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플럭서스 1962-1994

매듭많은 긴 이야기   2001_0907 ▶︎ 2001_1028 / 월요일 휴관

볼프 포스텔_플럭서스 피아노-리투아니아 ; 마키우나스에 대한 경의_실물설치_1994

참여작가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_ 조지 브레히트 George Brecht _ 존 케이지 John Cage 헨닝 크리스티안센 Henning Christiansen _ 로베르 필리우 Robert Filliou 루드비히 고제비츠 Ludwig Gosewitz _ 알 한젠 Al Hansen 제프리 헨드릭스 Geoffrey Hendricks _ 딕 히긴스 Dick Higgins _ 조 존스 Joe Jones 우테 클롭하우스 Ute Klophaus _ 밀란 크니작 Milan Knizak 알리슨 노울즈 Alison Knowles _ 아더 쾨프케 Arthur K pcke 만프레드 레브 Manfred Leve _ 조지 마키우나스 George Maciunas 백남준 Nam June Paik _ 벤자민 패터슨 Benjamin Patterson 로버트 레펠트 Robert Rehfeldt _ 디터 로스 Dieter Roth _ 게하르트 륨 Gerhard R hm 타카코 사이토 Takako Saito _ 토마스 쉬미트 Thomas Schmit 다니엘 스포에리 Daniel Spoerri _ 앙드레 토트 Endre T t _ 벤 보티에 Ben Vautier 볼프 보스텔 Wolf Vostell _ 에멋 윌리엄스 Emmett Williams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 경기시 과천시 막계동 산58-1번지 Tel. 02_2188_6000

못 말리는 악동들의 진지한 장난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플럭서스 작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명쾌한 답을 할 수 없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혹은 미래주의와 마찬가지로 플럭서스에도 양식이 없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태도였다." 르네 블록 Ren Block

1. 이번 전시는 196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적인 미술운동 '플럭서스'의 전개양상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플럭서스 미술운동은 전후 추상표현주의, 앙포르멜 등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1960년대에 등장하여 "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모든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행위미술과 오브제 작업으로 현대미술계는 물론 사회전반에 큰 충격을 던졌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개념미술이나 더 뒤로는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뿌리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특히 당시 가장 활발했던 활동무대의 하나였던 독일 지역 중심의 다양한 활동들에 집중하여, 플럭서스의 초기 발생단계로부터 현재에까지 이르는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플럭서스 작가들의 원작(原作) 350점과 함께 중요한 플럭서스 공연들의 기록물 - 각종 홍보물, 출판물, 영화, 음악 등 - 을 총체적으로 제시하는 이번 전시가 폭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이 예술운동을 진수를 음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존 케이지_모자르트 믹스_종이, 나무, 녹음기, 테이프 등_1991

2. 조용한 무대에 연주자가 들어오더니 천천히 바이얼린을 들어올리고는 갑자기 내려쳐 부순다. (백남준의 "Solo for Violin") 연주장에 나비를 날아다니게 하고 그 무언의 날개짓 소리를 감상하라 한다. (라 몬테 영의 "작곡 1960 #5" 중에서) 여럿이 달려들어 그랜드 피아노 한 대를 톱과 망치로 완전히 분해하고 그 부속품을 경매한다. (필립 코너의 "피아노 활동") 현악사중주 연주자들이 입장해서는 그저 서로 악수만 하고 퇴장한다. (조지 브레히트의 "현악사중주") 이런 것들이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전형적인 플럭서스의 모습이다. 크리스텔 슈펜하우어(Christel Sch ppenhauer)는 "플럭서스는 무엇인가?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어떤 이들은 플럭서스란 여러 개의 작고 우스꽝스러운 상자들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그들은 피아노에 돌을 던지고 그랜드 피아노를 톱질하면서 그것을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정신나간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 소위 플럭서스의 "탄생기"에 즈음하여 작가들 간의 네트워크는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어 갔다. 이 전시의 최초 기획자이자 그 자신 1960-7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주요 후원자였던 르네 블록 역시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른 도시, 국가, 대륙에 살던 작가들 사이에 그토록 밀도 있는 정보망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형성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라고 회고하고 있다. ● '플럭서스'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고 사용되는 계기는 1962년 비스바덴 시립 미술관에서 개최된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이었다. 주요 플럭서스 작가이자 조직자였던 조지 마키우나스의 기획으로 진행된 이 행사를 계기로 이들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처음에 주로 쾰른, 뒤셀도르프, 비스바덴 등의 독일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매듭들은 곧 파리,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런던 등지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 중에서 뒤셀도르프 주립 예술학교, 부퍼탈의 갤러리 파르나스, 아헨 공연, 베를린의 르네 블록 갤러리 공연, 그리고 1970년 쾰른 예술협회에서 열린 "해프닝 & 플럭서스"전시 등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조지 브레히트_의자 이벤트_의자, 피리, 메트로놈_1961/1994

이 과정에서 독일의 시대적·지역적 특성은 플럭서스라는 급진적인 전위예술이 꽃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되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잔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독일 내에서 형성된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과 수용의 태도는 당시 유럽 어느 지역보다 독일에 유리한 위치를 제공해 주었다. 1960년대를 통해 많은 작가들이 독일을 배경으로 활동하며 서로를 알게 되었고, 이 때 형성된 개인적 친분은 일생동안 지속되는 우정과 공동작업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토마스 슈미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반년 안에 루드비히 고세비츠를 사귀고, 쾨프케를 사귀고, 에멋 윌리엄스, 벤자민 페터슨, 조지 마키우나스.... (이 모든 만남은 얼마전에 우연히 백남준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다음에 조지 브레히트를 사귄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페스티벌이다!" 이같은 상황은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 또한 독일 플럭서스 주변에는 다수의 소장가, 후원자, 출판업자 그리고 전시기관 등이 존재했다. 이들은 여러 예술 활동들을 지원하였고, 관심을 가지고 발굴하고, 소개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일례로 한스 좀이 슈트트가르트 주립미술관에 기증한 자료들은 독일에서 열린 모든 행위예술 및 복합 장르 예술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컬렉션 중의 하나이다.

조지 마키우나스_프럭스 키트_플럭서스 작품 수집 및 편집_1964

3. 플럭서스. 그것은 무엇보다 만남, 이벤트, 아이디어, 오브제들로 구성되어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로 뻗어나간 다차원적 네트워크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관습과 구분을 초월한 "전영역적 현상(ein Feld-Ph nomen)"이었으며, 수많은 매듭들을 통해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확장시켜간 거대한 그물망이었다. 그리고 그 주요한 매듭점이었던 작가들이 상당수 타계한 상황에서도 이 그물이 여전히 생명력과 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플럭서스'가 단지 특정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삶과 예술을 한데 엮고자 했던 시도였기 때문이다. ● '예술 속의 삶, 삶 속의 예술'을 부르짖은 못 말리는 악동들의 진지한 장난들을 통해 이어져 온 "매듭 많은 긴 이야기(A Long Tale with Many Knots)"를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 보도록 하자. 그 복잡하게 꼬인 매듭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와 가능성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또한 이들 작가들이 우리를 초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 국립현대미술관

Vol.20010829a | 독일 플럭서스 1962-1994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