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盲·인

조미영展   2001_0526 ▶︎ 2001_0603

조미영_돌·盲·인_장판지에 먹_23×31cm_199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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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1_0526_토요일_05:00pm

한전프라자갤러리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5번지 Tel. 02_758_3494

눈에 가려진 자신의 비늘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는 숭어. 그러나 때가 되면 숭어는 비늘을 벗어버리고 세찬 물결을 거슬러 자신의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간다. 숭어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조미영의 작업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 속에서 작가의 눈에 투영된 사물의 이미지를 수묵과 한지의 전통재료를 이용하여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 급속하게 변해 가는 소비사회에서 외향화되어가는 일상인들의 모습과 그 속으로 휩쓸려 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은 습작기의 도시풍경에서 무정란 시리즈로, 그리고 이번에는 돌·盲·인을 테마로 한 조형적인 이미지로 삶의 깊이를 드러낸다. 무정란 시리즈의 작품은 습작기의 작품과는 달리 "은근하고 정취 있는 바탕 질의 구사와 알을 표현하는 농담의 조화를 조형적으로 처리"(김상철, 공평아트 관장)해 내면서 일렬로 늘어놓은 알들의 비유를 통해 서로 고립된 존재들이 한 생명으로 태어나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소비 지향적인 거대한 도시문화에 삼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조미영_무정란_덕원갤러리 설치작품_1999

이번 전시에서 부각되는 돌·盲·인 주제의 작업들은 무정란 시리즈의 불확실한 일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연장된 미완의 삶의 숙제들을 수묵과 한지, 그 중에서도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장판지의 전통적인 조형 재료를 이용해 자연의 이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유에서 치유하여 풀어내려고 한다. ● "보이지 않는 잦은 작은 전쟁들......가끔 빠르게 내 자신을 내 몰다가 느껴진다. 이건 전쟁터다라고......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고삐를 늦추고 서로 바라보게.....안장을 내리고 목마름을 채우게.....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 오염을 막는 일.....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무것도 아닌 내 자신을 확인하고, 위로하기보다는 위로 받고 싶어서......"(작가노트) ● 알의 이미지에 산과 들의 이미지를 그 안에 담아 드로잉한 "마음 속에 묻어둔" 작품으로 '만물이 낳고 자라고 거두고 모아 저장하는 자연의 이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사유를 표현하여 이러한 작가의 갈등을 해소하고 서구적인 사유에 물든 시선들에 둘러싸여 소외된 듯한 자신의 삶의 잣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다.

조미영_기상_한지에 먹_2001_부분

돌·盲·인의 시리즈 작업들은 작가의 이러한 심정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가느다란 바늘로 장판지에 홈을 파고 세밀한 붓 작업으로 섬세하게 작업한 조형적인 이미지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그 안에 표현하고, 기계로 찍듯이 인공으로 찍어내는 비닐 장판이나 수입 펄프 종이와는 달리 정성을 들여 손수 한 올 한 올 엮어낸 한지에 콩기름을 바른 조형재료에서 우리 고유의 순박하고 정감어린 따스한 서정을 느끼게 하며, 벌거벗은 인체는 태고적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는 돌의 이미지와 저편 너머에 석양이 내려 않는 산등성이들이 마을과 들판을 포근하게 감싸 않는 듯한 정경들을 스쳐지나 가게 하면서 어릴 적 기차 여행의 기억을 연상시키고 있다. ● 만물을 키워내는 물의 근원은 어디인지 모르나 돌·盲·인의 인체 뒷편으로 물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게 하는 "물소리를 들으며"의 작품에서 암시하듯이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신의 눈에 가려진 비늘을 떨쳐버릴때이며, 그 비늘이 하나 하나 떨어지는 순간은 순박하고 따스한 자연의 품과 같이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인간의 온기를 통해서 만이 가능함을 작업의 과정에 스스로 예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만이 작가 자신의 상처를 감싸않으며, 생명을 싹 틔우는 근원임을 암시하는 작가의 작업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언젠가 아련히 감싸올 것만 같다. ■ 조관용

Vol.20010523a | 조미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