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의 자연해석전

2001_0830 ▶︎ 2001_0911

최진호_Made in nature Ⅰ-1_검 프린트_100×70cm_2001_부분

참여작가 고석원_권정준_김기라_김영진_김태중 이계희_이상희_이동재_정인엽_최진호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자연은 현실적인 사실을 통하여 진리로 파악되는데 반하여 예술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독립된 세계를 형성하고 현실세계 또는 자연의 어떤 의미의 한계적 상황을 구체화시킨다. 자연의 세계에는 무한한 요소가 끝없이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그로부터 한정된 목적을 위해서 사상의 관련을 추상하고 어떤 세계상을 이루어 놓고자 하는 것이 예술적 태도이다. 작가는 예술과 자연사이에 내재하는 연관성과 유사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대상을 직관의 방식으로 구체화 내지 형상화되어 인식되어지게 한다. 이 전시는 젊은 작가 10인이 자신의 오감을 통해 예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규정해 보고 그 속에서의 자연의 의미를 해석하여 보여준다. 이러한 해석은 자연의 의미와 표출을 더듬어 올라가서 거기에 담겨 있는 생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의 생의 구조 자체를 그 근원에서부터 밝히려 하는 예술의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자연파괴와 물질문명의 편의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메마른 기계적 감정 속에서 자연이 예술의 원형으로서 또한 그 존재 가치적 근거로서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며 예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이라는 관계의 상호의존의 패러다임과 상생의 의미를 되살려 본다. 보는 '나'(인간)와 보여지는 '너'(자연)가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통하는 그런 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 작가가 자연을 인식의 기초로서 적극적인 의도를 가지고 살펴보는 관찰로부터 무엇을 보여줄 것이며 작가가 어떻게 자연을 마주하며 그것에 행하는 태도는 어떤 것인가 등의 문제를 고심한 작품들이 선보여진다. ● 이번 전시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실험적인 특성을 가진 젊은 미술가, 사진작가들이 참여했다. 젊은 작가들의 완성미나 절제미보다는 자신의 새로운 실험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작가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개인전 차원으로 보여지게된다. 외부에서 전시장 안으로 이어주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출발하는 이계희의 작품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먹이사슬의 관계를 통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 자양분이 됨으로서 공존하고 존재를 유지해 나가는 자연의 유기적 관계에 주목한다. 원인보다는 회복이라는 문제를 작업의 목적으로 삼고, 공간을 자연과 인간의 소통의 장으로 설정하여 자연의 존재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시키고 유지시키는 생명체들의 연결을 시도한다. 생명체는 자양분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생명체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고 생명체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소통하게 한다. 작게 찍혀진 판화를 전시장 전면에 부착하여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게 하여 관객에게 떼어나간 정도가 작업의 완성도를 보여주게 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를 상응했을 때 이루어지는 소통의 완성을 보여준다. 즉 이러한 소통은 자연안에서의 존재들간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고 예술속에서는 관객과의 소통을 창조의 마지막 절차로 놓아두었다. 이동재의 작업은 일상적인 사물들을 선택하여 그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조형성에 주목할 수 있는 작업방식을 통하여, 물질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데 그 의도를 두고 있다. 시멘트, 합판, 파라핀 왁스 등의 이질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변이되어진 사물을 오브제로 놓아둠으로서 미술의 표현 자체를 대상의 재현에서 대상 자체를 제시하는 상황으로의 전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복제된 사물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능성과 그것을 보았을 때 주어지는 과거의 학습 혹은 경험을 통해 떠오르는 기억들 을 제거하고 사물 그 자체의 형태만을 취하게 한다. 또한 과거 르네상스기의 미술가 혹은 과학자들이 2차원의 평면에 공간감을 주기 위해 발명된 기하원근법을 다시 3차원적 입체로 재해석하여 여러 사물의 공간연출시에 임의의 공간에 소실점을 부여하여 입체의 형태를 왜곡시킴으로서 위치에 따라 달라져 보이는 구조물을 제시했다. 권정준은 보이는 혹은 보여지는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그림이나 사진, 비디오 등을 이용하는데, 이러한 매체는 결국 어떻게 보는가, 보여지는가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사물을 '본다'는 것은 하나의 사물이 가지는 독립된 공간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여짐'이란 보았던 것을 그대로 기록하고 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토폴로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이번 사진작업은 잘리거나 덧붙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변형을 유도한다. 즉 자르거나 덧붙이지 않으면 같은 도형이며, 자르거나 덧붙이면 다른 도형이 된다.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은 하나의 시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물체의 한 쪽 면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물을 입체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몸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권정준은 1M의 거리를 20cut으로 나누어 촬영하고 찍는 횟수에 의해 물리적인 길이의 변화를 준다. 