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See;時

문미진_박이원展   2001_0620 ▶︎ 2001_0626

문미진_자화상_컬러인화_60×50cm_2001

갤러리 보다(폐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물음 ● 문미진의 작업은 주관적 바라보기와 객관적 보여지기의 변증법적 결합과정이다. 주체로서의 그의 시각은 자신에게로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외부세계로 열려있다. 그러나 거울을 통해 자신을바라보는 자화상이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북아현동 일대의 풍경은 처음 세상에 나온 사이보그의 시선처럼 낯설기만 하다. ● 그가 들여다보는 거울은 청색 물감이 표면을 덮고 있어 물리적인 시선의 반영을 거부한다. 자신을 보고자 하는 문미진의 시선은 오히려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으로 대상화된다. 거울 속에서 낯설기만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문미진은 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어느 것이 나의 모습인가? 보는 나의 모습과 보여지는 나의 모습은 어느 지점에서 화해할 수 있는가? 여기서 문미진은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에 기만당하기보다는 오히려 물감을 바른 거울 위에 바늘로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는 방법을 택한다.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는 거울에 대한 거부는 대상화된 자화상을 자신의 손으로 새겨넣는 역설을 낳는다. ● 대상화된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카메라 렌즈 앞에서 스스로 연출사진을 찍는 퍼포먼스의 기록으로 연장된다. 얼굴에 금분을 바른 문미진은 염주를 두르고 카메라 앞에 선다. 금분은 종교적인 의미와 함께 현대 물질문명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고 있다. 사진 속의 문미진은 금박으로 사치스럽게 치장된 청동 조각처럼 보인다. 죽어있는 조각물 같은 자화상의 연출과 그것을 스스로 촬영하는 과정은 물감을 바른 거울 위에 자신의 모습을 새겨넣는 과정의 또 다른 번안이다. ● 문미진은 지속적으로 분리되고 거부되는 자신의 시선과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거울면과 카메라 렌즈, 그리고 캔버스 표면 위에서 다층적으로 검증해나간다. 그러나 주변을 보는 문미진의 시선은 자신을 향한 내부적인 시선 못지 않게 낯설기만 하다. 매일 오가는 북아현동 일대의 파노라마가 사진 속에 낯선 기억으로 봉합된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매일 매일 텔레비전 화면 위에 스쳐가는 이미지들은 과연 얼마 만큼 진실한가? 사진을 콜라주하고, TV화면을 촬영한 이미지를 다시 복사하여 캔버스 위에 올려 놓고 철가루와 공업용 본드를 짓이겨 바르면서 문미진은 자신이 바라보는 외부세계에 대한 시각적 검증을 이어간다. ● 작가로서의 문미진은 회화적 표면 앞에서 또 한번 낯설게 거부당하는 기억을 가진 것 같다. ● 그리기라는 주제에 대해서 그는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를 드로잉으로 재현하고 다시 복사하는 과정으로 검증하기를 요구한다. 사진과 회화적 재현, 다시 기계적 복사의 과정을 거친 투명 필름 위의 이미지들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을 자신을 거부하는 거울 앞의 자화상을 마주한 고통처럼 낱낱이 분해하여 재조립하는 과정이다. ● 주변과 자아에 대한 문미진의 작업은 시각적 매체를 통해 작업하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적인 고찰에 충실한 결과이다. 고통스럽지만 세상을 향한 시선과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들이지 않겠다는 그의 집요한 자세는 금박으로 고착된 자화상이나 카메라 렌즈로 포착된 낯선 일상 속에좀처럼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나와의 그리고 세상과의 화해를 갈망하는 제의의 몸짓이다.

박이원_fishdress_캔버스천과 혼합재료_150×270×70cm_2001

박이원의 Metamorphosis ● 오비디우스의 『변신 Metamorphosis』에서 최고신 쥬피터는 미소년 가니메데스를 유혹하기 위해 독수리로 변하기도 하고,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서 백조로 변하기도 한다. 아폴로 신의 사랑을받은 히아킨토스는 죽어서 한 송이 흰 히야신스 꽃이 되고, 아테네 여신과 길쌈 솜씨를 겨룬 아라크네는 거미로 변하는 천형을 받는다. 허황스럽지만 유쾌하기 그지없는 오비디우스의 상상력은하늘과 땅, 동물과 식물, 인간과 자연현상을 가로지르는 자유스러운 변신과 변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 박이원의 작업은 눈동자에서 물고기로, 유선형의 비늘에서 깃을 세운 여성의 드레스로 자유로운 변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속에서 유연하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박이원의 눈동자는그 자체로 물고기가 되었다가 캔버스 천으로 만든 드레스 위에 내려앉는다.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물고기 형상의 드레스는 하나 하나가 작은 물고기 모양의 비늘로 구성되어 있고 그 위에 초현실적인 박이원의 눈이 새겨지는 것이다. ● 사물에 대한 신선한 상상력을 담지한 박이원의 눈이 작업실의 캔버스를 마주할 때 회화는 연금술적 변성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윳빛 캔버스 천은 유선형의 단위체로 오려져 거대한 물고기 모양의 드레스가 되고, 겉옷을 상실한 캔버스 뼈대는 부조 작품을 구성하는 선이 된다. 이질적인 재료와 형상들간의 낯선 만남 속에서 초현실적인 변성과정이 이어지고 박이원의 상상력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된다. 재료와 형상간의 부조리한 만남은 종이로 만든 갑옷이라는 작품으로 이어지고 잔뜩 힘이 들어간 견고한 갑옷의 실체는 가볍기 그지 없는 종이의 허구로 폭로된다. ● 세상에 대한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발현. 이것이 젊은 작가 박이원의 작업을 생생하게 물오르게하는 원동력이다. 그는 모든 친숙한 것에 대한 낯설게 바라보기의 작업을 제안한다. 사람의 눈을 갖고 있는 물고기의 형상은 유선형 도상에 기초한 자유로운 상상력과 유기체적인 변성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초기 기독교 시대 물고기 도상은 비밀스런 신앙의 고백이었고, 고래 배 속에서 살아 나온 요나는 그 자체로 부활을 의미한다. 반면 인간의 눈을 달고 있는 박이원의 물고기는 자유로운 변성과정을 거친 그 자신의 자화상이다.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박이원의 시선은 가상의 변성과정을 통해 물고기 형상의 자화상으로 투영되고 그 지점에서 박이원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증식된다. ● 분해된 박이원의 캔버스 작업을 형식주의적 관점에서 읽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현대미술에 있어서 캔버스 작업의 의미를 되묻는 심각한 비판작업으로 읽는 것은 물고기처럼 생생하게 헤엄치는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오히려 상쇄시키는 결과가 된다. 마치 오비디우스의 옛 신화가 믿기 어렵지만 유쾌하기 그지 없는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처럼 박이원의 신선한 시각이 현대미술의 경직된 담론으로 국한되기보다는 모든 현실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뻗어나가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로 꽃피기를 기대해 본다. ■ 권영진

Vol.20010621a | 문미진_박이원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