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발 풍경

함명수展 / HAMMYUNGSU / 咸明洙 / painting   2001_0528 ▶︎ 2001_0608

함명수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평일_10:00am~06:30pm / 일요일_10:00am~05:30pm

금산갤러리_KEUMSAN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번지 Tel. +82.2.735.6317~8 www.keumsan.org

그리기의 추적 ● 언제부턴가 함명수의 작업실에는 벽면에 "그려야 나온다, 그리면 느낀다, 나를 인도하는 아름다운 힘"이란 글귀가 붓으로 쓰여져 있다. 그 글은 98년 개인전이후 그간의 자기작업에 대한 회의가 짙어지면서 반발·반동·반성에 대한 결의로 자신을 질타하는 데서 비롯된 것인데, 지금은 작업에로의 '가르침'을 주는 출구(門)가 되었다.

함명수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0_부분
함명수_Vincent Van Gohg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01

그전의 작업들은 사물과 사물사이를 구성하는 것, 전통산수화에 깔려 있는 공간인식을 탐구하는 몽환적 재현-구성으로부터 좀더 현실에 접근한 시각을 나타낸 것, 예술과 사회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신문을 거대한 지형도로 전환시키는 것, 거꾸로 대상을 조감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대상을 어떻게 보는 가에 대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 등의 내용으로 그는 나름대로 '그리기'라는 방법적 접근을 꾸준히 해왔다. 여기에서 함명수는 여러 물성 또는 생각들을 체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인식해 왔고, 그 체험(실험)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무거운 껍질에서 차츰 벗어나 자신의 알몸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응시하게 된다.

함명수_Noodle scape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00
함명수_Noodle scape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1999~2000

앞에서 언급한 작업 중에 '거꾸로 그리는 작업'(이 방식에서 보여지는 것과 그리는 방식의 경계에서 완성을 해독하는 것보다는 과정과 인식자체가 재현의 중층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고, 이것이 새로운 코드를 읽는 계기가 됨)이 있었는데, 이는 형태를 추적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붓질을 추적한다. 붓질을 대상으로서 '붓질'을 그린다. 어떤 대상을 큰 평붓으로 휙휙 그리고 다시 그 붓질을 쫓아 작은 붓으로 땅을 경작하듯이 그려나간다. 거미가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생존하기 위해 자기 몸 속에 있는 거미줄을 치는 것과 같이 그 붓질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자 생존의 게임인 것이다.

함명수_Cup_캔버스에 유채_72.7×90.9cm_2000

이러한 최근 작업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는 매우 익숙하고 강해 보이지만 시간의 축적이 묻어있는 흔적들에 의해 퇴행 당한다. 화면에서는 먼저 구체적인 형상이 뚜렷이 나온다. 그러나 그러한 얼굴, 나비, 책, 램프, 테이블, 거리 풍경, 터널, 패러디한 형체 등이 주제나 모티브에 관계없이 붓질에 가탁(假託)하여 모호한 경계 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 단어가 지니고 있는 텍스트를 해독하는 것이 아닌 지독히도 겹겹이 그러면서 느리게 꼿꼿이 날이 선 붓질의 의연함으로 형상이 압도당한다. 거리 풍경의 그림을 보자. 일상의 거리 풍경이 온통 붓질의 얼룩으로 도배되어 하나의 물질로 둔갑해버린 꼴이 되었다. 그리기 행위의 한 코드로 간판, 유리문, 나무, 도로 등이 지닌 다양한 성질이 상실되고 설득되어 일상이 죽어버린 결국 행위만 남는 형국이다. 이러한 모양새와 논리가 인물(자화상), 터널, 램프, 작업실, 패러디한 형체 등의 풍경에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시간여행으로의 복귀…. 그리기에 그리기, 그리기에 대한 그리기, 그리기에 의한 그리기 등으로 일관된 '그리기를 추적'하는 그의 행위는 '느림=과정'의 행보아래 자유로운 시간의 실뭉치들을 조금씩 풀어 나가는 작업이다. 그래서인지 그 작업들을 '면발 풍경'이니 '실타래 풍경'이니 하는 용어를 자연스레 붙이게 된다.

함명수_Tunnel_캔버스에 유채_162×227cm_2001

되짚어보면 함명수의 작업은 하나의 형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이미지가 닫혀 있는 것이 아닌 열려 있다. 그것은 이전작업에서 주요하게 다루어 졌던 '이동시점에 의한 대상 읽기'가 체질화되어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건너가는 자율적 행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 명암, 입체감 등의 거세나 이미지를 철저하게 해체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재구축의 구조적 인식이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요약) ■ 이관훈

Vol.20010528b | 함명수展 / HAMMYUNGSU / 咸明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