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진심은 통하지 않아

최수진 영상회화展   2001_0502 ▶︎ 2001_0508

최수진_설마, 보험설계사?_합성된 사진이미지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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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원래 내 인생의 목표는 정말 훌륭한 자화상을 갖는 것이었다. 과거형으로 "것이었다"라고 쓸 수밖에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내가 꿈꾸는 자화상이란 모름지기, 그림 앞에 선 순간, 최수진이란 사람의 정서가 붓질 하나 하나에 담겨 보는 이의 마음에 감동의 파도를 치며 전달될 수 있는,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필요 없는 마술 같은 나의 분신, 그런 강력한 그림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한 점의 그림을 창조하기 위해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찝찔한 땀방울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이젤 위 작은 캔버스에 혼신의 힘을 거듭하는 진지한 화가의 모습이 내가 꿈꾸는 내 인생의 명장면 바로 그것이었던 거다. ● 그렇지만 슬프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내겐 그럴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겐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고, 알아내야 할 것도 너무 많고, 구경가고 싶은 것도 진짜 진짜 많다. 이미 세상에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걸 챙겨먹기에도 하루하루가 짧기만 한데, 양미간 힘주고 내 콧잔등의 모공을 하나 하나 그리고 앉아 있을 시간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물론 바쁜 시간 쪼개어 시도해보지 않은 바 아니지만, 내 속엔 세상이 너무나 많아서 도저히 실현하기 힘든 꿈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붓대신 집에 처박혀있던 카메라로 내 모습을 찍게 되었던 것이다. ● 장황하게 인생의 목표니 자화상이니 하며 늘어놓는 것에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사실, 내 작업의 주제는 딱히 무어라 말할 것이 없다. 그냥 그간 그토록 빨빨거리면 챙겨먹은 세상의 감흥들을 나의 모습을 빌어 꼬집어보는 것뿐이다. 구태여 주제를 뽑아보자면, 아니꼽지만 아니꼽다고 대놓고 맞짱 뜰 수 없는 것들과, 불쌍하지만 불쌍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과, 슬프지만 슬프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세상의 애매한 모습들을 내 모습을 빌어 하나의 장면으로 구성해본 것이라고 하겠다. ● 1인 다역 영화의 스틸사진 한장이라고나 할까? 비록 모니터 상에서 합성된 장면이긴 하지만, 판타지영화가 아닌 논픽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논픽션영화에서 1인 다역이라는 것이 말이 안 되지만... 주제는 논픽션이고 형식은 픽션인 셈이다. 작품마다 각각의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긴 했다. 제목이 각 장면의 대사 혹은 나레이션이라고 설정해서 붙여보았는데 꼭 무슨 의도인지 알아봐 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보지도 않은 영화의 스틸사진 한장이 이상스럽게 머리에 남는 경우처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아 주어도 좋겠다. ■ 최수진

Vol.20010509a | 최수진 영상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