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기

김주현 조각展   2001_0608 ▶︎ 2001_0706

김주현_무제_알루미늄판 잘라서 쌓기_60×60×60cm_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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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화_2001_0622_금요일_04:00pm

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서울 종로구 관훈동 74번지 Tel. 02_733_0440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알루미늄을 사서 잘라오고 나머지 작은 조각들을 자르면서, 이것이 내 마지막 진짜 조각이라고 되뇌었다. 다시는 이런 두께와 무게를 가진 물건을 다루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으므로. 그래도 이 작품만은 완성해야 했다. 알루미늄 쌓기는 1999년 가을에 종이 습작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을 미루다가 2000년 봄에 도면을 그리고 여름에야 완성했다. ● 정육면체는 내가 처음 작품을 시작했던 1989년부터 즐겨 만들던 형태이다. 한동안은 정육면체가 아닌 어떤 다른 형상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육면체 혹은 정사각형에 빠져있기도 했다 . . . . ● 1994년 어느 전시에서 누가 내게 왜 늘 정사각형이냐고 묻기에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정사각형에는 그보다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즉 정사각형과 그것의 연장인 정육면체는 분명히 하나의 형태이면서도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 혹은 최소의 표정만을 갖춘 흰 배경과 같은 존재이다. ● 우리가 늘 쓰는 도화지나 캔버스가 그렇고 메모지나 복사지, 컴퓨터 화면이 그렇듯이, 나의 정육면체는 조각의 결과물로서의 형태가 아니라 이제 어떤 조각적인 진행이 일어나기 위한 장으로서의 전제에 불과하다. 나는 정육면체를 선택한 게 아니라 아무 형태도 아니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형태에 관한 질문은 오히려 정사각형이 아닌 다른 형태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정사각이 아닌 직사각형을, 그것도 아닌 삼각이나 원형을 사용하셨느냐고. 거기에는 그야말로 틀림없이 원인이 있을 것이므로. ● 내 정육면체를 보면 아무리 잘 해보려고 노력했어도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삐뚤어진 모서리와 불룩해진 면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이 정육면체가 직각과 직선을 잘 갖춘 여섯 개의 바른 면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수 만 장의 얇은 알루미늄 판이 쌓인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원래 1600장에 불과하던 60×60cm의 알루미늄 판이 이와 같이 60가지의 서로 다른 크기로 다시 잘려 2만 여 개가 된 것은 정육면체의 네 옆면에 보이는 수직 골로 그려진 드로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결국 한 면의 드로잉은 보이지 않는 내부의 복잡한 구조를 통해서 건너편 면의 그것과 연결되어 있고 때로는 연결되기 위해서 서로에게, 그리고 다른 옆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평평한 정육면체는 이러한 내부를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

김주현_무제_함석판 약 4000개 경첩_4000×7000×30cm_1999_젊은모색 2000展 출품작

얇은 조각을 추구하다 말고 이런 진짜 조각을 만든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보이는 겉면보다 훨씬 풍부한 부피의 내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내부 구조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겉면에 보이는 홈일 뿐이다. 물론 여러 개의 블록을 쌓아서 정육면체 만들기가 새삼 신기한 조형물인 것은 아니다. 굳이 차이를 주장하자면, 미술관 샵에서 만날 수 있는 잘 다듬어 진 나무 블록이 60pieces 짜리 유아용 퍼즐이라면 나의 알루미늄 판으로 쌓은 정육면체는 20000pieces 짜리 4차원 퍼즐이라고나 할까. 이왕 퍼즐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퍼즐의 진가는 결코 다 된 작품을 액자에 고정시켜 감상하는 데에 있지 않고 언제든 뒤집어 놓고 직접 맞추는 데에 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오기로, 결국은 온 몸의 진이 빠지기를 몇 번 거듭하고 나서야 끝나는 그 지긋지긋한 과정의 경험에 있는 것이다. ■ 김주현

Vol.20010608a | 김주현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