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다 展

대안공간을 찾는 미술인 모임 시각장애인학교 프로젝트   2001_0908 ▶ 2001_0922

방병상·이태성이 진행한 사진 워크샵에서 맹학교 학생들이 서로 짝을 지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작업_2001

초대일시_2001_0908_토요일_12:00pm

참여작가 강승희_강은수_김근표·정진곤_김기라_김기태_김두진_김병직_김상길_박정혁 박경택_방병상·이태성_박창은_백승현_손민형_손정목_심승욱_양승수 유비호_유향희_윤기언_이소림_이송_이종석_정인엽_조성희_진택근_한준희 염중호 외 6인_작은방(이지은 외 6명)_조각그룹 飛(박혜수 외 5명)

국립서울맹학교 서울 종로구 신교동 산1번지 Tel. 02_737_0656

대안 공간, 삶을 나누는 미술 ● 전문 전시장이 아닌 곳에 몇 개의 작품을 설치하고 또 감상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장소를 대안 공간이라고 한다. 원래의 용도를 벗어난 경험이 주는 낯선 즐거움을 만날 수 있고, 또 굳이 값비싼 전시장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잘 찾을 수만 있다면 자유롭고 신선한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 대안 공간인 것이다. '( )보다-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전은 바로 그 대안 공간을 찾아간 전시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좀 독특하다. 다름 아닌 시각장애인학교인 것이다. ● 사람들이 사물을 받아들이는 행위의 80%이상이 시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을 것이다. 본다는 행위는 그만큼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보다'라는 동사는 무엇무엇을 해보다라는 뜻을 가진 조동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전시의 제목은 그래서 '( )보다'이다.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우리들 모두가 세계를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방식이 바로 '( )보다'인 것이다. (만져)보다, (냄새 맡아)보다, (소리 들어)보다 등. ● 이러한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전시는 여간 어려운 전시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지껏 작품 감상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던 사람들에게 작품을, 그것도 난해하기 그지없는 현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취지에 작품들이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기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석달여를 준비하는 동안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배제해야 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 50여명의 작가들은 그래서 많이 힘들어했다. 작품은 일단 시각장애인들이 감상하기에 불편이 없어야 하므로 만질 수 있거나 소리를 듣거나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개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점자안내문을 별도로 제작했다.

방병상·이태성이 진행한 사진 워크샵에서 맹학교 학생들이 서로 짝을 지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사진작업_2001

몇몇 작품을 소개해보자면, 일단 출품되는 작품의 성격을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을 텐데, 먼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는 작품이 있다. 강승희는 학생들이 원하는 그들만의 옷을 제작해주는 작업을 한다. 10명의 학생을 7번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접한 후 비옷이나, 무릎이 튼튼한 옷 등, 생활에서 불편했던 점들을 보완해줄 수 있는 옷을 제작한다. 김근표와 정진곤은 사진이 들어있는 멜로디 목걸이를 만든다. 누군가와 늘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꼭 시각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방병상과 이태성은 아예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곳을 사진이라는 기록 매체를 통해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풀어보다팀은 학생들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수첩을 제작하는데, 그 안에는 그 학생을 설명해주는 몇 가지 특징과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정보 등이 점자로 인쇄되어 있다. 유향희 역시 학생들이 원하는 모양의 가방을 직접 그리게 한 다음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실제로 가방을 만들어 준다. ● 새로운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도 여러 점 있는데, 김기라는 작은 동물원을 만든다. 관계를 만드는 일에 다분히 벽을 쌓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선입관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대상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김병직의 작품 또한 일정 공간에 비누방울 터지는 소리를 계속 내보내면서 센서를 설치하여 사람을 감지하면 비누방울이 나오게 함으로써 촉각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부드러운 쿠션으로 공간을 꾸민 작은방 팀이나, 여러 개의 소재를 만지며 길을 지날 수 있도록 공간 설치를 한 조각그룹 飛의 작품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 감상을 함으로써 완결되는 형태의 작품도 있다. 손정목은 5개의 센서를 낮게 설치한 후, 그 센서에 닿을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공간을 만들어 소리를 내지 않고 지나가면 작품이 완성되는 설치를 하였다. 심승욱은 빈 캔버스 앞에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텍스트를 함께 놓아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본다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양승수는 6개의 센서를 지날 때마다 서로 다른 소리가 나고, 통로를 다 지나면 하나의 음악이 완성되는 형태의 작품을 선보인다. 윤기언은 벽에 파이프를 설치하고, 걸어다니면서 그 파이프를 막대로 긁음으로써 소리가 나는 작품을 설치한다. 또 이종석은 한 문장을 5개의 어절로 나누어 버튼을 순서대로 눌러서 문장을 완성하게 하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한다. 이 송은 차력사들의 계란밟기를 가능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 지난 해 8월, 분당의 전문 장례식장인 효성원에서 공동묘지 프로젝트 '축제'가 열린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작가 김기라 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전시는 젊은 작가들이 서로의 추천을 통해 모여서 장소를 섭외하고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인생을 하나의 축제로 보고, 그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설치한 전시였다. '( )보다'전은 '축제'전에 이은 대안공간 프로젝트의 2탄에 해당하는 전시인데, 기획자가 없었던 지난 해와 달리 올해는 기획자가 생겼고, 또 작가의 구성도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달라졌다. 각각의 작품들은 모두 하나의 작품이 공간의 성격과 그것을 해석하는 데 따라 어떻게 제작되고 소통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다. 대안 공간을 찾고, 또 그 공간을 주제에 맞게 해석하는 형태의 전시는 그대로인데, 참여하는 사람과 작품은 바뀌는 것이다. ● 우리는 이 전시가 해를 거듭하면서 지속되기를 바란다. 찾아가는 공간과 기획자, 작가와 작품은 매번 달라지겠지만, 하나의 공간에서 그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과 작품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것은 젊은 작가와 기획자에게는 다분히 좋은 학습이기 때문이다. 미술이라는 것이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또 그것이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고, 또 앞으로의 작업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대안 공간, 그것이 단순히 텅 비어 있는 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 )보다'전이 그 공간의 삶을 아우르는 진지한 접근이 있을 때, 그것이 우리에게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모두가 체험하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 황록주

Vol.20010905a | ( ) 보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