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적

김용철 회화展   2001_0418 ▶︎ 2001_0430

김용철_온수리 수탉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01

가람화랑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0번지 Tel. 02_732_6170

김용철의 작품은 민화가 지니는 의미의 회복을 체험적으로 설득하는 그림이다. 근래 그의 작품은 이전의 여러 전통회화에서 고루 차용한 듯한 혼성적인 경향이 줄어들고 훨씬 더 전통 민화의 원형에 충실한 화면으로 정제되어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화면은 서툰 것 같은 어설픈 묘사와 투박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화려한 색채감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렇게 표현된 색채는 한편으론 너무 진부하고 인상적이어서 낯설고 생경하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에서 관자와의 용이하고 친밀한 소통을 유도하는 친화력이 엿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 김용철의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세적 기복에 대한 주술적 상징의 도상과 더불어 현란하고 강렬한 색채의 대비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런 그의 작품은 다시 현대와 전통이 절충적인 양상으로 결합하는데, 이를테면 민화적 도상의 차용과 재구성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라면, 금속성 재료의 사용과 형광발색의 색채는 키치적 감수성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민화가 가진 의미 있는 기능, 즉 현세적인 부귀안녕과 행복을 위한 상징적 도상을 적극적으로 인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통 민화 도상에는 보이지 않는 문구를 등장시킨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그림에도 '우리둘이''천년만년 살고지고' '늘 가까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와도 같은 글귀를 새겨 넣는다. 이로써 그의 작품은 민화보다 더 상투적이고 통속적인 느낌을 자아내긴 하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쉬운 내용으로 관자를 환기한다는 면에서 이색적이다. 작가는 이렇듯 대중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모티브를 모아 재구성함으로써,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행복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대체 '누구를 위한 예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투명하고 명징한 항변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또한 그의 현란한 색채감각은 민화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 하다. 이를테면 이전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색채 대비와 더불어, 형광발색의 색채와 금속성 재료의 사용으로 그의 화면은 훨씬 사이키델릭하며 펑키하며 경쾌해졌다. 우리 고유의 색채감각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의 인간들과 밀착된 색채감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대판 민화의 재현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색채의 사용 이면에는, 반짝거리는 색채의 사용이야말로 작가자신은 물론 보는 이도 즐거울 거라는 관자를 향한 사소한 배려의 측면을 놓치지 않는 소박한 바램이 녹아있다. 어쨌거나 이런 재료의 사용은 그렇지 않아도 평이해 보이지 않는 화면의 상승작용을 도와 더욱 키치적이고 장난스러우며 고상하지 않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은 어찌 보면 다분히 작위적인 의도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조차 삶에 대한 솔직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런 장치는 관자로 하여금 보다 자발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이를테면 예술이 더 이상 우리와 소외되어 존재하는 이상적이고 초월적이기만 한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체험적 일부로서 향유되는 일상적 삶의 예술로 조절되는 것이다.

김용철_모란꽃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60.6cm_2001

그의 작품에는 자연이 있다. 그는 사람에 대한 믿음 못지 않게 자연에 대한 큰 믿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삼라만상의 운행질서를 믿고 따르며 그 조화에 참여하고자 한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일월도나 화조도는 대상으로서의 객관적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체득해야할 이치와 섭리로서의 자연이다. 즉 그의 화조도나 모란도에 등장하는 새나 수탉은 인간사의 조화와 화해의 속성을 가진 상징물에 다름 아니다. 우선, 모란의 만개는 전통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부귀와 평안을, 쌍을 이룬 새들은 전통적인 부부화합과 금슬을 상징하는 기표가 된다. 특히 근래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서의 수탉에 대한 관심은 직접 수탉을 키우고 있는 작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작가자신을 비롯한 오늘날의 남성들에게 일종의 화두와 같이 일침을 놓는 소재로 사용된다. 즉 그의 수탉은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깨우는, 닭이 울면 모든 잡귀가 물러난다는 벽사( 邪)의 의미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본능적으로 이끌고 보호하는 수탉을, 가부장적 기틀이 와해되고 그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남성들에 비유하여, 애정어린 질타와 위안을 동시에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 이렇듯 삶의 일상성 속의 미감을 찾아내려 하는 작가의 작품을 볼 때 우리는 어떤 긴장감으로부터 떠나 작품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젠체하는 가식이 없으며, 사유의 논리를 묻지 않아도 되며, 어떤 규제와 강박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어수룩하고 모자란 데가 있기에 더 인간적이고 더 따뜻한 그림, 거기에 바로 김용철의 작품의 참된 가치가 놓여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는 그가 얼마나 신명나고 즐겁게 그렸는지, 그리고 모든 대중예술이 그렇듯 수용자가 이 그림들을 통해서 얼마나 위안을 받게 될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은 현세적인 행복에 대한 메시지의 강렬한 시각적 구현이라는 평범한 진리로서, 자연에 대한, 인간에 대한, 우주에 대한 이치가 깨어있는 그림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의 작품을 행복한 부적처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말이다. ■ 유경희

Vol.20010420a | 김용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