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림

책임기획_김혜경   2001_0413 ▶︎ 2001_0429

서은애_쓰리피-대박의 꿈_한지 위에 채색

초대일시_2001_0413_금요일_05:00pm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2001 한국현대미술신세대흐름전

참여작가 김두진_김성민_김안식_류용문_류준화_박영선_박영희 박은영_박은진_박현정_사윤택_서상아_서은애_이상호 임국_임만혁_정선휘_정세라_정용성_정재호_황동하_홍경택

세미나_현대회화에 있어서의 서사성 2001_0427_금요일_03:30pm~06:30pm 발제∥고충환_노성두_김혜경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601

왜 지금 다시 '이야기그림'인가? ● 인류가 최초의 그림을 그렸을 때, 그 그림은 단순한 끄적거림 이상이었다. 점이든 선이든 그려진 형상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연상시켰고 이에 따라 이를 이용한 의도적 묘사와 상징의 행위가 그림 그리기의 주요한 목적이 되곤 하였다. 이처럼 그림은 태생적으로 기호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소유하고있는 환영의 힘에 의해 그림 외적인 정보들을 함께 전달해주는 기능을 오랜 역사를 통해 발휘해왔다. 서양미술사에서 그림의 서사적 특질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던 시대는, 아마도 미술을 통해 기독교 교의를 설명하고자 한 중세와 그리스로마의 인문학적 지식을 기독교적 세계관에 접목시키고자 한 르네상스시대가 아닐까 한다. 중국을 위시한 동양에서도 그림 자체만을 위한 그림은 거의 그려지지 않았다. 그림은 구도와 먹빛, 필력(筆力) 등 그 자체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외에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전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왔으며, 특히 한시(漢詩)의 운(韻)이나 내용을 보강하기 위한 도구로 종종 활용되곤 했다. ● 회화로부터 회화 외적인 요소들이 배제되기 시작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추상회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20세기초였다. 회화를 위한 회화, 곧 추상회화의 이슈가 회화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나 한편으로 회화가 담보하고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한동안 축소시키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미니멀회화를 끝으로 추상회화의 극단적 도덕주의가 막다른 벽에 부딪쳤을 때, 회화의 설화적 속성은 다시 살아났다. 유럽의 신구상회화나 트랜스아방가르드, 미국의 뉴페인팅은 회화의 발언적 기능을 부활시켰고 이는 다시 포스트 모던시대의 광범위한 다원주의와 메시지를 중시하는 개념적 경향과 맞물려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증식하게 되었다. ●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이후 자생적 미술에 대한 요구에 직면하고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으면서 기존의 세련되고 귀족적이며 자기만족적인 추상미술에 의해 야기된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위화감이 일거에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새롭고 거대한 물결은 이제 추상회화 뿐 아니라 회화 자체마저 날려버릴 기세이다. 미술이 다시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메시지 전달에 보다 효과적인 사진, 비디오, 오디오 등의 매체가 현대미술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미술언어 자체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면서 시각 이외의 감각기관을 자극하거나 예술가의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감각예술, 언어와 발상을 중시하는 개념예술, 과정예술, 일상예술 등 기존의 예술개념을 파괴하는 형태로 급진전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외에서 이루어졌던 주요 기획전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흐름은 명백한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수 천년간 미술계의 중심부에서 확고한 위상을 점해왔던 회화는 이제 현대미술의 장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 그런데 소란스런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여기 '꿋꿋하게(?)' 그림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현실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이 있다. 이들은 구태의연한 재료와 작업방식을 통해 전혀 구태의연하지 않은 이미지들을 창출해낸다. 우리는 이들의 그림에서 조형적인 화면을 '보는' 동시에 각 작가들의 고유한 이야기와 욕망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 독해는 다시 감상자의 개인적 경험과 결부된 다양한 '연상'행위들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도시의 일상'박영희는 시나리오의 콘티 장면들을 편집한 것 같은 연작 그림들을 출품한다. 한 여성의 일상에서 포착되는 다양한 각도의 얼굴들로부터 한 젊은 현대여성의 내면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파스텔조의 색상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임국은 피자박스, 찢어진 캔버스, 신문지 등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 데에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내용도, 떠오르는 대로, 아무 이미지나 그리는데, 그럼에도 그 이미지들은 몇 가지 유사 그룹으로 쉽게 분류된다. 이번 전시에는 그 몇 가지 유사그룹 가운데에서 탈것들, 곧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 심지어 스케이트보드를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출품된다. 사실 작가는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 자신이 오토바이 폭주족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은 자신의 일상과 속도에의 열망, 따뜻한 사랑에의 갈구를 표현하는 듯 하다. 특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있는 고양이, 오토바이를 탄 강아지 등의 그림은 그 만화적 발상과 거침없는 표현기법과 함께 매우 강한 매력을 발산한다. ● 정세라의 몽환적인 화면은 마치 근시의 눈으로 본 도시의 야경 같다. 고독하면서도 세련된 도회적 우수가 숙련된 붓자국 위로 넘쳐흐른다. 주로 푸른 색 계열을 선호해온 작가가 이번에는 가라앉은 갈색톤의 야경을 선보인다. 눈부신 빛이 어둠을 능가했던 과거의 작품들과 달리 이번에는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이 빛을 압도하고 있다. 또 예전의 푸른색 어둠이 새벽 미명에 사라져 가는 어둠이었던 반면 이번의 고동색 어둠은 폭풍전야의 짓눌린 어둠처럼 두려운 감정을 유발시킨다. ● 정재호는 한지와 수묵으로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되, 뒤에서 형광등이 비추이도록 장치해 그 효과를 직접적으로 배가시킨다. 테크놀러지와 설치의 맥락에서 수묵화를 재해석하는 행위가 그의 작업의 핵심 개념이지만 도시이미지를 통한 현대인의 감성과 일상에의 조명 또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중요한 내용가운데 하나이다. 화선지의 희뿌연 질감이 밤안개 같은 현실감을 선사해준다.

