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분식 Project

책임기획_전민정   2001_0324 ▶︎ 2001_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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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하영호_김주미_이수련_양정미_박선희_김시하_김민아_손민형

독립창작기획집단 Ahob www.freechal.com/ahob

분식집인가? 소주집인가? ● 「종로분식」에 '라면' 따위의 분식을 먹으러 들어온 자들은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곳의 라면은 전문분식집과 달리 흔하디 흔한 신라면 한 그릇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라면을 대체할 다른 적당한 분식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즉,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일치감치 그만 두라고 말하고 싶다. ● 이 공간의 신통함은 대부분 이 곳을 들르는 사람들이 이미 '목적'을 분명히 하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합의에 의해 이 공간은 "술"을 먹기 위한 공간으로 명명되었고, 그렇게 애용되었다. '분식'의 이름을 달고 '술'을 파는, 그러나 이런 이름은 80년대 성균관대 근처에는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기형적으로 만들어진 외래어들 '락카페'나 '**호프'에 밀려나는 토착어 꼴이 된 것이다. 이름에서 시작된 우리의 의문은 이제 문을 열고 그 공간 안으로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 80년대 운동권 문화와 90년대 후퇴적 하위문화의 조우 ● 공간이란 참으로 재미있다. 말에서 느껴지는 건조한 면을 살짝만 걷어내고 그 속내를 들여다본다면 공간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종로분식」 또한 그러하다. ● 가파르고 한번의 꺾임이 있는 지하입구로 둔중한 쇠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황량함. 그러나 성급하게 이것에 실망해서는 안된다. 본론은 이 공간에 차분히 배석하고 둘러보기 시작한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공간은 약간 비뚤어진 직사각형의 형태이고, 크게 입석과 좌석 식의 배치로 구분된다. 테이블들은 11자의 형태로 엮여져 있다. ● 벽의 액자들은 시간의 흐름과 중요도의 순서에 따라서 얼기설기 붙여져 있지만, 그 자체가 '종분 엄마'가 무엇을 가치롭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직접적 언술이다. 낡은 액자들 사이로 어느 평범한 가정집 거실벽에나 붙어 있어야 할 램프며, 눈을 거슬리게 하는 조화들이 아우성치고 있다. 편의라는 순수한 의도로 배치된 냅킨 걸이들은 둔탁해 보인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들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방쪽에 붙어져 있는 수도꼭지는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 이 공간은 주로 단체손님들이 찾는다. 11자형의 구조로 빡빡하게 들어찬 테이블들이 이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즉, 이 공간은 80년대 공동체 문화의 유산으로 공동의 모임을 위해서 효과적이다.

