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mpathies

김형섭 사진展   2001_0719 ▶︎ 2001_0803

김형섭_Sympathies_컬러인화_150×120cm_2001

갤러리 사간 서울 종로구 사간동 55번지 Tel. 02_736_1447

지난간 시간속 물건과의 감응, 그리고 그 사진적 재현 ● 인간을 다른 짐승과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어사 중,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특성으로 신체의 직립성을 꼽는 호모 에렉투스 Homo rectus는 인간을 정의하는 가장 포괄적인 어사다. 인간 신체의 수직성은 외모적으로 다른 짐승의 수평적 외양과 확연히 구분될 뿐 아니라, 그 수직성은 사유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발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머리와 척추, 배설부위가 수평에 이르는 짐승은 중력의 무게가 뇌의 발달을 억눌러 지력의 저하를 가져온 반면, 인간의 직립자세는 사유기능을 담당하는 대뇌의 후두부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러니까 인간의 특성을 사유하는 동물로 규정하는 호모 사피엔스 Homo s p ens는 호모 에렉투스의 파생물인 셈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여파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직립성은 팔의 기능을 공간 이동운동에서 해방시켰고, 거친 땅에서 벗어난 손은 섬세한 놀림을 행하기 시작했다. 엄지와 맞닿을 수 있는 네 개의 손가락은 꼬집고, 붙잡고, 찌르고, 후비고, 어루만지는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손의 연장 (prolongation)으로써, 신체의 연장 (instrument)으로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따라서 도구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짓고, 가꾸는 호모 파베르 Homo f ber는 호모 에렉투스의 진화된 모습이다. 김형섭의 사진작업은 디지털 시대의 한복판 속에서, '작업하는 인간'의 흔적을 일하는 손과 세월에 닳은 도구를 통해 되찾는데 있다. 작가에게 있어 지난 시대의 우리네 작업도구는 '일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취를 감응하고, 공감하는 매체이며, 질료이다. 작가가 우리의 지나간 시대의 호모 파베르와 교감하고 상통하는 양상을 드러내는 방식은 개성적이며 꼼꼼하다. 우선 그는 부감 촬영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배경지 위에 손때 묻은 도구, 장구(裝具)를 하나씩 올려놓았다. 옛 전통물건들은 한국의 전통적 색상을 강력하게 표상하는 배경지 위에서 크기와 관계없이 일련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베틀의 부속품인 「북」이나 곡식을 퍼담는 「개미바가지」나 동일한 크기의 인화지에, 거의 동일한 여백을 가지고 재현되어 실제 대상을 알지 못하는 관람객은 그 크기의 우열을 가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가마니를 짤 때 줄을 무겁게 늘어뜨리는 「가마니 추」나, 말 혹은 소의 먹이를 주는 「여물바가지」나 동일한 크기로 재현되어 사진으로는 그 크기를 단언할 수 없다. 일련화된 serialized 촬영방식을 택함으로써, 시각 '자료 document' 혹은 규격화된 제품광고의 양상을 띰에도 불구하고, 김형섭의 도구, 장구 사진은 대상에 대해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작가는 사진의 재현을 통해 어떤 민속학적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일하는 인간과 무수한 접촉을 통해, 호모 파베르의 체취를 간직한 도구를 현시(顯示)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섬세한 사진작업은 도구가 육화한 호모 파베르의 숨결을 포착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 '호모 파베르의 체취, 숨결'을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정교하고 치밀한 아웃포커싱 out focusing을 행했다. 작가는 대상의 의미 없는 어느 한 부분에서만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 대부분을 비켜나가게 하면서, 잡힐 듯 사라지고,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작가가 분명히 교감하고, 감응한 그 '체취, 숨결'을 재현했다. 김형섭의 옛 장구와 도구는 초점이 흐릿하게 빗나간 부분에서 호모 파베르의 숨결과 체취를 어렴풋이 발산한다. 미묘하게 떨리는 도구의 모습은 따라서 작가가 공감하고 감응하는 이제는 사라진 호모 파베르의 노동과 삶이며, 도구 속에 내재된 호모 파베르의 넋과 숨결이다.

김형섭_Sympathies_컬러인화_150×120cm_2001

공감하고 감응할 줄 아는 영혼에게는 시간적 거리, 공간적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공감의 대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상상력과 몽상의 힘으로 그 거리를 주파하여 대상과 상호 교통한다. 작가가 호모 파베르의 노동과 삶, 호모 파베르의 숨결과 영혼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이 쓴 도구, 장구만으로 충분하다. 공감하고 감응할 줄 아는 그의 상상력은 녹슨 「인두」, 「다듬이 방망이」 만으로도 지나간 시대의 아낙네의 넋과 교류할 수 있고, 「낫」과 「대패」 만으로도 땀흘리는 사내의 삶과 교통할 수 있다. ● 사실 교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작가와 이제는 사라진 시대의 호모 파베르만이 아니다. 김형섭이 아주 단조롭고 미니멀한 형식으로 보여주는 우리네 전통 도구와 장구는 은밀하게 에로틱하다. 흐릿하게 떨리는 도구의 형상들은 자신이 찾는 성적 대상에 공감하고 감응하며 미묘하게 전율하는 듯하다. 남성 성기를 환기시키는「가마니 추」, 「도장」, 「국수 밀대」, 「갈고리」, 「송곳」은 여성성을 떠올리는 「베틀 북」, 「여물바가지」, 「숯 다리미」, 「개미 바가지」 곁에서 미세하게 몸을 떤다. 작가는 전통 도구를 매개로 옛 호모 파베르와 교감하고, 암, 수 형상의 도구들은 서로 서로에게 감응한다. 따라서 단수 sympathy로서는 김형섭의 작품을 얘기할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과 인간이 공감하는 sympathy, 사물과 사물이 감응하는 sympathy 그리고 인간과 도구가 교감하는 sympathy가 존재하는 까닭에, sympathy는 복수로 기입되어야 한다. Sympathies라고. ■ 최봉림

Vol.20010711a | 김형섭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