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WAY

1부 / 2001_0420 ▶︎ 2001_0505 2부 / 2001_0507 ▶︎ 2001_0521

김정욱_ _한지에 먹, 채색_94.5×63cm_1999

참여작가 1부_김정욱_이정승원_정세라 2부_김기수_김정선_정광현

제이제이갤러리(폐관)

김정욱은 말수가 적은 작가다. 그의 작품이 언어로 작품을 이해시키거나 개념을 위주로 작업하는 작가라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는 직관력을 소유한 작가임을 대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인물들의 무표정 속에 도사린 듯 빛나는 눈동자는 서로 다른 농담에 의해 초점이 맞지 않는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병적 징후를 보인다. 왜소하고 위축된 몸짓, 그리고 창백하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서 연신 눈동자만이 간신히 인물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듯하다. 마치 오려진 듯 그려진 검은색 배경에서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지만 한없이 깊게 빨려들게 하는 마력과 동시에 그 깊이나 시간의 흐름을 눈치 챌 수 없는 정지된 순간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자리를 털고 일어설 줄 모르는 지친 현대인들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 그의 최근작에는 고흐의 그림처럼 원색에 가까운 색의 터치가 인물을 집어삼킬 듯이 넘실거리고 있고 인물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표정의 기운마저 감돈다. 이런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진행되어나갈 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인물에 대한 탐구가 인물의 내면을 꿰뚫는 직관력의 산물임을 우리는 믿지 않을 수 없다. ■

이정승원_말할 수 없음_Post-it_250.8×250.8cm_1998

피카소의 게르니카, 고호의 해바라기, 앤디 워홀의 마릴린 몬로 등이나 '반갑니다' 같은 패션화된 언어들처럼 현재 작업하고 있는 이미지들이나 문자들은 일종의 재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은, 비록 회화의 전통 및 미술관의 명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다만 그것들로 인해 향수만 자극할 뿐 소통, 전달, 통로를 방해하고 전통을 재현하는데 있어서는 '무관함'을 말하고 있다. ● 하릴없이 떠다니는 정보의 바다에서 예술가들은 임의성과 자의성으로 차용, 재현하면서 무한한 정보사회를 항해하고 있다. 정보로 넘치는 문명사회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이정승원이 택한 Digital 영상의 최소단위인 pixel은 포스트- 잇 혹은 견출지이며 이 메모지를 통한 시각적인 디지털化라고나 할까? 어쩌면 이정승원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simplify된 도구일지 모르겠다. 이로써 화면에 숨겨진 이미지들은 혹은 문자들은 해독자체를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두며 그것들은 현대판 숨은 문자 찾기를 하는 관람자의 노력에 의해서 읽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를 이미지의 편집자이며 중계자, 연출가로 인식하며 의도하거나 또는 의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문자 혹은 이미지들이 분절, 다시 조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퍼즐처럼 알 수 없는 영상이 되어가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

정세라_도시 속에서 걷기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1999_연작중 부분

거리를 걷는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이곳 혹은 저곳으로 걷기의 궤적을 따라 얽히는 시간과 공간의 부서진 조각들은 도시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자연으로 드러난다. 지나간 속도의 흔적만이 남아있는 도로의 모습, 일그러진 불빛의 파편들, 어딘가를 향하는 군중들, 실재의 풍경과 거울 속의 풍경, 유리에 비친 또 다른 풍경들의 중첩... ● 이러한 일상의 풍경에서 무의식 속의 모호하고 불안한 욕망들이 스멀거리듯 화면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

김기수_쇼핑_철거지역에서 수집한 물건들을 태워 그 재와 숯을 석고에 섞어 캐스팅_2001

또 하나의 백화점 ● 내가 사는 동네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주택가들이 하루아침에 철거되었다. 분명 그 말도 많은 재개발이라고 추정되는데, 이곳에서의 불편한 감정은 어렸을 때 보았던 장면들(대책없는 공단조성이란 명목으로 정을 붙일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고향집과 마을을 잃었다)과 오버랩되면서 분노에 가까워진다. ● 내장이 모조리 드러난 건물더미 사이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다. 필시 가지고 가지 못한 짐들이며, 버려진 것 들일게다. 물론 차이는 있지만 이곳에 진열된 물건들은(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지는 않지만) 자본의 논리로 점철된 백화점의 상품들과 닮아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곳에 널려 있는 죽어도 죽지 않는 그 좀비상품들이 백화점의 딜레마를 애써 위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김정선_정민과 정은_종이에 유채_100×70cm_2000

나는 '삶'이란 '회상할 것이 있음'이라고 정의 내려본다. ● 나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만나는 사물을 해석하여 의미로서 수용한다. 이 각각 해석된 만남을 경험이라 하며, 경험을 통해 만난 사물은 나를 주체로 하는 객체가 된다. 삶의 주체인 인간의 의식에서 객체로 인식되지 않은 것은 없다. 또한 삶 속에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의 어떤 모습을 나는 '회상'이라 부르며 나의 모든 만남은 회상 속에서 재구성된다. '회상'을 통해 나의 모든 만남(사실)들은 해석되어 내게 지녀진다. ● 회상의 내용들은 언제나 내 기억 속에서는 디테일이 생략된 삶의 원형(archetype)으로 떠오른다. 단순하게 생략된 구도, 색채, 인물과 사물의 정면성은 이 삶의 원형을 시각화하기 위한 시도이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순간'에 '영원'의 의미를 부여하기에 관심을 갖는 나는 순간을 기록하는 사진과 영상매체의 시각형식이 그림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관찰하고 있다. ■

정광현_Untitled_벽면에 드로잉_50×30cm_2001

ㄱ안ㅁ 2001.03.18.pm12:19 ● > > > > > ㄱ ㄱ ㄱ ㄱ ㄱ 기 역 기 역 기 ● # # # # > ㅁ ㅁ ㅁ ㅁ ㄱ 미 음 미 음 역 ● # # # # > ㅁ ㅁ ㅁ ㅁ ㄱ 미 음 미 음 기 ● # # # # > ㅁ ㅁ ㅁ ㅁ ㄱ 미 음 미 음 역 ● # # # # > ㅁ ㅁ ㅁ ㅁ ㄱ 미 음 미 음 안 ● 문자의 성질에 대해 말한다. ● 문자와 말 + 우연 ● 이미지. ■

Vol.20010506a | SUB+WA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