'정체성'김두진은 동성애자인 자신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으로 상정하고, 지구에서 적응하지 못해 늘 '떠남'을 상상하는 자신의 정신상태를 묘사하고자 한다. 그 외계인은 길이 보이지 않는 숲 속, 혹은 핏줄과 신경세포가 얽힌 신체의 내부 같은 화면 속을 헤맨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신체해부학적 이미지는 남과 다른 자신의 신체에 대한 불안과 집착을 반영한다. 김성민의 유화에는, 전통적인 미술작품에서 흔히 시각의 주체로 등장하는 남성이, 같은 남성에 의해 시각적 대상으로 나타난다. 같은 남성인 모델의 몸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나르시스적 쾌감을 얻는다. 남성의 고독한 육체와 이를 바라보는 눈, 그리고 몸통과 성기가 강조된 3인상을 통해 이 시대의 남성성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서상아는 르네상스시대의 도상학적 회화를 차용한 화면 속에 현대의 모델을 삽입하여 수백 년의 시간과 동서양의 공간을 관통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철저하게 기호화된 화면 속 인물들의 정체와 그들의 배치방식이 함의한 철학적 의미들은 그들이 서로 교환하는 시선의 층위를 감지한 관객에 의해 더욱 정교하게 해석되는 바, 그녀는 예술가의 윤리와 정체성에 대해 묻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도상학적 지식을 소유하지 않은 일반 관객에게 즉각적으로 보여지는 화면은 단지 몽환적이고 불가해하면서도 흥미로운 암호들로 가득 찬 특이한 그림일 뿐이다.

