장면의 스틸을 보는 듯 한 형식이다. 테두리는 하나의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면서 사진적인 기호이다. 현존하는 시간과 공간이 프레임에 의해 사진 화면에 고정되고 그 현장성은 프레임의 특수성에 의해 회화적인 도큐멘트가 아닌 회화적인 영역으로 전이된다. 그 프레임 안에 담겨진 장면에서는 시간적인 공간적인 의미가 불투명해진다. 사진들은 빛 바랜 과거 시간의 서정적인 이미지들이다. 개념적이기 보다는 시적이다. 작가가 사막과 바다 연작에서 편집의 기능을 부인하였던 것과는 역으로 에서는 사진의 프레임 기능을 두드러지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아름답게 편집된 그림들이라고, 그의 여정 속에서 담아온 개별적인 순간들의 재현이라는 것을 프레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 이정진의 사진은 회화를 닮았다. 기술적으로 그의 사진은 기계적인 복제품이 아니고 작가가 집적 붓으로 리퀴드 라이트라는 감광유제를 한지에 발라 코팅을 하고 그 위에 인화를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그래서 프린트 마다 그 화면에 담겨진 붓자국들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고 동일한 두 장의 프린트가 제작된다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한지의 습성에 의해 사진 이미지는 스며드는 듯 화면에서 배어나오는 듯하며 세부적인 디테일이 생략되면서 명암의 대비도 현저히 부드러워진다. 이러한 제작 방식이나 한지 등 특수 종이의 사용과 회화적인 화면 연출은 특히 19세기 말 회화주의 (Pictorialist) 사진 작가들에 의해 한 때 성행하였다. 초기 사진 작가들도 그러했듯이 이정진도 사진의 위상을 예술적이고 회화적인 작품으로서 인식하고 본인의 작업을 사진이라는 고정된 쟝르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기존 사진의 기법을 이용하면서 사진의 독특한 이미지 기호를 언어로 구사하되 그의 작업은 회화적인 것이다. 결국 19세기 사진의 선례에 대한 메타 작업이기도 하면서, 풍경을 독특하게 이정진 개인의 관점으로 프레임하여 지역적인, 한국적인 정서로 재현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 노재령

Vol.20010303a | 이정진展 / LEEJUNGJIN / 李貞眞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