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인

강소영_고자영_윤유진_이서미_황연주 판화展   2001_0919 ▶ 2001_0928

작가와의 대화_2001_0923_일요일_03:00pm

갤러리 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Tel. 02_725_6751

판화의 정체성을 생각하면서황연주_ 제가 처음 이 전시를 구상하게 된 것은 지금의 판화 시장에서 판화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제대로 고민되어지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고만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정작 판화미술, 판화매체의 본질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죠. 이서미_ 우선 오리지널 판화의 규정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해요. 제가 조사해 본 바로는 외국과 한국의 경우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변치 않는 규칙은 먼저 작가의 친필사인이 기재되어져야 하며, 에디션은 작가에 의해 직접 관리되어져야 하고, 모든 작업의 공정은 작가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등이었어요. 하지만 과연 지금 현재 이런 오리지널 판화의 규정마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황연주_ 그렇다면 좀더 깊이 있게 판화의 개념상의 문제들을 생각해보기로 하죠. 판화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일까요? 가령 그림이란 사람의 손에 의해 직접적으로 제작되어지는 이미지라던가, 사진이란 빛과 약품처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던가 하는 식으로 구별하는 것처럼 말이죠. 판화가 다른 매체들과 구별되어지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복수성과 간접성을 모두 나타내는 "여러 장을 찍을 수 있다"라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 말에서 저는 복수성을 가르치는 여러 장"의 의미보다는 간접성을 의미하는 "찍는다"라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화를 배우고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복수성이나 상업성보다는 찍는다는 점에 대해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가끔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복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판화 미술에 관한 논의들이 중심을 벗어났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에요. 이서미_ 그건 아마도 판화를 하는 사람들이나 평론가들의 안이한 태도 때문이겠죠. 황연주_ 저는 판화미술계를 형성하는 사람들 중에 평론가나 화랑들의 역할이 꽤 높다고 생각해요. 강소영_ 화상들의 역할은 판화보다는 회화에 더 절대적이죠. 판화는 오히려 아트상품처럼 가볍게 다뤄지거나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복제형식 위주로 이루어져 있죠 화랑들은 규모나 상업적 가치가 더 높은 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판화는 비교적 규모가 적은 판화전문 화랑에서 거래가 되구요. 그나마 이름 없는 작가들의 작품은 액자집에서까지 거래가 되는 형편이죠. 황연주_ 큰 화랑이나 화상들이 개입을 할 때는 이미 무엇보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의 규모가 켜져요. 즉, 작품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담론을 형성한다는 말이죠. 그러나 조그만 액자집이나 일부 화랑에서 거래되는 판화들은 계속해서 복수성과 상품성만을 강조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점점 찍기가 편하고, 값싸며, 보기에 예쁜 판화들의 비중만 늘어나는 것 아니겠어요? 보기 좋은 것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식의 가능성들을 단절시키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할 위험이 많은 건 사실이라고 봐요. 전 판화작품이 회화나 다른 여타의 매체로 이루어진 작업들처럼 하나의 독창적 장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고민을 포함한 어떤 것들 말이에요. 강소영_ 전 잠시 사진의 경우를 생각해 봤어요. 요즈음 각 화랑가 에서는 사진 작품의 전시 유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거든요. 그건 사진이라는 매체가 그 자체로서 사회적 담론을 이슈화하는데 효과적이며, 또 작품들에서 주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판화는 기법적 측면에만 빠져서 일상의 단면이나 사회성, 역사성에 대한 고민이 많이 결여되어 있어요. 판화작업으로 기법과 주제를 조화시킨 작가가 있다면 '오윤'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작가의 자질 부족도 판화미술 침체의 한 원인이에요. 주제는 점점 단순해지는 반면 기법만 세련되어지고 있으니까요. 작가가 좋은 작업을 해야지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황연주_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 같은데요 처음부터 `판화는 복수미술이다라고만 계속 말하니까 작업의 밀도나 질적인 측면보다는 장식성과 복수제작으로 초점이 모아지는 것 아니겠어요? 강소영_ 그리고 판화는 작품의 크기가 한정적이라는 불리함도 가지고 있지요. 황연주_ 크기나 규모로서 작품을 인식하는 감상의 후진성도 문제이죠. 이서미_ 맞아요. 우리나라는 판화작품의 크기가 외국보다 훨씬 큰 편이죠. 윤유진_ 사실 젊은 작가들의 판화육성을 위해 마련된 판화공모전등에서도 작품의 크기를 강조하는 실정이니까요. 황연주_ 판화의 콜렉터층, 즉 미술을 감상하고 구입하는 계층도 아직은 규모가 큰 작품을 선호하지요. 윤유진_ 그 점에 대해선 전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화랑들과 콜렉터층 등에서는 규모가 큰 작품보다는 값이 싸고 예쁜 소규모 판화작업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은 것이 현실인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판화의 콜렉터층이 큰 규모의 작품을 선호한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다만 작품의 크기를 강조하는 것은 판화를 회화의 종속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그릇된 인식과 판화만의 고유성을 무시한데서 나온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우리는 지금 판화미술의 부정적인 측면만은 너무 찾아내려 하는건 아닐까요? 복수 제작된 작품이라해서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공정의 복잡성으로 해서 기법이 강조되는 것등은 결코 판화와 띨레야 띨수없는 문제인데 그것을 판화발전의 걸림돌로 생각하려 하기보다는 장점으로 발전시켜 판화에 대한 인식을 정착시키는 것이 더 좋치 않을까 싶은데요. 이 모든 것이 판화에 대한 인식의 결여에서 나온 문제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황연주_ 복수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이젠 좀더 다른 점들도 생각해 보자는 거죠. 강소영_ 그래요. 좀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필요한 건 사실이에요. ■ 전시 준비중 대담내용, 2001, 8월에

Vol.20010923a | 겹겹이 쌓인展