황동하_멈춰진 시간_기물 위에 아크릴채색

'재현' ● 재현된 이미지들의 복제가 반복되면 원작의 정체는 더욱 모호해진다. 리히터의 원작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류용문은 인터넷과 잡지에서 발견한 리히터의 작업을 원본으로 두 가지의 '재현' 행위를 시도한다. 즉 그는 인터넷 웹사이트와 미술잡지에 실린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을 유화로 베끼거나 혹은 흉내내고자 한다. 픽셀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컴퓨터의 화면은 베끼기에 매우 용이하다. 그러나 책에 인쇄된 도판은 결코 붓으로 완벽하게 베껴낼 수 없고, 다만 흉내낼 수 있을 뿐이다. 흉내는 복사 보다 훨씬 '회화적'인 과정과 결과를 담보하다. 과연 관객은 그 미세한 차이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타블로'를 복제한 매체-인쇄매체 혹은 디지털 매체-를 다시 복제하여 새로운 '타블로'를 탄생시키는 과정이 흥미롭다. ● 박은진은 비디오에서 본 영화장면을 캔버스와 소파 등 일상의 가구 위에 재현한다. 명화로 익히 알려져 있는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을 재현하되, 비디오모니터의 화소와 노이즈까지 재현함으로써 이미 알고있는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표면으로서의 이미지 자체에 주목하도록 유도한다. 그녀가 회화의 소재로 즐겨 다루는 다양한 영화의 장면들은 영화나 비디오의 표면 이미지들이 이미 일상 풍경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음을 강조해준다. ● 박현정은 지하철 역내의 안내표지판을 실물크기 그대로 재현한다. 장인적인 묘사를 통해 그녀의 안내표지판은 전시장 안에서 고급스런 타블로 회화로 둔갑한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되, 예술을 일상 속으로 내보내기보다는 일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그녀는 더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 안내표지판의 기호들은 전시장 안에서 본래의 지시적 기능을 잃어버린 채 조형적인 맥락 속에 새로운 의미들을 획득한다. ● 황동하는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의 책, 노트, 머그잔, 필기구, 스탠드, 사과 등 기물들에 흑백의 채색을 한다. 채색하는 방식은 조명에 의해 밝게 빛날 부분은 검정색으로, 그림자질 부분은 흰색으로 칠해 실제의 빛과 그림자에 의해 생기는 명암효과를 배반한다. 그리하여 광원에 가까운 방향에서 바라보면 검정색 면이 많이 보이고, 광원의 맞은 편에서 보면 흰색 면이 많이 보이는 시각상의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나쁜 여자'류준화, 그녀는 여성의 주체적 시선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이를 활달한 붓터치로 표현하는 작업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숙련된 손맛의 회화 작업 대신, 박쥐 떼를 연상시키는 검은 색 설치물들을 제시한다. 박쥐의 형상을 한 이 설치물들은 노동하는 여성, 생산하는 여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해방된 여성의 몸짓을 불결하게 바라보는 가부장 사회의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무언의 시위로 작용한다. ● 박은영은 화선지와 수묵이라는 전통적이고 온화한 매체를 사용하여 매우 도발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반복되는 가사에 지친 한 여성의 다양한 표정과 동작들이 블랙코미디의 주인공 같은 캐릭터에 의해 수행된다. 순종적이지 않은 여자가 '나쁜 여자'라면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엉뚱하며 자의식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여자들은 모두 나쁜 여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 여성에게 진정 요구되는 것은 오히려 나쁜 여자의 굴레를 기꺼이 뒤집어쓸 수 있는 용기일지 모른다. ● 서은애는 '나도 주인공처럼'시리즈를 통해 학원만화나 순정만화 속에 직접 등장한다. 특히 폭력적인 만화장면 속의 여걸로 등장함으로써 여성에게 기대되고있는 "여성다움"의 이미지를 통렬하게 배신한다. 심각한 동시에 웃기며, 불편한 동시에 정감 넘치는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한다.

