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휴심

오순환 회화展   2001_0407 ▶︎ 2001_0419

오순환_휴일_기성 상화에 아크릴채색_80.6×92.7cm_1999

남산화랑 부산시 금정구 장전1동 391-10번지 Tel. 051_516_7887

아직도 아름다운 세상에 우리를 우리이게끔 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나로부터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순환) ● 나에게 있어 오순환의 그림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결혼과 가족 부양, 잦은 이사 등 30대 가장의 어려움과 미술계라는 틀에서 몸을 부대끼며 살아야 할 운명을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던 터라 그의 그림은 나에게 항상 위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오순환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애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의 그림에 대한 인상을 가장 강하게 심어준 작품 「바다의 휴일」를 만나면서부터 오순환이 예사롭지 않은 작가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부부와 아이가 등을 돌린 채 먼곳을 응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서정성'과 '일상성'이 아름답게 결합되어있다. 이 그림은 저항이나 분노, 원망이나 회환과는 다른 감동으로 회화의 표현과 그 소통의 의미를 일깨워 준 수작이다. ● 오순환의 매력은 일상의 무료함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 80년대 습작기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에는 현실의 삶에서 얻어진 서정적인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서정성은 TV드라마처럼 가공된 울림이 아니라 시와 같이 스며드는 감동이다. 섬세하게 다듬어진 그의 그림에는 감정의 기복이 없다. 심심할 정도로 절제된 색과 구성은 시선을 강제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눈길을 잡아둔다. 그의 그림들은 너무 여려 세상의 상처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작가의 인성과 너무 닮았다.

오순환_나비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368cm_2000_부분

국화, 은행나무, 빠알간 감들이 화려한 가을도 이제는 어제의 일이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가시 같은 추위를 더해준다. 춥다.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몸을 누이면 머리에서 발가락까지 너무 멀게 느껴진다. (오순환) ● 오순환은 졸업 후 삼일극장 주변에 위치한 서너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시작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지금은 부산 근교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한번도 안정된 작업실을 구해본 적이 없었던 작가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래서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그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하곤 했다. 바닷가, 야산, 달동네, 들꽃, 들풀, 단칸방 등은 모두 자신의 삶과 연결된 물건이나 배경들이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바깥풍경은 조금씩 줄어들고 실내풍경을 주로 그리기 시작한다. ●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도 주로 이런 것들로 정적인 구도에 자신과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심히 보면 작품의 구도가 매우 재밌다. 예를들어 99년에 제작한 「휴휴심 休休心」같은 경우 일반적인 경우에는 사람이 앞에 나오고 화분이나 수박은 그저 배경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 첼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전공자라도 보잘것없는 화분을 화면의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 질 것이다. 이러한 일탈은 작년에 제작한 「민불 民佛」이라는 작품에도 이어진다. 양쪽으로 펼쳐진 흰 커튼과 주름진 흰 바닥이 화면의 변화를 억제하고 있는 데다 등장하는 인물도 줄을 서듯 반듯하게 앉아 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작품이 너무도 정적이고 단순한 구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배경도 현실적인 공간이라는 실재감이 느껴지기보다 꾸며진 무대장치와도 같다.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아마도 그의 화면설정이 새로워졌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큰 변화라고 하긴 힘들지만 이전의 작품과 뚜렷이 대별되는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오순환_나비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1×368cm_2000_부분

현실주의 미학에서 출발한 그가 세상의 변화를 겪으면서 선택한 가닥은 삶의 체험을 보편적인 정서로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몇몇 작품에서는 과거작품에서 보였던 선연한 네러티브가 화면의 배면으로 잠복되고 알레고리가 상대적이지만 강조되어있다.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춘 이전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과 풍경들은 감정의 전이는 용이했지만 그 공명이 길지는 않았다. 현실을 콜라주한 단편들이 주는 인상이 너무 선연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의 작업들은 대상에 대한 거리가 너무 밀착되어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심리적이거나 상징적인 화면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해석의 단서들을 닫아버리고 개인의 심리적인 기제들로 가득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란한 기교가 배제되어있는 소박한 표현방식은 거부감을 주지 않으며 불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고차원적인 선문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 휴휴심이나 민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들에는 삶에 대한 초극과 희망의 내면화가 두드러진다. 현장설명의 구체성보다는 삶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리 더 전제임을 인식한 듯 계층이나 계급적인 입장보다는 '인간'과 '삶'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입장으로 방향선회를 감행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작품에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노파나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과 같은 현실적인 아픔이 드러나지 않는다. 뒤돌아서 화면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들에서 작가의 관심이 현실에 대한 체험적 상처에서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이름지은 휴휴심이란 불교의 평상심을 뜻한다고 한다. 고달픈 현실을 약간 비껴가면 휴식과 여유를 구하게 되고 더 큰 희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내재된 단어이다. 이렇듯 작가는 세상에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들과 그 아픔을 고유하고 함께 치유하고 싶을 따름이다.

오순환_휴휴심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10×259cm_1998

그림이란 게, 아름다움이란 게. 어떻게 어떤 의미가 담겨있고 하는 이런 구별심을 낸다는 것 자체가 도무지 재미가 없다. 이러면서 돌아앉아 그림을 그리는 나도 싫다. 그저 빨리 봄이 와 누구에게나 있는 아름다움에 꽃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순환) ●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서정성은 희망에서 나온다. 인간과 그 삶에 대한 한가닥 실낱같은, 그래서 외면이나 회피가 너무 쉬운 그런 희망을 끝끝내 부여잡고 있는 태도에서 오순환의 작업은 시작된다. 강한 외침도 어설픈 수사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은 가냘프지만 오히려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오순환의 작품이 대중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가족을 다루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 이번 작품에서도 정성스럽게 그려진 화면에 이렇다할 특징도 없는 자신의 가족들이 하얀 배경을 뒤로 서 있다. 핵가족을 넘어 탈가족화 되어 가는 시대지만 세상의 횡포와 폭력을 막아줄 유일한 해방공간이며 인간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가족이다. 그곳은 아마 「바다의 휴일」에서 바라보았던 바다너머의 세상이고 끝도 없이 이어진 가파른 산길의 종착지일지도 모른다. 가시 같은 세상을 그렇게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넓힐 수 있는 인정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화의 죽음이 논의되고 그 소통가능성이 의심받고 있는 지금 오순환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미술계의 현란한 이론적 논의도 과도한 물량적 비대함에도 관심이 없다. 오늘도 그는 지옥에서도 희망을 찾아낼 듯이 현실의 단편들을 응시한다. 그리고 선승의 고행이 속세의 고통과 맞먹는 것이라면 오순환의 그림 그리는 일은 수행의 또 다른 방법이다. 그래서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선승처럼 세상의 고통을 함께 한 자신의 가족은 부처이다. ■ 이영준

Vol.20010415a | 오순환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