마치 처음 보는 물체인양 모든 각도에서 바라보며 촬영하여 모든 부분을 재배치하여 관람자들로 하여금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움직임을 대신하여 작가의 눈으로 다시 보여지게 한다. 즉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대상의 재해석을 사진을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재해석은 또다른 공간 바꾸기로도 시도된다. 지구본이나 축구공, 사과 등의 특정한 부피를 차지하는 사물의 외형적 특성이 육면체로 12개의 모서리를 가진 공간으로 변환된다. 육면체의 모서리는 외부에서 볼 때, 두면이 만나 돌출된 형태를 가지고 내부에서 볼 때는 밖으로 튀어나가는 모습을 가지게 된다. 구가 가지는 고유한 형태는 깨어졌지만 축구공의 모습은 그대로이다. 각층으로 연결되는 공간을 중심으로 설치되는 고석원의 공간연출은 회화를 중심으로 수십계의 캔버스를 이어서 거대한 한 작품으로 합성시켜, 자연과 예술을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로 보여준다. 창조와 잉태에 대한 자연성과 원초성을 회복시키므로서 파악되지 않은 체계를 형상화 상징화시키고, 그 형상들은 파괴적 본성으로 물들어 가는 과학만능, 물질만능 시대에 인간의 본성과 자연성을 인식하게 하려는 작업이다. 최진호의 사진작업은 '검프린트' 기법을 중심되게 보여준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은염사진과 달리 중크롬산 암모늄과 아라비아고무를 이용하는 비은염 사진기법의 한 종류로 원시적인 사진 기법이다. 검프린트는 필름 자체를 햇빛에 인화하는 밀착인화 방식을 사용하므로 필름사이즈와 빛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형식의 사진작업은 사진이 갖는 기본적인 재현의 속성을 떠나서 사물을 정확히 재현하기는 어려우나, 이러한 단순하고 원시적인 사진 기법의 사용을 통해 작가는 자연이나 자연적인 것을 인간이 개발한 방법과 인간적 가치의 기준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김기라의 영상설치는 자살의 단편적 사건을 이미지화 시킨 것이다. 이미지의 공간들은 보는 곳과 느끼는 곳, 그리고 생각되는 곳, 놓여있는 곳이며 사건이 일어난 순간의 시간은 새벽이다. 그 상황의 재현 혹은 조작은 29층으로 한정된 시간과 공간이 혼재되는 자살의 순간이며 그 곳에서의 이미지는 현기증, 망각, 슬픔, 사랑, 공간, 환경 등 현 시간대의 모든 상황을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게한다. 그곳에서의 풍경,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연관의 일종의 파괴와 불안, 그리고 부정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추상적인 대입은 더욱 추상화되고 분절화 된 공간 속에서의그 조작과 상황의 결탁은 이 시대를 바로 보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환경을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으리라 짐작되어진다. 이상희는 사진을 주로 보여주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과 설치가 병행되는 형식이 전시장 복도와 화장실 공간에서 보여지게 된다. 이번 사진 작업은 초음파사진, 태아의 자궁을 찍은 사진과 수술용 장비의 이미지 사진을 이용한다. 이상희 작업의 키워드는 '생명'이다. '낙태'라는 생명경시 현상이 한 단면을 작업을 통해 보여주려 한다. 여기서 자연이라는 모체를 통해 자생되는 인간이라는 생명체 그리고 그 둘의 연결고리로서의 탯줄을 분리하는 행위는 스스로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은 자연의 부속물로서 생명을 잉태한다는 것은 자연이 살아가는 가장 근본적인 전이의 한 방법이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거스르고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에 의해 버려지는 자연과 생명과의 관계를 낙태라는 의료행위를 통해 우회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김태중은 동판을 이용한 미세한 표현과 실크스크린의 깔끔한 평면느낌으로 동굴 벽화에서 본 것처럼 원시적인 그림 자체를 보여준다. 또한 원색으로 페인팅 된 병과 가구등의 오브제가 놓이면서 작가의 시각으로 보여지는 삶이 곧 예술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방의 형식 속에 놓인 오브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이지만 작가의 영혼에 의해서 새로운 모습과 색다른 의미로 놓여지게 된다. 이러한 방이라는 공간은 작가와 관람자, 관람자와 관람자는 각각 다르게 존재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의존과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작업은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영향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것처럼 이 공간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김영진은 나무의 물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플라타너스 가지를 소재로 다양한 크기의 번데기 모양의 생명체를 선보인다. 번데기로 상징화 된 생명체를 통해 정지·불변·존재에 대립하는 생성의 의미와 운동이나 변화 후 사라져 없어지는 소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본다. 생성과 존재의 문제는 철학에서 가장 근원적인 사색을 요구하는 영원한 문제이다. 작가는 재료가 되는 나무의 의미를 우주의 기원과 구조 및 삶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하늘을 향하여 높이 치솟은 형상으로, 또는 무한히 반복되는 죽음과 재생의 생명력으로 자연의 실재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나무가 보여주는 실재는 생명의 근원, 우주의 창조성, 우주의 중심, 지혜의 원천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인엽은 자신에게 관련된 사건을 중심으로 한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기록과 기억의 흐름 그리고 미래를 그려보는 꿈의 이상을 나비로 형상화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기억의 내용이 여운으로서 간직되어 있다가 재생 또는 재구성되어 나비를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작가의 정체를 반영하고 있다. 즉 나비는 작가 자신의 기억과 현재의 특수한 재생표상이 된다. 이러한 기억과 심상의 시각적 부호화는 작가의 과거속에 갇혀 있던 기억의 다발이 현실 속에서 나비의 날개짓으로 실현되어진다. 나비로 상징되는 모든 상실한 것들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 임은미

Vol.20010823a | 10인의 자연해석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