'현대인'사윤택의 회색 공간 속에는 한 회색인간이 멀리서 거울을 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간 관객은 회색인간 옆에 달린 진짜 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 자신의 총천연색 얼굴이 회색 공간 안에 떠 있는 장면은 절규하는 듯한 회색인간의 프로필과 섬뜩하게 대비된다. 화면의 전면 기둥에는 한 쪽 눈을 감은 가면 같은 얼굴이 거울처럼 걸려있다.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내적 욕망 등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 기성품을 이용한 입체작업, 사진설치작업 등 다양한 매체와 전시기법을 섭렵하고있는 작가 이상호는 이번 전시에서 내장의 형태를 드로잉한 평면 및 입체 오브제들을 설치형태로 제시한다. 신문지와 가벼운 우레탄 품으로 이루어진 형형색색의 내장들은 신체로 사고하고 내장으로 느끼는 작가의 신세대적 존재방식을 반영한다. ● 임만혁은 목탄으로 세밀하게 소묘한 장지 위에 수십 번의 담채를 씌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누리끼리한, 오래된 장판지 같은 특이한 화면질감을 창출해낸다. 커다란 머리와 왜소한 팔다리, 퀭한 눈동자를 한 인물상들이 이 작가의 주인공들이다. 주로 주변 인물들을 모델로 하지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대인의 황폐해진 정서와 인간관계를 한결같이 대변하고 있다. 몽상적이고 구도자적인 주제 아래 늘 배경이 되고있는 그의 좁은 방은 폐쇄되고 단절된 개개인의 삶의 지평을 은유한다.

'환상'박영선의 환상적인 유화 화면에는 일상 속에서 매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지는 상념들이 사실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재현되어있다. 그녀의 화면은 온갖 기억의 잔상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뇌의 피질처럼 어지럽고 끈적거린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이 이미지들은 우리의 뇌 속에서 다른 이미지로의 연상작용을 진작시키는 촉매역할을 하는 듯 하다. ● 홍경택의 거대하고 화려하며 도착적인 화면은 책상 위 필통에 꽂혀 있는 몇 자루의 필기구들로부터 나왔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들이지만 그의 필기구들은 영혼을 부여받은 듯 힘이 넘치고 위협적이며 스펙터클 하다. 연필과 온갖 종류의 펜들, 그리고 날카로운 조각도의 뾰족한 촉수들은 작가 자신의 내부를 자해하는 동시에 외부세계를 향해 돌진하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마조히즘과 사디즘을 왕복하면서 작가는 내면 깊은 데서 우글거리는, 억압된 무의식의 해방을 기도한다.

정선휘_수박등_캔버스에 유채

'사회' ● 광주에서 '수박등'은 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이념 사이에서 지역민들에게 뜨거운 이슈를 제공하고 있는 버려진 언덕이다. 정선휘는, 시뻘건 흙을 드러낸 채 흉하게 누워있는 이 언덕 뒤로 최근우리 역사의 쓰라린 한 단면을 지키는 귀중한 증인들에 개발된 첨단의 아파트 단지가 도시의 매연 사이로 희뿌옇게 보이는 광경을, 활달한 필치의 유화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업 외에도 작가는 광주의 일상과 지역의 현안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방식의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다. ● 정용성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4.3사태와 관련하여 옥고를 치르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의 초상화 시리즈를 선보인다. 우리 역사의 쓰라린 단면을 증언하는 이들의 얼굴을 목탄지 위에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드러냄으로써 역사망각의 늪으로부터 우리의 기억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제주도의 평범한 사람들을 수묵으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작가에게 이들 역사의 희생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그림들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존경, 그리고 연민이 가득 담겨있다.

'자연'김안식은 회화보다는 '프로젝트 아트'라는 대규모 설치작업의 실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정체성 또한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물 위에 번지는 동그라미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흩어지는 영상이 아크릴판 위의 페인팅 작업 위에 겹쳐지고, 이 그림들은 화면 뒤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해 신비롭게 투과되면서 중세의 유리화 같은 분위기를 선사한다. 평면회화와 테크놀러지, 중세와 현대, 그리고 자연과 인공이 결합되는 순간이다.

이 전시회의 기획은, 최근 우리 미술계가 유행처럼 번지고있는 특정 경향의 미술에 중복적으로 투자하면서 자칫 현대미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왜곡시키거나 젊은 작가들의 작업태도와 방향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현란하게 변화하는 미술계 풍토에 연연하지 않고 회화라는 고전적 매체를 통한 현대적 결과물의 획득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이야기그림' 작업들을 보면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 시대 신세대 작가들의 단면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 김혜경

Vol.20010416a | 이야기그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