그러나, 치유의 공간 ● 집단적인 분위기에 따분함을 느낀다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려보자. 그 것은 주름진 '종분엄마'의 모습이다. '엄마'의 투박한 욕설과 씨익 웃으시는 모습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그 것은 엄마의 말대로 '타협하지 않은 삶'을 산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 엄마에게 가족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종분 엄마는 그냥 '종분엄마' 일 뿐이다. 80년대 엄한 시절 수배 받던 선배들이 한 두 번씩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로 엄마의 품은 넉넉했다. 돈은 없고, 술은 먹고 싶은 젊은 혈기들이 그래도 맘 편히 술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여기 뿐이었다. 한 낮의 전장에서 긴장한 몸을 녹이며 삶을 함께 이야기 해줄 수 있는 분도 종분엄마 뿐이었다. 지나간 권력자들에게 시원스레 욕설을 뱉어줄 수 있는 분도 용감한 종분엄마 뿐이었다. ● 그리고, 엄마의 삶이 그러했듯이 이 공간도 엄마를 너무나 닮아 있다. 손수 짜서 널어놓은 방석들이며, 직접 스크랩해 모아둔 액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엄마의 삶에서 우리는 상업주의의 얄팍함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보는 것이다. 엄마의 삶은 느리게 그렇지만 단단하다. ● 화려한 외관은 없지만 아직도 이 공간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암묵적 동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대전제.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오늘날까지 이 공간은 그러한 '치유'의 능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종로분식」과 「아홉」 ● 의 작가들은 종로분식의 치유능력과 종분엄마의 삶, 80년대와 90년대라는 겹쳐진 시간대의 문화라는 좁혀진 주제들을 가지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 문을 열어 젖혀 우리의 시선을 첫 번째 사로잡는 것은 김민아의 「선물 Present」이다. '가아제'라는 하얗고 뽀얀 면의 종류로 곱게 포장된 선물 무더기이다. 한올 한올 바느질을 통해 선물을 여미는 것은 종분엄마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상처받은 자들을 치료하고, 질긴 삶의 의지를 '가아제'라는 재료를 통해서, 그리고 그 것은 항상 누군가로 향해 있다. 손 만 뻗으면 쉽게 얻어질 수 있는 연약한 듯 , 강인한 '종분 엄마' 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 벽면에 부착된 액자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덧붙여지듯이 걸려져 있었다. 전민정은 「다 채우지 못한 벽」이라를 통해 그 액자들을 한 쪽 벽면으로 다시 배치하였다. 이제 액자들은 무더기로 진열되어 기존의 산발적인 진술들이 얽혀 하나의 완결적인 이야기를 구성한다. 그 것은 곧 엄마의 작은 앨범이며, 엄마 삶을 즉물적으로 재현해낸 작은 갤러리이다. ● 한 쪽 벽면에 진녹색의 사각형에 눈을 옮겨 보자. 김주미의 「보호구역」이다. 사각의 테두리 속을 좀 더 유심히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짙은 녹색속에 갇혀진, 또는 보호받고 있는 어떤 대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종로분식'이라는 공간이 어쩌면 운동권의 보호구역, 자치구역이었던 측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모호하게 감춰진 동물들은 존재를 은폐시키고 있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발견되어지길 바라는 존재들이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 아홉의 작가들 중 80년대를 거쳐온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하영호는 「토끼몰이」라는 작품을 선보인다. 종로 거리를 밑 배경으로 한 토끼들은 예민하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낮 동안의 싸움을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재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시점은 달라진다. '토끼몰이 당하던 자에서 토끼몰이를 해 볼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시선을 달리함으로서 얻어지는 통쾌함 또는 그래도 어찌할 수 없던 과거에 대한 서글픔,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다. ● 치유에 초점을 맞춘 양정미의 「있다.1 」 은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일상적 소품인 콘센트 속에서 벌어진다. 그녀의 특별한 유년기의 기억은 「종로분식」이라는 치유의 공간속에서 다시 한번 재생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동화적'인 이야기로 구성함으로서 작가는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고 있다. '그래, 안심하자, 별 것 아니다. 아직은 괜찮다.'는 주술과 '자살한 쥐'를 보면서 불현듯 삶의 이중적 속성을 보게 되는 것 같다. ● 방의 제일 안쪽에 재미있는 장치를 발견한다면 우선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자. 이수련의 「이 자리는 화장실이었다.」는 쓸모도 없이 부착되어있던 수도꼭지 하나에서부터 연상이 시작되었다. 가상을 실제처럼 보이도록 재현시켜 놓음으로서, 이 장소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 누구도 확인해 보지 않은 '수도꼭지'의 비밀은 곧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오늘 당신의 자리는 옛날 여자 변기 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닫혀진 많은 가능성을 터뜨리자고 제안한다. ●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섬을 그린 지도는 박선희의 「다리 밑 유토피아」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소 성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거대한 지도의 형태는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시선의 높낮이에 따라 그 이미지는 썩어 문드러진 양파의 단면 같기도 한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성기는 젊고 싱싱한 여자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하나의 이미지가 시각과 개념에 따라서 어떻게 변형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재미있다. ● 더불어 가장 '분식집' 다운 분위기를 내기 위한 작품이 있다. 손민형의 작품 「만화 두 권」. 만화속 말풍선 대사들을 이 쪽에서 저쪽으로 서로 바꾸어 놓았다. 이 만화들은 진짜 만화들처럼 이리저리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촉각적, 시각적으로 재미를 부여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어색하게 시작된 두 권의 만화들이 어느 순간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떠한 만화가도 만들 수 없는 독특한 구성과 화법, 이 것이 주는 놀라움과 당혹감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우연적인 효과를 실험해 보고 있다. ● 마지막으로 취기에 젖은 당신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산뜻한 프레임 속 김시하의 「바로 곁」이란 작품이다. 고추 위에 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응시하는 화려한 앵무새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그러나 우리도 잘 알다시피 앵무새에게 질문이란 없다. 놈의 성대구조 특성으로 인간의 말을 따라 '동어 반복' 할 뿐이다. 이 곳을 무심하게, 습관적으로 들렀던 오래된 관습 내지는 의미 없이 무성하게 들떠서 뱉어낸 무수한 대화들, 관계들에 대한 질문이다. 액자속 어귀가 말해 주듯 Whihin Reach처럼 바로 곁을 주목하게 된다면 '삶은 아직 살만하다.' ● 우리의 작품이 삶속에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는 순전히 이 곳을 오고 간 당신들 눈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삶과 미술이라는 두 경계면 사이를 부유할 수 있길 바란다. 어느 순간 그 것이 미술이 아닌 것으로, 또 어느 순간 그것이 작품인 것으로 읽혀질 수 있는 가능성과 여유를 느끼게 되길 바라는 것이다. ■ 독립기획창작집단 Ahob

Vol.20010324a | 종로문식프로젝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