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박불똥展 / PARKBULDONG / 朴불똥 / mixed media   2001_0611 ▶ 2001_0630

박불똥_토끼와 거북이_실물사진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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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2001_0611 ▶ 2001_0620 전시 기획 검증, 전개운용 프로그램 개발 및 작품 설치(85%) (피이드 백 과정을 거치는 설치와 전개)

제2부 / 2001_0621 ▶ 2001_0630 본 전시, 작품설치(15%, 전시 종료일까지), 토론

아츠윌 갤러리 arts WILL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55-1번지 3층 Tel. +82.(0)2.735.5135 www.artswill.com

토끼와 거북 - 그 두 미물에 대한 토로 ● 1. 마흔 네 살 맏사위(는 화가, '씨끕' 화가다)가 생계대책도 묘연한 채 솔가낙향하자, 서울토박이 장인영감(에게 화가는, 이꼬르 백수다)께서 이거라도 열심히 키워서 입에 풀칠 하는데 보탬 삼으라며 구해다 주신 것이 토끼였다. 세 마리. ● 2. 그러면서 장인 : 「예전에 말씀이야, 창경원 호랭이 먹이루다가 내가 토끼를 키워 댄 적이 있었거들랑. 부업이지만 엄청 났었지. 한창 땐 천 마리도 더 넘었으니깐 두루.」 그러나 처남들 : 「아휴, 말 마세요. 토끼의 `토짜`도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 3. 과연 토끼는 풀만 먹고도 잘 자라며 새끼를 한 배에 열 마리 씩이나, 그것도 달 마다 낳아 제낀다. 틈만 나면 암놈 엉덩이를 노리는 숫놈 (아내: 누구랑 아주 꼭 닮았어!)을 굳이 격리 수용함으로써 가히 폭발적인 토구 증식은 일단 막았지만 그래도 이미 스무 마리로 늘었다. 최근 연건평 1.5 평, 3층 짜리 새 토끼장을 사흘 걸려 짓다. ● 4. 토끼는 삼시 세끼가 따로 없다. 하루 종일 먹어댄다. 수에뚱이나 명아주 따위 토끼가 좋아하는 풀을 뜯어다 넣어주고 그 사각 사각 먹어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앉았노라면 그야말로 무념 무상,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백수지락이다. ● 5. 스무 마리 `토끼떼`가 쉴 새 없이 먹어치우는 양을 풀(시골 생활은, 뽑고 돌아서면 다시 나는 풀과의 전쟁이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사료를 사다 먹인다. 송아지 비육용 펠렛. 25Kg 한 포 6,800원. ● 6.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심지어 고양이도 사 간다는 확성기 소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샅샅이 동네를 훑고 다니지만 토끼는 해당 무. 고기든, 모피든 일반적인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포수가 주요등장 인물이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에 끝났다. ● 7. 엄정 장날 면사무소께 장터에 가면 토끼들을 내다놓고 파는 좌판을 만날 수 있는데 사가는 사람(이 간혹 있을 테지만)을 직접 목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 8. 고작 애완용 수요만 일부 잔존 할 뿐인데 그 마저도 `텔레토비`나 `엽기토 끼` 인형이 그 자리를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다. 어쩌면 토끼는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그야말로 달 속의 동화로나 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9. 34도를 웃도는 흡사 한여름 더위를 견디느라 바닥에 사지를 쭉 뻗고 퍼질러진 토끼, `털 덮인 짐승`의 헐떡임. 그리고 양수기, 밤 낮 없이 고되게 돌고 있는 그 동력기의 헐떡임. 같은 박자다. ● 10. 벌써 석달 열흘 째.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가뭄에 농심은 바작바작 농작물 따라 타들어 간다. 농토 따라 쩍쩍 갈라 터진다, 거북의 등짝처럼. ● 11. 세도 좋은 양반 콧구녕 만한 임대 아파트지만 식구 둘 더 들였다, 6년 전. 초교 3년 아들놈의 실험관찰수업 준비물 ; 청거북 암수 한 쌍. '거식이'와 '거숙이'라 이름 붙이다. ● 12. 마리 당 싯가 천 오백 원 짜리 미물. 일만 이천원 짜리 어항. 6,000원(200g 한 캔)짜리 먹이. 처음, 성인 남성의 귀두만한 크기였던 '거식이'와 '거순이'는 3년 반 동안 시나브로 제법 자라 일산 신도시를 떠나올 때쯤엔, 찢어지게 하품하는 성인 남성의 입 크기만 하였다. ● 13. 거주민 수 2만여 명이던 절대 농경지역 460만평 위에 급작히 세워진 일산 신도시. 수용인원 30만을 이미 초과하여 고양시 전체 인구가 현재 75만이나 된다.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일산 인공호수. 그 속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북이 살고 있다. 사월 초파일의 '특별 방생'과 집집마다 기르다 지친 나머지 내다 버리는 '일반 방생'의 결과다. ● 14. 우리의 '거식이'와 '거숙이'도 그리로 보내질 뻔하였으나, 호수오염을 거들지 말자며 이삿짐에 함께 실어 지금 이곳 추평리까지 데려오게 되었다. ● 15. 시골은 공기와 특히 물이 살아있어 '거씨 부부'는 활기가 넘쳐났다. 게다가 전에 맛보지 못하던 별식(각종 벌레 : 시골 생활은 크고 작은, 날고 기는 각종 벌레들과의 전쟁이지) 까지 무시로 더해졌으니 그야말로 쑥쑥 자라는 듯 보였, .... 는데.... ● 16.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수놈 '거식이'가 축 늘어진 채 죽어 있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그 죽음이 너무 애석하고 또 한편 불길했으므로 뒤뜰 볕바른 곳에 고이 묻어주며 성호 긋다. 홀로 된 '거순이'도 한동안, 뚜렷이 활기소침 하였다. ● 17. 거북은 겨우내 '100일 금식'하듯 거의 안 먹고도 산다. 때로 사람도 삼 시 세끼 급식의 속박을 저 미물처럼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러나 봄 되고 여름 오는데 계속 굶길 수는 없다. ● 18. 시골에서 파리와 더불어 살기는 불가피하지만, 토끼똥오줌 향기 쫓아 꾀어드는 파리 떼가 엔간하므로 이따금씩 파리채 휘두르는 일 또한 불가피 한데 마침, 두꺼비만큼 거북도 파리를 잘 먹는다. 백수가 가진 거라곤 온통 시간뿐이니 여유 만만히 파리잡기에 몰두 할 수 있어 다행이다. ● 19. 파리 목숨 하나 앗을 때마다 '관세음 보살!' 신음 나오는데 그 살생을, 어항 속의 거북은 분명 재촉하고 독려 중이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걸 한 치도 여축 없이 구분할 줄 아는 저 미물, 나 보다 낫다! ● 20. 제비 한 쌍 날아들어 처마 밑에 집을 근 열흘동안 공들여 짓고 새끼들을 깠다. 벌레 물어 나르기에 여념 없이 분주한데, 저 영물 강남 갈 때쯤엔 '토끼'와 '거북'도 잘 가라 떠나보낼 셈이다. 자력, 자생, 자활, 자연으로! ■ 박불똥

Vol.20010629a | 박불똥展 / PARKBULDONG / 朴불똥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